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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안심병원'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중앙일보 2014.01.17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고관절 수술을 받아야 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수술비는 있는데 간병비가 없었어요. 결국 수술을 포기했죠. 한 뇌졸중 환자도 있었습니다. 오랜 병치레에 가족이 다 떠나버렸죠. 결국 치료를 중단했죠. 생각해 봤습니다, 병원이 간호·간병 서비스를 모두 해주는 병원을.”



 김민기 서울의료원장은 국가적 난제에 도전해 볼 기회를 잡는다. 2012년 업무보고 때 구상을 밝히자 시가 시범사업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간병인·가족에게 간병을 맡기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몇 나라 안 된다. 그간 정부·지자체가 찔끔찔끔 시범사업을 했지만 본격적인 정책 실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김 원장은 이인덕 간호부장과 머리를 맞댔다. 의사·간호사·간병인·노조·중소병원의 이해관계를 조정했다. 공간 배치와 근무 동선을 다시 짰다. 2013년 1월 일반병상 400개 중 200개에서 시범사업은 시작된다.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환자에게 간병비 부담은 안 주기로 했다.



 꼭 1년이 지난 15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병동. ‘안심병동’ 글귀와 함께 달리아(국화과) 꽃디자인이 붙어 있다. 꽃말이 감사·친절이어서 상징으로 삼았다. 복도 천장 부근에 큰 볼록거울도 붙어 있다. 어느 각도에서든 병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설치했다. 복도 곳곳에 간호사들이 책상을 들고 나와 있다. 간이 간호스테이션을 배치한 것이다. “환자를 가깝게 보기 위해 복도로 나온 거지요. 신속 대응이 가능해졌어요. 간호사들이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고요.”(이인덕 부장)



 간병 간이침대가 사라진 병실 안은 쾌적하다. 병상마다 비상신호기가 설치돼 있다. 욕창을 막기 위해 에어매트 침상이 깔려 있다. 이런 아이디어는 대부분 간호사들이 냈다. 일주일 전에 입원한 김정자 할머니를 만났다. 강남에 살지만 일부러 이곳을 찾았다. “신호기만 누르면 두세 분이 달려와요. 나야 고맙지요. 간병비 부담 없고 간호사들한테 간병을 받으니까.” 간호사 한 명이 7명의 환자를 돌본다. 시 지원금의 대부분은 간호사 증원에 썼다. 김인숙 간호파트장은 “간호사가 환자들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어 의료인으로서의 성취감은 커졌다”고 했다.



 그렇지만 1년간 간호사들은 안녕하지 못했다. 식사 점검, 가래 빼기, 기저귀 갈기, 자세 교정 등 책 한 권 분량의 세세한 업무매뉴얼을 만들어야 했다. 일이 힘들어 울음을 터뜨리거나 퇴직하는 간호사도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이 부장은 간호사들을 위로했다. “개인 심부름까지 시키는 환자분들도 있었습니다. 새 시스템에 익숙해지기까지 참아내야 했죠.”(김남희 주임 간호사)



 혁신이 확산되려면 ▶메시지 ▶채널 ▶수신자 ▶발신자 네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안심병원의 경우는 어땠을까. 간병·간호를 모두 병원이 책임지겠다는 메시지에는 낡은 의료 관행을 바꾸려는 혁신성이 있었다. 혁신을 전파하기 좋게 매뉴얼·동선을 재배치하는 등 채널의 적절성도 확보됐다. 환자들이 환호할 만큼 수신자의 수용성도 컸다. 마지막으로 발신자의 일관성도 있었다. 원장과 간호사들은 어려움을 견뎌내며 보호자 없는 병원의 필요성을 알렸다.



 혁신은 절반쯤 성공했다. 보건복지부가 안심병원 실험에 가세한다. 이 병원 200개 병상에서 간병 모델을 보험체계로 흡수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정책실험에 들어갔다. 덕분에 이 병원에 입원하는 모든 환자가 간병 혜택을 누리게 됐다. 모든 혁신이 제도화하지는 않는다. 지난 1 년간 시비 36억원이 들어갔다. 환자 간병비 부담은 60억원 정도 줄어들었다. 가족들의 기회비용을 빼고도 충분히 매력적인 실험이다. 그렇더라도 당장 누가, 얼마나 인건비를 부담하느냐가 문제다. 환자와 지자체, 정부가 지탱할 만한 부담 수준과 방법을 찾아내야 ‘간병 대란’은 해결된다.



 혁신의 달리아는 일단 피었다.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지난 1년간 간호사들의 발길은 바빴다. 한 송이가 백만 송이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송이만으로도 향기는 난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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