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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20> 시샤팡마(하)

중앙일보 2014.01.17 00:03 Week& 6면 지면보기
펠쿠 초 호수에서 바라본 시샤팡마 북면. 수많은 양떼가 초지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왼쪽 봉우리가 시샤팡마다


지난해 10월 찾은 시샤팡마(8027m) 남면 베이스캠프(5300m)는 시종일관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안개 산’이었다. 힘들여 올랐지만 우람한 시샤팡마 남벽은 전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푸른 호수와 목초지 위로 우뚝 솟은 설산이 그곳에 있었다. 당나귀 귀 모양의 시샤팡마였다.

5000m 초지의 아스팔트길, 고원 사파리 즐기고 설산도 감상하고 …



시샤팡마 남벽은 안갯속에 꼭꼭 숨고 …



남벽 베이스캠프(이하 BC)는 히말라야 고원 도시 니알람(Nyalam·3900m)에서 이틀이면 당도할 수 있다. 첫날 신뎁(Shinthep·4600m)에서 야영한 우리 일행은 서둘러 BC로 향했다.



둘째 날 트레킹은 첫날보다 쉬웠다. 길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잡초가 무성했다. 시샤팡마는 ‘푸른 목초지의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을 히말라야는 모든 것이 메말라 있었다. 목초지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가 없었다면 사막이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았다. 짙은 안개와 진눈깨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바위들은 푸른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든 거대한 고래 같았다. 그나마 검은 바위들이 있어 방향 감각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거대한 고래등 위로 크고 작은 돌을 얹어 작은 케른(라마교의 돌탑)을 쌓았다. 행여 돌아올 때 길을 잃게 되면 이 케른이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5000m 못 미친 지점, 초지와 자갈밭이 어우러진 지점에 설연화(雪蓮花) 한 그루가 홀연히 피어 있었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생명은 진눈깨비를 맞아 누렇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히말라야 5000m 지점에서 발견되는 설연화는 땅바닥에 바짝 붙어 수줍게 꽃을 피운다. 화려하지 않은, 오히려 잿빛 거미줄처럼 음울한 기운이 서려 있다. 중국 한의학에서는 동충하초(冬蟲夏草)와 함께 영험한 약재로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은 설연화를 캐는 것을 금기시한다. ‘산에 있는 것을 캐면 산이 노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연화는 단 한 포기뿐이었다. 이후로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 산 아래는 단풍이 지는 가을이었지만 히말라야는 이미 겨울이었다.



시샤팡마 남면 베이스캠프. 작은 연못 옆으로 캠프를 친다.


오후 2시쯤 시샤팡마BC에 도착했다. BC는 작은 연못가에 있었다. 프랑스원정대 캠프가 보였다. 빙퇴석이 켜켜이 쌓인 황량한 모레인(Moraine) 지대에 놓인 한 점 외로운 캠프였다.



현역 군인으로 꾸려진 프랑스원정대 7명은 궂은 날씨로 애를 먹고 있었다. 한 달 전에 BC에 도착했지만 고작 ABC(전진 베이스캠프·5700m)까지만 등반했다고 한다. 강인한 체력의 대원들이었지만 변덕스러운 히말라야 날씨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후 3시쯤 텐트를 치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산 안개는 가실 기미가 없었다. 시샤팡마 남벽은커녕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사위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간간이 산 안개가 몰려가는 잠깐 사이, 연못 수면 위로 설산 꼭대기가 내려앉았다. 신비롭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빙하를 따라 올라 온 수증기는 끊임없이 남벽을 핥고 올랐다 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캠프 쪽으로 내려왔다. 부단히 올라가려고 노력하지만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돌’이 연상됐다.



5300m에서 맞는 밤은 녹록지 않았다. 살짝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음날 오전, 텐트 바깥으로 나오니 밤새 수증기가 얼어붙어 ‘살얼음 텐트’가 됐다. 남벽을 포기하고 곧바로 산을 내려왔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한 달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았다”는 프랑스원정대의 말이 고마울 정도였다. 하산 길에도 해발 5000m까지는 눈이 내렸고, 아래로는 비가 뿌렸다.



야크몰이꾼들이 시샤팡마 베이스캠프로 짐을 수송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검은 아스팔트길을 유영하듯 내달려



산에 올랐지만 산을 보지 못하고 내려온 마음은 착잡했다.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 지프를 타고 반대쪽인 시샤팡마 북면으로 가기로 했다. 니알람에서 차로 서너 시간 거리인 펠쿠 초(Pelhku Cho·5000m)가 우리의 새로운 목적지였다.



하지만 돈이 들었다. 가이드는 “운전기사가 추가 비용을 내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버틴다”며 “하루 지프 사용료와 기사 일당, 입장료를 합해 2500위안(약 44만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여기서 펠쿠 초까지는 300㎞ 떨어져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적은 돈이 아니어서 서울에 있는 여행사로 전화해 현지 가이드가 요구한 금액이 적당한지 물어보니 “300㎞라면 그 정도 금액은 무리가 아니다”라는 답변이 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니알람에서 펠쿠 초까지는 왕복 250㎞ 정도였다. 사방이 확 트인 고원의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내는 입장료 따위도 없었다. 운전기사에게 완전히 속은 것이었다.



G318 국도를 타고 북으로 달려 통 라(Tong La·5153m)와 라룽 라(Lalung La·5030m)를 넘은 다음에 내리막에서 좌회전했다. 두 고개에서는 랍치 캉(Lapchi Kang·7367m)이 한눈에 보였다. 불과 하루 전까지 짙게 껴 있던 안개와 구름이 완전히 사라지고, 터키옥 빛의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다들 “하루만 더 기다렸으면 저렇게 멋진 장면을 봤을 텐데…”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일기예보를 맹신하고 하산 결정을 내린 탓이었다.



펠쿠 초 가는 길은 아스팔트가 포장된 깔끔한 길이었는데, 길 옆 초지에 야생동물이 유유히 놀고 있었다. 당나귀와 산양, 흰 궁둥이를 뽐내는 히말라야 가젤 그리고 야생 야크도 보였다. 그야말로 히말라야 사파리 투어였다.



검은 아스팔트 길은 가늠할 수 없는 황무지를 두 조각 내고 있었다. 그 위를 SUV 지프가 유영하듯이 내달렸다. 모든 것이 정지해 있고, 우리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민가는 드문드문 나타났다. 티베트 전통 촌락은 어김없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모습이었다. 명암 대비가 확실했다. 빙하물이 고여 만들어진 마을 앞 호수는 아름답기 그지없었지만 마을이 등지고 있는 산은 황토색 절벽이었다. 절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토굴이 나 있었다. 오래전에는 이 아슬아슬한 절벽 안에 사람이 들어가 살았을 것이다. 땅벌의 집처럼 보였다.



산 아래는 50~100호 정도의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농토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주민은 모두 야크와 소·양을 키우고 있었다. 큰 산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 겨울이 길고 여름이라고 해도 눈 뿌리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일망무제의 황무지에서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하염없이 걷는 한 사내를 보았다. 검은 머리에 검은 옷, 검은 신을 신은 사내는 황무지 속을 빨려들어갈 듯이 걷고 있었다. 티베트 전통주 칭커주(酒)에 취한 취객인가 싶었는데, 비틀거리는 걸음은 아니었다. 사내는 황토와 자갈, 누런 풀이 무성한 길 아닌 길을 바삐 걸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은 얼추 5㎞는 넘어 보였다. 그래도 사내는 일절 흔들림 없이 마을을 향해 묵묵히 걷고 있었다. 거드름이 일상이 돼버린 티베트 사원의 승려와는 전혀 다른 걸음이었다. 흡사 축지법을 쓰는 도인 같았다. 사내에게 황무지는 전혀 장애물이 아니었다. 티베트에서 본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아스팔트 길은 시샤팡마 북면을 감상하기에 딱 좋았다. 당나귀 귀 모양을 한 시샤팡마 정상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더 가까이 들어가니 두 개의 귀 봉우리는 동쪽이 더 높았다. 펠쿠 초 호수에서 멀리 보였던 봉우리다. 이 봉우리가 시샤팡마 정상이고, 가까이 보이는 서쪽 봉우리는 시샤팡마 중앙봉(8008m)이다.



시샤팡마 북면과 서쪽 능선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사진 동호회가 시샤팡마를 찾는다면 펠쿠 초는 빼놓을 수 없는 촬영 포인트였다. 푸른 호수와 초지, 흰 설산이 어우러져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남벽을 보지 못하고 내려온 아쉬움이 한순간에 사르르 녹았다.  



시샤팡마(중국)=김영주 기자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 시샤팡마 베이스캠프 트레킹=시샤팡마는 중국 땅에 있지만 BC 트레킹은 네팔 카트만두에서 시작하는게 더 가깝다. 네팔에서 지프를 타고 중국 국경을 넘으면 곧바로 니알람이다. 카트만두에서 이틀이면 갈수 있다. 중국 라싸에서 접근하면 지프로 사나흘 정도 걸린다. 여행 적기는 봄·가을이며 일정은 일주일 정도다. 국내에서 M투어(02-773-5950)와 유라시아 트렉(02-737-8611)이 관련 트레킹 상품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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