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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정자 바꿔치기 ? 시험관 아기 괴담이 현실로

중앙일보 2014.01.16 00:40 종합 8면 지면보기
인공 수정 과정에서 정자가 뒤바뀐 사연의 당사자인 파멜라 브라넘(왼쪽)과 딸 애니가 지난 10일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지역 방송 KUTV에 출연해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KUTV 홈페이지 동영상 캡처]
요즘 극장 상영 중인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여섯 살 된 아들이 친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된 부부의 고민을 그려낸다. 유전자 검사 결과 아이가 출생 당시 병원에서 뒤바뀐 것이다. 그것이 고의적인 바꿔 치기라는 게 이 영화의 반전이다. 미국에선 최근 인공 수정 과정에서 바꿔치기가 일어난 ‘출생 괴담’이 현실화돼 논란이다.


22년 전 인공수정 얻은 딸, 유전자 검사해보니 불일치
정자는 사망한 병원 직원 것
아버지 "누가 뭐래도 내 딸"

 미국 텍사스에 살고 있는 파멜라 브라넘은 얼마 전 호기심에 가족 유전자 검사를 했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22세 된 딸 애니의 유전자가 남편 존과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브라넘은 추적 끝에 1992년 불임 클리닉에서 인공 수정으로 딸을 낳았을 때 정자가 뒤바뀐 것을 알게 됐다. 황당하게도 딸의 유전자는 당시 병원 직원 토머스 레이 리퍼트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리퍼트는 88년부터 92년까지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문제는 병원이 92년 문을 닫은 데다 리퍼트도 99년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브라넘 부부는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한 짓이라면 이런 상황이 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니냐”고 AP통신에 말했다. 사망한 리퍼트가 여성 납치 범죄로 2년간 실형을 산 전과자란 게 알려지면서 의문은 증폭됐다.



 불똥은 유타대 의대로 튀었다. 유타대 의대가 문제의 병원과 의료시설, 의료진을 일부 공유하는 파트너십 관계였기 때문이다. 유타대 측은 병원 폐업으로 관련 자료가 사라져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면서 유감을 밝혔다. 유타대에는 ‘내 자식도 리퍼트의 정자로 태어난 것 아니냐’는 문의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다. 유타대는 의뢰하는 가족에게 무료로 유전자 검사를 해준다는 방침이다.



 78년 영국에서 첫 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뒤 80년대 들어 미국에선 수많은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남성이 불임인 경우 부부 동의 아래 제3자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내의 난자에 인공 수정하는 경우도 보편화됐다. 하지만 정자·난자 및 수정란 관리 등은 개별 병원 재량에 맡겨져 있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유전병 예방 등을 이유로 인공 임신 관련 데이터를 연방정부에 연례 보고하도록 시행령을 마련한 건 92년이 돼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측은 “정자은행 등에서 샘플이 바뀌는 일이 없도록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규정 마련 이전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시험관 아기가 전체 신생아의 1%(미국 기준, 지난해 4만명 추산)에 이르는 이른바 ‘시험관 아기 가족(test tube family)’ 시대의 고민을 보여준다. 시험관 아기이든 인공 수정이든 임신의 전 과정이 의료진 통제하에 있는데, 부부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왜곡될 경우 당사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브라넘 부부의 딸 애니는 지역방송인 KUTV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친딸이 아니란 걸 알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은 이번 일로 더 돈독해진 모습이다. 아버지 존은 “누가 뭐래도 애니는 내 딸이고 우리는 가족이다. 딸이 음악적 재능을 리퍼트에게서 물려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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