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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칼럼] 고용안정·복지확대 없인 성장 없다

중앙일보 2014.01.16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경제학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도입을 선언하면서, 1994년 경제기획원이 재무부와 재정경제부로 통폐합된 후 없어졌던 정부의 ‘계획’ 기능이 20년 만에 부활됐다.



 의미심장한 일이다. 개방하고 시장에 맡겨두기만 하면 경제가 잘될 것이라는, 지난 20여 년 동안의 우리 사회 통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률은 급격히 감소해 왔다. 과거의 ‘잘못된’ 국가주도형 경제 모델을 고쳐 성장을 촉진한다면서 적극적으로 개방, 민영화, 규제완화를 추구했지만 경제성장률은 계속 떨어졌다. 1962년에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김영삼 정권 때 폐기될 때까지 경제성장률은 1인당 소득 기준으로 6%가 넘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7~8년은 4% 부근으로 떨어졌고, 지난 6~7년 동안은 그나마 2%대로 떨어졌다.



 경제가 성숙하면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장률이 갑자기 3분의 1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지나치게 개방되고 자유화되면서 기업의 장기투자가 힘들어졌고, 경제계획과 산업정책이 폐기되면서 신산업 개발이 더뎌졌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일어난 변화는 성장의 둔화만이 아니다. 고용이 불안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높았던 비정규직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으로 올랐다. 정규직도 과거에 비해 고용이 극도로 불안해졌다.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세계에 유례없는 의대 편중 현상은, 고용 불안정에 대한 공포가 우리 젊은이들을 얼마나 안전제일주의로 몰아넣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이에 더해 복지제도의 미비는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우리나라의 공공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 수준으로, 멕시코에 이어 OECD 회원국들 중에서 둘째로 적다. 상대적으로 복지를 안 한다고 하는 미국(20%)에 비해도 반 정도밖에 안 된다.



 고용은 불안한데 육아·교육 등에 대한 보조가 미비하니 아이들을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출산율은 세계 최저가 되었다. 실업보험과 연금이 형편없으니, 실직을 한다거나 은퇴를 하면 살길이 막막해진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중년·노년 자살이 급증하면서, 1995년까지 10만 명당 자살률은 12명 부근으로 OECD 평균인 16명에 한참 못 미쳤지만 이제는 33명 수준으로 단연 세계 1위가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고용을 안정시키고 복지제도를 확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하위를 자랑하는 정말 살기 힘든 나라로 굳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강조돼야 할 것은, 고용을 안정시키고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는, 적절한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복지 확대를 통해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면, 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높은 저소득층이 안정적으로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게 되어 내수가 진작되면서 성장에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복지제도를 통해 최저생활을 보장해주고, 실업보험·재교육 등의 확대를 통해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게 해주면, 노동자들이 더 진취적이 되어 경제성장이 촉진된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직업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고, 기존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구조조정에 저항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되면, 신산업 창출이 더 쉬워지고 구조조정이 신속해져서 성장에 도움이 된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고용안정과 복지확대 없이 경제의 성장동력을 진정으로 회복시킬 수 없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경제학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석사·박사.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2003년 뮈르달상 수상. 2005년 레온티예프상 수상.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 『국가의 역할』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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