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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방에 '세한도' 걸린 까닭은

중앙일보 2014.01.15 02:30 종합 12면 지면보기
대전에 사는 박구용(97)옹이 양승태(66) 대법원장에게 소포로 보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모작(模作). 박옹은 “양 대법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사법부가 세한도의 소나무가 돼야 한다’고 언급한 것에 감동받아 8년 전 300만원에 산 이 그림을 보냈다”고 했다. [사진 대법원]


양승태(66) 대법원장 비서진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대법원장 접견실에 새 작품을 걸 빈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방에는 김창렬 화백의 ‘회귀’, 김종수 화백의 ‘여름날의 송림’, 서예가 학정 이돈흥의 ‘채근담 글귀’ 등 유명 화가와 서예가의 작품 10여 점이 걸려 있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설 새 작품은 조선시대 명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문인화 세한도(歲寒圖)의 모작(模作)이다. 외국의 사법부 수장들도 방문하는 등 한국 사법부의 접견실 역할을 하는 이곳에 진품이 아닌 모작이 걸리는 것은 처음이다.

"사법부가 세한도 소나무처럼 양 원장 신년사 마음에 와닿아"
대전 97세 박구용옹이 모작 보내



 고민은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소포 하나가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수신인은 양승태 대법원장. 소포 속에 들어 있던 것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였다. 소포를 보낸 이는 대전시 서구 관저동에 사는 박구용(97)옹이었다. 그림과 함께 동봉한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에서 박옹은 “8년 전 300만원을 주고 세한도(모작)를 구입했다”며 “제게는 아주 소중한 그림이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원장님께 이 그림을 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장님의 신년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며 “내 손을 거친 세한도를 대법원장님이 보관해 주신다면 영광스럽게 여기겠다”고 덧붙였다.



 앙 대법원장은 이달 초 발표한 신년사에서 “세한도가 절절히 전하다시피 잎이 다 떨어지는 삭막한 한겨울이 돼서야 사람들은 소나무의 시들지 않는 생명력을 알게 된다. 사법부가 세한도의 소나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법부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로서 꿋꿋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신년사를 접한 박옹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소장하던 그림을 대법원장에게 보낸 것이다.



 우체국 공무원이었던 박옹은 94세였던 2011년 한라산 등반에 성공해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등정인증서를 받기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부인인 송경호 여사와는 72년간 해로해 2011년 대전시에서 ‘백년해로상’을 받기도 했다. 박옹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장이 언급한 세한도에 담긴 뜻을 다른 법관들도 잘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얻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대전시에 사는 다른 분이 소장해 오던 세한도가 마음에 들어 8년 전에 샀다”고 설명했다.



 양 대법원장은 세한도를 접견실에 표구해 걸 예정이다. 양 대법원장은 “세한도에 담긴 의미를 깊이 되새기겠다”며 “보내 주신 마음을 감사히 받아 법원 발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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