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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곯던 노숙자, 스타 소리꾼 무형문화재 됐다

중앙일보 2014.01.15 00:26 종합 26면 지면보기
김준호(왼쪽)·손심심(오른쪽)씨 부부가 일요일인 지난 12일 부산 금정산 자락에 있는 부산민속예술 보존회에서 후배들에게 우리 소리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1990년대 후반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걸쭉한 입담으로 우리 소리를 쉽게 설명하는 한 소리꾼 덕분에 어깨춤을 덩실거린 적이 있다. 가슴을 뚫는 듯한 창법과 동·서양 음악을 넘나드는 그의 강연을 듣노라면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이 절로 생겼다. 바로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호통치며 전 국민을 웃기고 울린 소리꾼 김준호(51)씨 얘기다. 그가 부산시 무형문화재 4호 ‘동래 지신밟기’ 예능보유자로 14일 지정됐다. 전통 국악인 출신이 아닌데 무형문화재가 된 건 이례적이다.

부산 '동래 지신밟기' 보유자 김준호
"우리 것 우습게 보지 마시라"
아내와 매주 소리·춤 무료 전수



 그는 “어려운 우리 소리를 재미있게 설명해 온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좋아한 사람은 부인 손심심(51)씨였다. 두 사람의 만남이 드라마틱했다. 첫 만남은 88년 부산의 한 극단에서였다. 부산대 국문학과를 중퇴한 김씨가 극단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시골노인들을 찾아 우리 소리를 배울 때였다. 손씨는 여고에서 국악 취타대를 하다가 동아대 무용학과로 진학해 한국 무용에 빠져 있었다.



 손씨는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극단을 찾았다가 그의 소리에 반했다. 내가 활동하던 공연단체로 와서 우리 것을 함께 배우자고 그에게 권했다”고 말했다. 그때 김씨가 내걸었던 조건은 “포장마차 술값 갚아주고 밥 실컷 먹여 달라”였다.



 김씨는 노숙자 출신이다. 가출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어린 동생 2명을 부양했던 그는 방범대원, 국숫집 아르바이트 등 온갖 잡일을 해야 했다. 82∼88년까지 6년 동안 대학에 다녔지만 졸업은 못했다. 대학을 포기하고 삶에 지친 그는 부산역과 서울 용산역을 떠돌며 노숙자 생활을 했다. 88올림픽을 한다고 역 화장실에 따뜻한 물이 나왔다.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 바바리 차림의 그는 ‘도인’으로 소문났다. 사주팔자를 묻는 행인들에게 우리 소리를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소시지 값을 벌어 허기를 채웠다.



 배곯지 않게 해달라는 김씨의 조건은 받아들여졌다. 그 후 두 사람은 함께 공연하러 다니면서 사랑을 키우다가 95년 결혼한다. 그때부터 ‘온달’을 어엿한 장수로 만들기 위한 ‘평강공주’의 작전이 시작됐다. 우리 것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아이 없이 ‘무자식 상팔자’로 살기로 결심했다.



 여러 단체에서 하는 우리 소리 강연의 반응이 좋자 방송국 출연요청이 왔다. 95년 부산 KBS에서 첫 방송에 출연한 뒤 MBC에 등장하면서 방송가의 스타가 됐다. 요즈음 그는 국악방송에서 어려운 국악을 쉽게 설명하는 ‘오락학교 가락방’을 진행하며 ‘가늘고 길게’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요즈음 일요일마다 부산 금정산 자락에 있는 부산민속예술보존회서 4시간씩 후배들에게 우리 소리와 우리 춤을 무료로 지도한다. 부부가 50세가 되던 지난해 8월 결심한 일이다. “내 실력 다 가져가라”며 막걸리와 밥을 사줘 가며 지도한다.



 두 사람은 대학생들의 강의 요청이 있으면 차비만 받고 전국 어디라도 달려간다. 벌써 10여 년째 하는 일이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을 보고도 우리 것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이들이 없어질 때까지 떠들고 다닐 거요.”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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