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누가 불 질렀나 … 끝나지 않은 비극

중앙일보 2014.01.15 00:23 종합 23면 지면보기
극단 ‘목화’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의 첫 번째 작품은 ‘자전거’다. 오태석 대표가 1983년 극을 썼고, 그 해 동랑레퍼토리에서 초연한 뒤 87년과 2004년 극단 ‘목화’에서 무대에 올린 연극이다.


30주년 기념 연극 '자전거'

오 대표는 ‘자전거’를 30주년 기념작으로 고른 까닭에 대해 “올해가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다. 다들 전쟁이 끝났다 생각하지만 우리는 아직 휴전 중이다. ‘왜 우린 아직 이 우스꽝스러운 장벽을 못 치우고 있나’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전거’에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담겨있다. 오 대표의 고향인 충남 서천에서 실제 발생했던 ‘등기소 학살사건’이 주요 소재다. 50년 9월 퇴각하는 인민군이 지역 유지 200여 명을 등기소 창고에 가둬놓고 불을 질러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연극 ‘자전거’는 84년 충남 서천을 배경으로, 면사무소 윤 서기가 동료인 구 서기에게 자신의 결근계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등기소 학살사건 때 숨진 아버지의 제삿날, 윤 서기는 귀갓길에 어떤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고 42일 동안 멍하게 지냈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의 조각조각을 이어붙이는 게 연극의 얼개다.



 극을 끌어가는 또 다른 사건은 마을 외딴 곳 ‘솔매집’에 사는 문둥이(한센병) 가족 이야기다. 네 아이를 낳아 모두 이웃 한씨네로 보내버렸다. 그런데 네 아이 중 첫째와 둘째가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렸고, 첫째는 솔매집으로 가 불을 지른다.



 도무지 무슨 상관인지 모를 비극들이 ‘방화’라는 공통 소재 아래 묶여 있다. 등기소 학살사건 당시 인민군들의 협박에 못 이겨 불을 붙였던 윤 서기의 당숙은 그날 죽은 사람들의 제삿날마다 윤 서기 집을 찾아와 자기 얼굴을 사금파리로 긁어 피를 내며 괴로워한다.



또 어미 집에 불을 지른 첫째는 “아이고 엄니, 울 엄니 내가 죽였네, 내가 무서서 그랬어”라며 울부짖는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이 뒤엉켜 만들어낸 죽음과 이별, 죄책감과 그리움을 압축해 보여주면서,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비극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구 서기의 마지막 대사 “네가 불지른 거 아니야?”는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질문이다. 공연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타시티예술공간SM에서 2월 2일까지 계속된다.



이지영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