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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탈춤에서 배웠다 우리만의 연극 터닦기 … 30년 세월 후딱 흘렀네

중앙일보 2014.01.15 00:23 종합 23면 지면보기
오태석 ‘목화’ 대표가 13일 서울 대학로 스타시티예술공간SM에서 단원들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안들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로 팔짝팔짝 뛰기도 했고,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진 극단 ‘목화’]
“사람에겐 평소 쓰지 않는 머리가 있어요. 허구를 만날 때만 쓰는 머리죠. 그 머리를 쓰는 재미가 연극의 재미에요.”


극단 '목화' 대표 오태석
84년 대학로서 동인제로 시작
손병호·유해진 등 스타 키워내

 1962년 데뷔 이래 반세기 넘게 연극판을 누벼온 그의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다. 극단 ‘목화’의 오태석(74) 대표. 올해는 ‘목화’ 창단 서른 돌을 맞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감회가 남다르다.



 창단 30주년 기념극 ‘자전거’ 공연으로 바쁜 새해를 맞이한 그를 13일 서울 대학로 스타시티예술공간SM에서 만났다.



 ‘생각하는 재미’를 창출하기 위한 그의 전략은 무엇일까. 비논리적인 전개, 생략과 비약, 엉뚱함과 모호함 등이 그의 작품에서 교차한다. 평론가 이영미씨는 그의 연출에 대해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간 것은 색깔이니까) 파라면 하늘, (하늘엔 구름이 떠있고 햄릿은 구름을 보면서 폴리니우스를 놀렸으니까) 햄릿은 죽는다’로 연결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위 문장에서 괄호를 생략하면 말의 흐름을 이해할 수 없다. 오태석의 연극은 관객이 괄호의 의미를 캐기 위해 머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의미다.



 - 줄거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태석 연극은 어렵다’는 평도 많다.



 “연극에선 관객의 몫이 6할이다. 난 4할만 만들면 된다. 음식으로 친다면, 연극 만드는 사람의 역할은 재료 깨끗이 손질해 차려놓는데까지다.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는 관객이 결정한다. 생략과 비약이 만들어놓은 틈으로 관객들이 들어와 마음대로 상상하고 해석하면서 즐거워한다.”



 - 모든 관객이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나.



 “물론이다. 누구나 자신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꿰고 완성해낼 수 있다. 나는 관객의 그 능력을 믿고 지금껏 작품을 만들었다. 난 우리 단원들에게 논어에 나오는 ‘거경이행간(居敬而行簡)’을 강조한다. 남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언행을 간결하게 하라는 뜻이다. 관객을 믿을수록 대사가 짧아진다.”



 그가 84년 만든 목화는 동인제(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으로 권리와 의무를 행사) 방식으로 운영된다. 손병호·유해진·박희순·정은표·성지루 등 연기파 배우들이 거쳐갔다. 그에 따르면 “그동안 단원들 지하철 표값만 줄 수 있어도 다행”일 정도로 형편은 줄곧 어려웠다. 그는 “단원들 대부분 나이 서른다섯에서 마흔 사이에 ‘목화’를 떠난다”고 했다. “돈 없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그때까지”라는 얘기다.



 그 역시 그렇게 배고픈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62년 연세대 철학과 학생이었을 때다. 상금 30만원이 탐나 ‘신인예술제’ 희곡 공모전에 하룻밤만에 쓴 작품 ‘영광’을 출품했고, 그게 당선작으로 뽑혀 명동예술극장에 올릴 연극으로 연출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현역이다. 매년 새 희곡을 쓰고 무대에 올린다. ‘만파식적’ ‘춘풍의 처’ ‘태’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등 그의 작품 수는 ‘70’을 넘어간다. 지금도 매일 단원들의 연기 지도를 직접 한다. “연극은 살아있는 생명체여서 매일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목화’ 30주년 기념 연극 ‘자전거’의 한 장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진 극단 ‘목화’]


 - 연극의 어떤 매력에 빠진 건가.



 “열한 살 때 6·25를 겪었다. 와세다 대학 나온 변호사 아버지, 기사 딸린 승용차 타고 다녔던 아버지가 붉은 완장을 두른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맏이인 내 밑으로 동생이 셋이다. 서른한 살 우리 어머니는 그때부터 남편 없이 자식 넷 키우느라 고생 많이 하셨다. 내게 ‘현실’이란,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불안한 존재다. 현실을 믿지 않기로 했다. 연극은 ‘허구’라서 편안했다. 허구 속에 들어가는 시간을 되도록 길게 잡고 싶었다. 난 평생 연극이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철이 없다.”



 -‘오태석 연극’에선 모든 배우가 맨발·맨얼굴로 무대에 선다. 또 배우들이 다른 배우의 얼굴이 아닌 관객을 쳐다보며 말한다.



 “사람이 제대로 힘을 주려면 맨발이어야 한다. 또 계속 땀을 흘리는데 어떻게 분장을 하겠나. 관객을 향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판소리나 탈춤 등 우리 전통 공연에서 따온 것이다. 서구의 연극은 배우들끼리의 움직임을 관객이 훔쳐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관객이 ‘관음증 환자’도 아니고…. 관객 불러놓고 딴 데 쳐다보며 얘기하면 민망하지 않나.(웃음)”



 - 앞으로 어떤 연극을 만들고 싶나.



 “말을 곱게 전달하는 게 연극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을 통해 모국어를 순수하고 생생하게 가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 내 연극 중엔 흉악한 장면이 많지만 욕은 없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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