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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안방 휘어잡은 중국 '붉은 드라마'

중앙일보 2014.01.15 00:21 종합 21면 지면보기
항일전쟁 시기 국민당 정보요원이 공산당을 돕는 내용의 중국 드라마 ‘쳰푸(潛伏)’. [중앙포토]
요즘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은 중국의 중년배우 쑨훙레이(孫紅雷·44)다. 현재 북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드라마 ‘쳰푸(潛伏)’에서 주인공 위쩌청(余則成) 역을 맡고 있다.


북한 당국 선호 혁명·항일 소재
장성택 처형 이후 더 인기 끌어

 중국 관영 중앙TV(CC-TV)는 14일 북한의 안방을 중국 드라마가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수년 전 옛 소련과 러시아 드라마가 주류였던 것과 딴판이다. 북한에선 정해진 시간에 드라마를 방영하는 게 아니고 사전 예고 없이 방영한다. 그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TV를 지키고 있다.



 북한에서 방영된 모든 드라마는 두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공산혁명을 고취하는 내용이거나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스토리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 드라마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경쟁력 있다는 것이 CC-TV 평가다.



 ‘쳰푸’는 2008년 중국에서 방송된 것으로 항일전쟁 시기 국민당 군대의 고위 정보국 관리가 국민당의 부패에 혐오를 느껴 공산당을 도와 공산당 조직 재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노동당의 권위와 체제 강화를 노리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최고의 드라마인 셈이다.



 쑨은 이 드라마 주연을 맡아 이듬해인 2009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수차례 방송을 했는데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장성택 처형 이후에는 거의 광적으로 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 비단 ‘쳰푸’만이 아니다. 고대 아버지를 대신해 흉노족을 막기 위해 입대를 자청해 장군의 반열에 오른 여성전사 ‘화무란(花木蘭)’, 6·25에 참전했다 사망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 등 10여 편이 최근 1년 동안 방송을 했거나 방송 중이다. 너무 많은 중국 드라마가 방송되다 보니 상당수 드라마는 더빙을 못해 북한말 자막을 넣어 방송하고 있을 정도다. 간간이 서방 드라마도 방영하고 있다. 2011년 북한과 영국 수교기념일을 맞아 영국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Really bend it like Beckham)’을 방영한 적이 있으나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북한의 이 같은 중국 드라마 열풍은 한국 드라마 유입으로 인한 한류를 막고 장성택 처형 이후 소원해진 북·중 관계를 복원해 보려는 전략적 고려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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