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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 아베' 손잡은 두 전직 총리

중앙일보 2014.01.15 00:18 종합 18면 지면보기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오른쪽)와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왼쪽)가 ‘탈원전’으로 연대해 아베 신조 총리 견제에 나섰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14일 모리히로 전 총리와 회동한 뒤 다음 달 9일 실시되는 도쿄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모리히로 전 총리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기자들에게 밝히고 있다. [도쿄 로이터=뉴스1]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71) 전 총리발 ‘반란’이 일본 정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탈원전 주장하던 고이즈미
모른 척하는 아베에게 섭섭
지사 출마한 호소카와 지원



 고이즈미는 14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75) 전 총리와 회동을 하고 다음 달 9일 치러지는 도쿄도지사 보궐선거에서 호소카와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자민당이 지원하는 후보가 아닌 호소카와와 손을 잡은 건 사실상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1993년 8월 야당인 일본신당의 대표였던 호소카와는 자민당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으며 비(非)자민 연립정권의 총리로 취임해 8개월간 재임한 인물이다. 자민당 출신으로 아베 총리를 사실상 발탁해 키워낸 정치적 스승인 고이즈미가 정치적 성향이 완전 다른 호소카와를 끌어내 ‘호소카와-고이즈미 연합’를 이루고 ‘타도 아베’를 선언하게 된 고리는 ‘탈원전’ 문제다.



 2008년 정계를 떠난 고이즈미는 돌연 지난해 말부터 “정치 지도자가 마음만 먹으면 원전을 즉각 없앨 수 있다”며 ‘탈원전’의 기수를 자처하며 아베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아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중동국가를 돌며 ‘원전 세일즈’에 열을 올렸다.



 이에 발끈한 고이즈미가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차에 도쿄도지사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 것이다. 총리 재임 중 동물적인 정치적 후각을 발휘하며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고이즈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선거의 쟁점을 ‘탈원전’ 하나로 집중해 후보로 나서라. 내가 전면 지원하겠다”고 평소 ‘반원전’ 주창론자인 호소카와 전 총리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고이즈미는 2005년에도 그랬다. 자신이 추진하던 우정 민영화 법안이 국회에서 무산되자 돌연 “우정 민영화를 반대하는 저항세력과 싸움을 벌이겠다”며 중의원을 해산, 우정 민영화 하나에만 초점을 맞춘 총선을 치렀다. 결론은 압승이었다.



 고이즈미가 이날 “이번 선거는 원전 없이도 일본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그룹과 원전 없이는 일본은 발전할 수 없다고 보는 그룹 간의 싸움”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출마를 망설였다고 한다. 측근 인사들도 “말년을 더럽히지 마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전면 지원을 약속한 데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 아베 정권의 거침없는 독주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전직 총리의 지사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아베를 포함해 총리 경험자는 전후(戰後) 33명 있지만 퇴임 후 지사 선거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소카와는 총리 재임 중이던 93년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역대 총리로는 처음으로 “일본은 가해자”란 표현을 썼다. 또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일본의 무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며 창씨개명 등의 있을 수 없는 일을 했다” “천황(일왕)이 미국·유럽·중국·동남아시아를 방문하면서 한국을 가지 않은 것은 잘못된 순서 판단이며 신속히 방한해야 한다” 등의 소신 발언을 했다.



 호소카와의 출마로 도쿄도지사 선거는 집권 자민당의 지지를 확보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65) 전 후생노동상과 호소카와의 치열한 2파전으로 압축됐다.



 일 정치권에선 “호소카와가 당선될 경우 아베의 집권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며 “야권의 재편 등 정치개편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고이즈미=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의 비서를 거쳐 1972년 정계에 입문해 2001년 4월부터 1980일(5년5개월)간 총리로 재임했다. 총리 재임 중 5년 연속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한번 결심하면 고집을 꺾지 않아 ‘헨진(變人·괴짜)’이라 불렸다.



◆호소카와=규슈 구마모토(熊本)현의 옛 번주였던 호소카와 가문의 제18대손이다. 아사히(朝日)신문 기자를 거쳐 자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1992년 정치개혁을 내걸고 일본신당을 결성했다. 98년 정계를 은퇴한 뒤 도자기를 구우며 은둔생활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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