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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 명 찬반 댓글이 '변호인' 1000만 영화로 키웠다

중앙일보 2014.01.15 00:16 종합 12면 지면보기
현대사, 더구나 유명 실존인물의 실화는 스크린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영화 ‘변호인’이 이번 주말을 전후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18일 개봉 이래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지금껏 관객 약 950만 명을 동원했다. 국내 극장가에서 1000만 영화는 이번이 10번째다. 10편 중 ‘아바타’를 제외한 9편이 한국영화지만, ‘변호인’만큼 개봉 전부터 큰 논란이 된 경우는 없었다.


10번째 흥행 대기록 비결
노무현이 모델이지만 거리 둬
이슈 버무린 영리한 전략 통해 "뜨거운 소재 필요이상 달궈"
정치권에선 확대 해석 경계



 널리 알려진 대로 주인공 송우석(송강호)의 모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우리 사회의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인물이다. 포털사이트에선 개봉 전부터 최하 평점을 주는 이른바 ‘평점 테러’가 벌어졌다. 무조건 봐야 한다는 식의 댓글도 따라 늘었다. 현재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이 영화 평점을 올린 이는 8만여 명에 달한다.



 논란을 충분히 예상한 듯, 영화의 만듦새는 상업적으로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다. ‘노무현 대통령 전기’와도, ‘정치인 노무현’과도 거리를 뒀다. 대신 1980년대 초 부산에 갓 개업해 시대적 현실과 거리를 두고 돈벌이에 몰두하던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인간적 모습에 집중했다. 극중 재판에 등장하는 논리는 아주 상식적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는 이 영화의 명대사로 꼽힌다. 이런 극적 전개는 80년대를 직접 체험한 중장년층은 물론 20~30대 젊은 층, 심지어 주인공 모델이 누군지 모르는 관객까지 불러모았다.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서 이 영화를 예매한 관객은 40대 이상이 45%로 가장 많지만 30대와 20대도 각각 34%, 18%를 차지한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극장 안에서 누군가 촬영한 불법동영상까지 나왔다. 실화와 영화를 비교하는 관심도 높다. 시나리오까지 직접 쓴 양우석 감독은 “극중 인물 중 누구는 실제 누구라는 식의 비교도 있던데, 바라지 않는 바”라며 “여러 인물을 허구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흥행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채롭다. 경희대 사회학과 김중백 교수는 “이렇게 빠른 시간에 많은 사람이 한 영화에 몰린다는 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됐다는 얘기”라면서 “오락성만 가지고 흥행이 될 수 없다. 불통의 시대에 소통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 같다”고 설명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주인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었는데, 살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들을 할 것”이라며 “‘국가는 곧 국민’이란 말에 특히 중장년 관객이 많은 회한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호평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영화평론가 박우성씨는 “웅장한 음악, 잦은 클로즈업 등이 안 그래도 뜨거운 소재를 필요 이상으로 달군다”면서 “뜨거운 것을 뜨겁게 주장하는 것보다 오히려 차갑게 성찰하는 것이 극단적 대립이 난무하는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에서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극중 송우석 변호사가 서민들의 삶에 뛰어들어 진정성을 보여주는 모습이 공감을 주는 것 같다”면서 “이를 친노 세력이 세를 불려나갈 계기라거나, 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는 건 아전인수”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나도 관객 중 하나”라면서 “정치적인 색깔이 있지만 영화적으로 흥행할 만하게 잘 만들었다. 당 차원에서 환영하고 박수 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왈가왈부할 성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존에도 1000만 영화들은 비극적 실화와 현대사를 다룬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이래로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지난 대선을 석 달 앞두고 개봉한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열망을 담은 영화로 풀이되기도 했다. 그 사이 ‘해운대’나 ‘도둑들’처럼 오락성을 전면에 내세운 1000만 영화도 나오긴 했지만, ‘변호인’은 사회적 이슈나 화제성이 1000만 영화의 흥행코드로 위력적이란 걸 확인시킨다.



이후남·임주리·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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