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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대는 기술개발로 평가받아야

중앙일보 2014.01.15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건우
서울대 공대 학장
최근 영국 왕립공학한림원과 한국 공학한림원이 공동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양국 과학기술을 서로 비교하게 했더니 두 나라 공학한림원의 석학들은 서로 상대국이 자국보다 앞섰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상당수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유럽 여러 나라보다 선도적 위치에 있다. 그 중심에는 한국의 공과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글로벌 기술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의 공대들이 산업·과학기술을 이끌 창의적·도전적 인재를 양성하고 선도적 연구결과를 계속 내려면 지금과 차원이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달 서울에서 ‘서울대-칭화(淸華)대-도쿄(東京)대 3개 대학 공과대학장 연석회의’가 열렸다. 이틀간 한·중·일 공대의 현안과 미래 방향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가장 큰 성과라면 3개 대학이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한결같이 ‘공대의 정체성’을 문제로 꼽았다. 공대의 정체성이란 기술과 국가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끌기 위해 공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의미한다. 우리도 한국 공대들의 교육·연구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며 공대 교수에 대한 평가의 초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이뤄진 이공계 대학·교수에 대한 평가에서 논문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따라서 공대와 공대 교수들은 연구에 많은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교육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공대에서 진행되는 연구가 산업발전을 이끌 수 있는 것보다 논문의 양적인 면에 치우친 연구, 즉 연구를 위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공통적인 우려였다.



 일본은 공대 교수들이 산업체와의 공동 연구가 적었지만 칭화대는 산업체 현장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도시바·GE·GM·삼성 등 글로벌 기업에 학교 공간을 내주면서 산학 교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는 일본보다는 산학 연구가 많은 편이지만 중국보다는 덜 활발한 상태다. 그런데 한·중·일의 세 공대 모두, 교수들에 대한 평가가 논문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최근 들어 산학 연구가 위축되는 경향이다. 특히 칭화대는 예전엔 교수나 학생들의 창업을 장려해 학내에 많은 회사를 세우는 등 산학 교류가 상당히 활발했지만 지금은 산학 활동이 많이 위축됐다고 한다.



 칭와대·도쿄대 공대학장들과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공대의 정체성’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동질감도 느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국내의 여러 대학평가나 국가사업 및 연구비 선정 과정에서 공대나 공대 교수들에 대한 평가지표가 대부분 논문 위주로 구성되다 보니 교수들은 논문을 잘 얻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공대는 시간이 갈수록 국가적 요구와 산업발전과 점차 괴리되고 있다. 이런 괴리는 한국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제 공대는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쌓아온 학문적 성과가 산업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도 유연한 교육체계 아래서 실질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춰야 한다. 논문 위주의 잣대를 과감히 집어 던지고, 연구와 교육이 과연 얼마나 산업기술 발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됐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을 진행할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공대와 공대 교수들이다. 우리 사회도 공대가 이런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과 적절한 평가 기준을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 국민적 감시와 성원 아래 공대가 올바르게 변화하면 국가 발전과 혁신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이건우 서울대 공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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