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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1994년의 씁쓸한 추억

중앙일보 2014.01.15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응답하라 1994’가 지난해 흥행몰이를 했다는데 1994년이 추억의 대상으로 등장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게다.



  2012년 말 국무총리실 산하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발간한 ‘경제사회 지표 변화로 본 대한민국’을 들춰보니 94년을 전후했던 ‘그때’는 저성장의 덫에 빠진 2014년 한국 경제가 추억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당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93년 6.3%에서 94년 8.8%, 95년 8.9%로 올라갔고, 가계소득 증가율은 93년 8%에서 94년엔 14.8%로 뛰어 오르더니 95년(12.8%), 96년(12%) 두 자리 증가를 이어갔다. 반대로 실업률은 2.9%(93년)→2.5%(94년)→2.1%(95년)로 꾸준히 떨어졌다.



 정치적으로도 대한민국은 리더십의 교체가 이뤄졌다. 신촌의 대학가는 처음으로 육사 출신이 아닌 민간 대통령을 만났다. ‘문민 정부’를 전면에 내세운 김영삼 정부는 출범 첫해인 93년 하나회 척결로 한국 정치에서 군부가 작동할 싹을 잘라 버렸다. 문민정부 시절 12·12는 군사반란으로 규정되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법정에 섰다. 나라 바깥으론 ‘세계화’로 93년 242만 명이던 내국인 출국자 수는 96년 465만 명으로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존파 사건과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사회적 혼란과 북한발 영변 핵 위기와 같은 남북 관계의 초긴장도 있었지만 어쨌든 추억할 만한 여건은 만들어졌던 셈이다.



 하지만 제대로 추억해야 할 것은 그 이후다. 90년대 초 이른바 ‘X세대’의 풍요는 근본적으로는 그 부모 세대가 ‘잘 살아보세’라는 기치 아래 쉬지 않고 일하며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데 쏟았던 무한 헌신이 바탕이었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 말 한국 사회를 강타한 IMF 위기 이후 이런 우리 사회의 믿음은 무너져 갔다. 그렇다면 우리의 핏속을 흐르는 에너지를 되살려 ‘다 함께 잘 살아보세’로 바꾸어야 했는데 고착화되는 진영 논리는 진보의 ‘다 함께’와 보수의 ‘잘 살아보세’로 현안마다 대치하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치에서다. ‘문민 리더십’은 완성됐지만 ‘리더십 교체’에선 여전히 정치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임기 첫해에 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 인준을 6개월 가까이 반대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 탄핵 사태가 벌어졌으며, 이명박 정부에선 광우병 괴담에 야권이 동참했고, 박근혜 정부에선 대선 불복 사태가 벌어졌다. 패자의 팔로어십은 20년간 승자를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진화했고, 이를 감싸 안으면서도 돌파할 승자의 리더십은 완성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94년을 재등장시키는 ‘추억 마케팅’은 씁쓸하다.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20년 전의 기억보다는 20년 후의 기대감이 더 커야 한다. 그러니 94년을 추억하고 싶다면 보수와 진보, 여와 야를 떠나 2034년을 향한 각성부터 하는 게 순서다.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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