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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부모에게 받은 상처, 딸에게 똑같이 준다는 워킹맘

중앙일보 2014.01.15 00:05 강남통신 8면 지면보기
Q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엄마입니다. 직장맘이라 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시간에는 더 좋은 엄마가 되자, 같이 보내는 시간의 양보단 질로 승부하자,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요. 어린 시절 끔찍하게 싫었던 엄마의 행동이나 말을 저도 모르게 딸에게 똑같이 하는 모습을 최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엄마처럼 내 딸에게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하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합니다. 왜 그런 건가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제 딸에게 상처주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A 가족은 상처이자 자존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화목해 보이는 가족도 알고 보면 다 상처가 있습니다. 반대로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인 가족도 막상 타인이 가족 험담을 하면 크게 분노합니다. 가족은 그저 따뜻하고 소중한 관계라고 정의내리기에는 매우 복잡한, 다양한 감성 반응이 서로 오가는 유기체라 생각됩니다. 특히나 부모 자녀 관계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적 원형이죠. 그만큼 감성의 상호 작용도 강렬합니다.



현대 의학이 원인 분석과 문제 해결 중심으로 가다 보니 그 영향을 받은 정신의학 역시 문제 원인을 찾지 못하면 불안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가 어떤 문제행동을 보일 때 그 심리적 문제의 주범을 늘 만만한 엄마·아빠한테 찾기 일쑤입니다. 아이 낳고 키우기도 힘든데, 아이한테 문제가 생기면 ‘다 너 때문’이란 비난까지 듣게 되니 죄책감과 억울함이 동시에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라도 좋은 역할과 함께 악역까지 맡게 되는 꼴입니다.



 사연 주신 분, 정말 닮고 싶지 않은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자신에게 놀라셨다고요. 대를 이어 악역을 하는 셈인데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이 답을 하기 앞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형태로 심리적 영향을 주는지 한번 생각해 보죠.



 우선 긍정적인 영향입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심리적 자산을 부모로부터 받습니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부모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이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시작되는, 다분히 신경생물학적 반응입니다. 뱃속의 태아, 너무나 소중하죠. 그러나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태아는 미성숙 그 자체입니다. 그런 불완전한 태아가 잘 자랄 수 있는 건 엄마와 연결된 태를 통해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생물학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이 그 역할을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물질(옥시토신)로 전환돼 작용하는 겁니다. 엄마 배에서 막 나온 갓난아기도 태아와 마찬가지로 혼자 살 수 없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할 때 이 아이의 뇌에는 다른 사람과 따뜻한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자라나게 됩니다. 따뜻한 사랑을 주는 부모의 역할이 뇌 안에 내재화해 부모가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갖게 되는 거죠. 뇌 신경망 안에 부모의 사랑이 입력돼 작동한다고나 할까요.



 두번째는 그 사회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를 부모와의 대화 속에서 배우게 됩니다. 이건 구구단 외우는 것 같은 학습과는 다른 겁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틀(프레임)을 갖게 되는 거죠. 언어 소통을 통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틀을 관계 틀(relational frame)이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관계 틀이 무의식에 내재화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감정·생각 그리고 행동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간 아들, 우는 게 오히려 당연합니다. 가정을 벗어난 새로운 환경이니 두려움을 느끼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들이 울면 혼냅니다, “남자는 울지 않는 거야, 평생 2번만 우는 거야, 태어날 때랑 엄마 하늘 나라 갈 때 딱 두번만 울 수 있어.”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이 언어가 나를 조정하는 틀이 돼 내 마음에 심어지게 됩니다. 남자는 울지 않고 강해야 한다는 사회 통념을 갖게 되는 거죠.



 세번째는 부모에게 저항하며 독립된 주체로 성장하는 연습을 합니다. 애지중지 키운 자녀가 말 한마디 안 지고 반항하기 시작하면 부모는 당황하고 속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지극히 정상적인 심리발달과정입니다. 부모 사랑을 믿기에 그 안에서 저항하며 독립해 나가는 거죠. 이 과정을 제대로 겪지 않으면 의존적인 존재로 머물게 됩니다. 우리 자녀, 즉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이 독립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독립적인 미래도 보장할 수 없겠죠. 사랑도 해주고, 저항하는 것도 들어주고, 부모 노릇하기 정말 쉽지 않습니다. 심리적인 에너지 소모가 상당히 많은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다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사연, 즉 부모의 안 좋은 모습까지 닮는 것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부모나 직장 상사처럼 나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의 부정적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쫓아 하는 심리 현상을 ‘분노 대상과의 동일시’라고 합니다. 분노 대상이 나에게 하는 행동이 싫어 이성적으로는 저항하며 ‘나는 절대 저러지 않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부모나 직장 상사는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기에 계속 미워하는 게 감성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계속 미워하다가는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부지불식간에 분노 대상과 동일시하며 닮는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똑같은 사람이 돼버렸으니 불편한 마음은 줄어듭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부정적인 행동을 답습하는 겁니다.



 싫다고 의식적으로는 저항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뇌 안의 하나의 행동 패턴으로 내재화하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 자신이 부모나 직장 상사의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경험한 과거 기억과 유사한 상황이 닥치면 자신이 싫어했던 부모나 직장 상사의 행동이 튀어 나오는 겁니다.



 실제 연구를 봐도 부모가 폭력적인 경우 그 자녀 역시 부모가 됐을 때 폭력적 행동을 가족에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엄마 아빠 좋은 점만 배우고 나쁜 점은 배우지 마.”심리학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나쁜 점까지 닮으니까요. 아니,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큰 에너지를 일으켜 부모의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더 잘 닮습니다.



 그럼 아이한테 완벽하고 착한 행동만 하는 부모가 돼야 하나, 아마 이런 의문과 부담감이 생길 겁니다. 부모도 사람인데 그건 불가능하죠. 부모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나쁜 행동이 자녀에게 학습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솔직히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이야기하고 자녀에게 사과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과는 분노 반응을 줄이기에 나쁜 행동을 닮게 만드는 부정적 감정 에너지가 쌓이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내 부모의 좋지 않은 점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먼저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미안하다고 느끼면서도 사과하는 걸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후한 부모가 사과할 생각이 없다면 내가 먼저 부모를 용서하는 수밖에 없겠죠. 효도 차원을 떠나 분노 행동이 대를 이어 학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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