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능 프로도 뉴스도 … 진짜만 남게 될 것

중앙일보 2014.01.15 00:05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정치 뉴스 보기 싫어서 신문이나 TV뉴스 안본다는 사람, 많다. 그런데 그런 사람 중에 JTBC ‘썰전’은 재밌게 본다는 사람이 또 적지 않다. 비록 연예인이 등장하고 예능 PD가 만드는 오락 프로그램이지만 민감한 정치 이슈를 대놓고 다루는데도 말이다. ‘썰전’ 이후 예능과 정치(시사)를 결합한 형식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정도로 예능의 정치시사 영역 넘나들기는 요즘 방송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많은 시청자에게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보다도 더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무한 도전' '무릎팍 도사' 부터 '썰전'까지 … 스타 예능PD 여운혁 JTBC CP

결국 사람들은 진짜로 정치 이슈가 싫거나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동안 언론매체가 정치를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일까. ‘썰전’ 책임 프로듀서인 여운혁 JTBC 예능2 CP를 만나 예능PD가 왜 정치 이슈를 다루는지, 또 그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뉴스는 무엇인지 물었다. 예능PD의 ‘촉’으로 봤을 때 말이다. 비록 지금은 폐지됐지만 그는 여야 정치인을 등장시킨 ‘적과의 동침’도 만든 바 있다. MBC 재직 시절 유재석과 강호동을 내세운 ‘무한도전’과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등으로 자타공인 스타 PD 반열에 오른 그가 기존의 예능 틀에서 벗어난 실험을 하는 이유도 함께 물었다.



-원래 예능PD를 꿈 꿨나.



 “아니다. 고교 시절엔 경제학자가 꿈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안됐다. 연세대 경제학과는 가기 싫었고 그저 재밌을 것 같아 신문방송학과에 갔다. 그 시절 언론 지망생이 다 그랬듯 신문사·방송사 가리지 않고 원서를 냈다. 중앙일보는 서류전형 단계에서 떨어졌고 MBC에 붙었다. MBC는 내가 입사한 해엔 기자·PD직 구분없이 뽑은 후 나중에 선택하게 했다. 내가 특별히 PD를 선택했다기보다 기자를 안한 거다. PD선배들은 ‘뭘 하고 싶으냐, 뭘 좋아하느냐’를 묻는데, 기자 선배들은 하나같이 ‘고향이 어디냐, 아버지 뭐하시냐, 어느 고등학교 나왔냐’ 등 내 과거만 묻더라. 지금은 두 직종의 특성을 다 아니 이해하지만 그땐 싫었다. PD직 중 예능 PD를 한 건 제일 돈이 될 것 같아서였다.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테크닉을 배우면 교양이나 드라마도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썰전’도 그렇고, ‘무한도전’이나 ‘무릎팍 도사’등은 모두 기존에 볼 수 없던 새로운 포맷으로 주목받았다. 기획을 위해 참고하는 매체가 있나.



 “2002년 월드컵 이전엔 일본 프로그램을 많이 봤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아주 조그만 장치라도 흉내 내면 바로 문제가 됐다. 이 시기부터 해당 분야 매니어가 정보 면에서 기자나 PD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면서 예능 프로그램도 많이 발전했다. 새 기획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나온다. 먼저 인물, 예를 들어 유재석이냐 강호동이냐를 정한 후 그 사람이 지금까지 안한 장르를 찾는 식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해보고 싶은 포맷을 정한 후 섭외에 들어가기도 한다. 순전히 PD 머릿속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작가 등과 회의하면서 나오기도 한다.”



-‘썰전’은 어떤 경우인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전후인 2008년 MBC에서 ‘명랑 히어로’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시사 이슈에 대해 각 신문이 어떻게 썼는지를 그 신문 주요 기사를 보고 비평하는 형식이었다. 김구라·이경규·윤종신·신정환·이하늘 등 출연진도 화려했다. 그런데 MBC가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로 MB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출연한 연예인이 다들 딱 입을 닫더라. 김구라는 뱀처럼 빠져나가고. 이거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땐 내가 워낙 잘 나갈 때라 배가 불렀다. 안되면 말지, 그렇게 쉽게 관뒀다. 하지만 김구라나, 지금 ‘썰전’PD인 김수아 PD 모두 이런 쪽에 계속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이다. ‘썰전’은 포맷 때문이라기보다 김PD가 엣지있게 잘 만들어낸 공이 크다. 또 예능이 시사 이슈를 다루면 자칫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김구라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잘 안다. 물론 처음엔 나도 걱정이 되서 좋게 말하면 모니터, 나쁘게 말하면 검열을 좀 했다. 지금은 안한다.”



-강용석 변호사는 ‘썰전’ 이전엔 거의 인간 말종처럼 취급당할 정도였다. 그런데 왜 캐스팅했나.



 “난 미디어에 비친 모습은 안 믿는다. 직접 만나서 얘기해본 후 내 느낌만 믿는다. 강용석은 만나보니 그렇게 비상식적인 사람이 아니더라. 서울법대 출신이라는 스펙이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머리도 좋고. 게다가 예능감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김구라를 메인 MC에 데뷔시킨 것도 나다. 지상렬이 김구라보다 더 잘 나가던 시절인데 김구라한테 ‘넌 아마 메인MC로 성공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메인 MC는 기가 세야 한다.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이경규, 다들 그 누구를 만나도 기가 안 죽을 사람들이다.”



-관심이 최근 정치 시사로 옮겨간 건가. ‘적과의 동침’같은 정치를 다룬 다른 프로그램도 만들었는데.



 “내 모든 기준은 재미다. 재미있을 것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다. 정치 시사에 관심이 있어서 그쪽을 다루는 게 아니다. 정치 외에 교육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봐도 재밌게 만들지 못하겠더라. 제작 의도보다는 재미가 중요하니까.”



-뛰어난 PD는 어떤 PD인가.



 “우선 시청률 안나오는 PD는 결코 좋은 PD가 아니다. 남의 돈 갖고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나. 시청률이란 돈이다. 그런데 후배들한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돈이 1등인 인생은 참 비참하지 않느냐고. 살아보니 돈은 중요도 면에서 항상 2등이다. 그런데 확실히 1등을 편하게 해준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좋은 PD는 자기가 재밌다고 믿는 걸 남도 재밌게 볼 수 있게 만드는, 즉 시청률 잘 나오게 하는 PD다.”



-수치만 보자면 지상파인 MBC와 종편인 JTBC와는 비교가 안되는데.



 “JTBC로 옮기면서 시청률이 안나올 건 당연히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는 건 참기 힘들더라. 한국 방송의 가장 큰 장점이 시청자 반응을 바로바로 반영한다는 거다. 그런 반응에 일희일비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는데 갑자기 아무 반응이 없으니 잘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전혀 감을 못잡겠더라. 연예인들이 악플(악성 댓글)보다 무서운 게 무플(댓글 없음)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때 생각했다. 소나기가 내릴 땐 그냥 맞는 수밖에 없다고. 한 1년 그렇게 보냈다.”



-어떤 타깃을 설정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나.



 “전에는 중2, 중3이었다. 이젠 타깃이 20~30대 여성이다. 요즘 10대는 TV 안보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TV 안보고 신문 안본다고 꼭 미디어산업이 위기라고 보진 않는다. 내가 정식으로 인터뷰한 건 아니고 온라인 매체인 오마이뉴스에 한 시민기자가 나에 대해 썼더라. 나를 너무 영웅시한 것도 불편했지만 무엇보다 틀린 팩트가 많아서 기사를 내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기 칭찬하는 기사 내려달라고 항의하면 정말 이상한 놈 취급받을까봐 그냥 뒀다. 앞으로는 이런 잘못된 정보는 자연스럽게 걸러지고 진짜 제대로 된 언론은 살아남을 거다.” (※네이버 인물 정보엔 그의 출생 연도가 1969년으로 잘못 올라가 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



 “시청자가 신뢰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무릎팍도사’ 시절 녹화를 다 끝내고 방송을 안 내보낸 적이 딱 두번 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한명은 연예인, 다른 한명은 유명인사(셀럽)였다. 사전준비는 물론 녹화만도 4시간 넘게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진짜가 아닌 거다. 걸리는 게 한두 가지면 그것만 들어내면 되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식으로 진행되면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가 없는 거다. 안내보내기로 했다. 연예인은 기획사 대표한테 양해 구하고 다른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는데 셀럽은 그게 안되지 않나. 오전 7시에 게스트 집에 찾아가 싹싹 빌었다.”



-평소 뉴스를 주로 어떤 매체를 통해 접하나.



 “어릴 때는 신문. 아버지가 보시던 중앙일보 등 신문 몇개를 중고등학교 때 정말 열심히 봤다. 줄곧 보다 몇 년 전쯤 한 1~2년 안봤다. 인터넷을 주로 봤다. 그러다 JTBC로 옮겨오면서 중앙일보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주로 사회면과 문화면을 본다. 특히 사건 기사, 재밌지 않나. 신문을 읽으니 확실히 장점이 있더라. 원해서 찾아본 건 아니지만 읽다 보면 재밌고 좋은 글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인터넷으로 특정 기사만 찾아서 읽을 때와는 다르다. 요즘 신문을 읽으면서 내가 기자를 했으면 굉장히 잘 했을 거란 생각을 한다. 남을 후벼파는 잔인한 사건기자가 됐을 것 같지 않나. 그런데 아마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TV는 많이 보나.



 “별로. 재미가 없다. 특히 예능은 첫회만 본다. 뭘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려고. 재밌으면 배아파서 못보고, 재미없으면 짜증나서 못본다. 남들은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나는 일이니 재미가 없다. 오히려 드라마는 좀 본다. 제일 배 아팠던 게 ‘응답하라 1994’였다. 내가 딱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니까. 그 시절 추억을 불러내는 방식도 그렇지만, 아마 모든 PD가 하이틴물을 만들어 성공시키고픈 욕구가 있을 거다.”



-2013년의 가장 중요한 뉴스는 뭐라고 생각하나.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내 개인적인 삶에도 영향을 끼쳤다. ‘적과의 동침’이 이 이슈 때문에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추석 전에 이 문제가 다 정리될 줄 알았는데 계속 가는 거다. 그런 정국에 여야 국회의원이 나와서 희희낙낙하니 사람들이 보겠나. 당연히 시청률이 안나왔고, 10회로 막 내렸다. 내가 더 한다고 고집을 부렸으면 기회를 얻었을텐데 나 스스로 부끄러웠다.”



-가족 얘기를 좀 해보자. 결혼을 일찍 해서 벌써 고3, 고2 자녀가 있더라. 맞벌이인데 애들 키우기 어렵지 않았나.



 “아내가 대학강사라 직장에 하루 종일 얽매있지는 않는다. 애들 아주 어릴 땐 잠시 장모님이 봐주셨지만 그 이후론 그냥 방목했다. 너무 원하는대로 다 해줘서인지 애들이 결핍이 없는 게 살짝 걱정되긴 한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닌텐도를 사달라고 조르더라. 그래서 왜 필요한 지 글로 써오면 사주겠다고 했더니 아들이 ‘안 사줘도 돼요, 그냥 친구 거 빌려서 할게요’ 그러는 거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거지. 그때 좀 충격받았다. 좀 더 치열했으면 하는 생각은 한다.”



-그렇게 키운 걸 후회하지는 않나.



 “전혀. 고2 때 아버지가 갑자기 작게 느껴졌다. 면 서기나 교사를 했어야 하는 분인데 사업을 하셨으니 잘 됐겠나. 술 담배도 안하고 일 밖에 안하셨는데도 사업을 계속 말아먹고 우리집은 늘 가난했다. 아버지만 믿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꼭 존경할만한 면 뿐 아니라 이렇게 안 좋은 모습도 아들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아들도 나를 아버지로 두면서 자기 방식대로 느끼는 게 있을 거다. 다만 사랑과 관심은 필수다. 청소년 프로그램을 만들 때 보면 꼭 결손가정이 아니어도 문제아의 90% 이상이 결국 부모에게 책임이 있더라. 사랑받고 큰 애들은 엇나갔더라도 결국은 돌아온다. 나이 서른에라도 말이다. 뭔가 마음 먹기에 서른도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 그런데 사랑과 관심을 못받고 큰 애들은 엇나간 순간 고무줄이 딱 끊어져 버리더라. 다들 자녀를 리더로만 키우려고 한다. 그게 행복한가. 이젠 팔로워십을 가르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팔로우하면서도 행복한 삶 말이다. 그래서 애들한테도 늘 행복하게 살기를 강조한다. 어설픈 대학 가느니 차라리 기술 배우라고도 한다. 공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학원 보내는 등 남들 하는 사교육 다 시킨다. 하지만 정말 다니기 싫다고 하면 의사를 존중한다. 다만 한가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그런 인식은 확실하게 심어주고 싶다. 아까 말했듯이 아들이 닌텐도 타령 할 때 아내는 나보고 그냥 사주라고 했다. 난 그럴 수 없다고 했고, 결국 사주지 않았다.”



-애들은 사춘기를 어떻게 겪었나.



 “애들 엄마가 워낙 잘 놀아줘서인지 둘 다 사춘기 때 반항 한번 없이 컸다. 나도 애들이랑 친하다. 물론 나한테 모든 얘기를 다하지는 않겠지만 나를 어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친한 거 아닌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딸 사진을 보여주며)우리 딸 엄청 예쁘다. 걸그룹 시스타 기획사에서 섭외 받을 정도다. 온 가족이 기획사 대표한테 꽃등심 얻어먹었다. 그때 그 대표한테 ‘우리 딸 꼬실 수 있으면 꼬셔봐’했다. 애가 한다고 했으면 내가 ‘을’이 됐을텐데 본인이 관심이 없었다.”



 여PD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다음달 첫 녹화에 들어가는 이동희 PD의 ‘99명의 여자를 만족시키는 남자’라는 제목의 부부 관계를 다루는 프로그램 홍보를 부탁했다. 뜬금없어 쓰기 곤란하다고는 말했으나, 이렇게라도 한줄 걸치는 건 순전히 여PD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다.



여PD의 비하인드 스토리



무릎팍도사



“성공의 비결은 역시 강호동의 힘이다. 그 전에 ‘이문세의 오아시스’라는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했는데 7회만에 막을 내렸다. 이문세 심성이 불편한 걸 싫어하다보니 결정적 질문을 못하더라. 강호동은 그걸 했고. 강호동에게 그런 재주가 있다는 건 물론 내가 알아본 거지만. 매회 등장하는 게스트를 보고 다들 나보고 섭외능력 뛰어나다고 하는데 정반대다. 쫓아다니며 섭외하기 싫어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분수령은 2007년 8월 최진실 편이었다. 섭외를 위해 8번을 만났다. 주위에 친한 사람을 먼저 내 편을 만들어서 거들게 했다. 최진실은 당대의 아이콘이다. 그런 최진실이 이 프로그램 나와서 재미를 봤다면 그 다음엔 모두 나오고 싶어한다. 최진실 이전 한 6개월은 내가 찾아다니며 섭외했지만 그 이후엔 작가가 다 섭외했다. 최진실 대를 이을 연예인은 이효리라고 본다. 그런데 제주도에 처박혀 있으니….”



무한도전



“2006년 첫 방송 후 1년간은 시청률 10% 안넘었다. 하지만 언젠간 꼭 봐줄 거라고 믿었다. 지금은 다 스타가 됐지만 당시 유재석 빼고는 출연진 모두 잉여·찌질이 느낌이 강했다. 일본에서도 드라마 ‘전차남’을 통해 그런 콘셉트가 통하던 시절이다. 유재석 머리 속에 막연하게 찌질하게 노는 남자들을 내세운 포맷이 있었고, 그걸 시도한 프로그램이 실제 몇개 있었지만 다 망했다. ‘무한도전’은 여자와 경쟁하며 코피 터지는 찌질한 남자들의 도전을 통해 경쟁에서 뒤진 자들의 판타지를 구현한 거다. 제작진이 넣은 판타지, 그게 통한 거지. 하나 더. 당시 예능은 배우나 가수가 나와야 뭔가 되던 때다. 게스트 비위 안맞추고 예능인끼리 한번 잘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다들 있었다. 그래서 의기투합이 잘 됐다.”



연예권력



“내가 무슨 연예권력처럼 비쳐진 계기가 있다. 2008년 백상예술대상에서 강호동이 대상을 받던 해 강호동과 유재석 사이에 내가 앉아있는 게 카메라에 잡혔다. 보는 사람들이 마치 내가 강호동·유재석을 대동하고 시상식 참석한 걸로 알더라. 실은 강호동이 ‘1박2일’ PD와 ‘무릎팍도사’ PD인 나를 대동하고 시상하러 간 건데. 유재석이 늦게 참석해서 내 옆자리에 우연히 앉게 됐고, 카메라는 당대 두 톱스타를 한 화면에 잡으려다보니 그렇게 됐다. PD가 누구를 키웠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고 다만 남보다 먼저 발견해서 운좋게 써먹은 거다. 이 바닥은 연예인이나 PD나 다 질투의 화신들만 모인 곳이라 나쁜 말 뿐 아니라 좋은 말도 조심스럽다.?



글=안혜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여운혁(46)

JTBC 예능2CP

1968년 서울 출생

2011년 JTBC 이직

1993년 MBC 입사

1987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입학

1984년 대원외고 입학

1981년 대원중 입학

 



사는 곳: 방배동 서래마을

근무하는 곳: 서소문 JTBC

장보는 곳: 잠원동 킴스클럽,

양재동 코스트코(옷은 제일평화시장)

자주 가는 식당: 로데오거리 주방,

서초고 옆 하남 삼겹살,

르네상스 호텔 근처 부산연곱창

 

가족

대학 강사(미술 전공) 아내와

딸(고3, 대학진학 예정),

아들(고2, 고3 진학예정)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