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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노력하면 아이들은 반드시 변하죠”

중앙선데이 2014.01.12 00:22 357호 12면 지면보기
안성식 기자
지난해 6월 저녁 순찰을 돌고 있던 경기 부천원미경찰서 배태주(38·여) 경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폭력 상담교실에서 만난 은주(가명·15·중3)였다.

제1회 대한민국 인성교육대상 받은 배태주 경사

“이제 그만 살고 싶어요. 그동안 잘 돌봐주셔서 고마워요.” 왕따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던 은주는 전에도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다. 배 경사는 곧바로 차를 몰아 은주의 집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제발 전화만 끊지 말아 달라고 했죠.” 집으로 가면서 배 경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겪었던 온갖 얘기들을 두서없이 풀어놨다.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가까스로 집에 다다랐을 즈음 은주 어머니도 때마침 도착했다. 다행히 은주는 나쁜 선택을 하지 않았다.

3개월이 흐른 지난해 10월 은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제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어요. 더 이상 죽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요. 고맙습니다.” 문자를 본 배 경사의 눈에선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해 2월 학교폭력 피해자로 처음 만난 은주는 학교전담 경찰관인 배 경사를 수시로 찾았다. 배 경사는 은주의 시시콜콜한 학교 얘기부터 진지한 고민까지 들어주는 등 ‘멘토’가 됐다. 이렇게 지난 3년 동안 배 경사와 인연을 맺은 학생은 500여 명. 은주와 같은 학교폭력 피해 학생부터 가해자인 일진 학생들까지 배 경사는 언제든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언니’‘누나’가 돼줬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성교육대상’을 수상했다. 인성교육대상은 중앙일보와 교육부,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연말 제정했으며 인성교육 확산에 모범을 보인 개인이나 기관에 수여된다.

-인성교육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뭔가.
“경찰이 된 후 청소년 범죄를 주로 담당했다. 어떻게 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인성교육이 해답이었다. 처음부터 ‘문제아’인 학생은 없다. 가정이, 사회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거다. 아이들은 자신을 믿어주고 귀 기울여 얘기를 듣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면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변한 아이들이 있나.
“내가 만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다. 경호(가명·15·중3)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다. 선생님이 혼내면 주먹으로 창문을 깨던 아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까부는 친구를 때려주고 싶었는데 참았어요’라고 하더라. ‘나한테 혼날까봐 참은 거냐’고 물었더니 ‘절 믿고 있는 선생님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참았다’고 했다. 어른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아이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단순히 얘기 들어주는 것 외에 무엇을 했나.
“청소년기는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다. 뭔가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쪽으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일진 아이들을 모아 2012년부터 동아리를 만들었다. 다양하진 않지만 미술, 음악 등 아이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시작했다.”

-‘용감한 형제들’이란 동아리가 있던데.
“유명 작곡가의 이름을 딴 기타 동아리다. 지난해 5월 부천의 두 개 중학교 일진들끼리 패싸움이 붙었는데 당시 잡혀온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기타를 배우고 싶다더라. 인근 청소년시설에 부탁해 장소와 식사를 제공받고 청소년육성회에선 기타를 지원해줬다. 레슨은 동료 경찰들이 맡았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일진회를 해체했고 지금은 모범생이 됐다.”

-혼자 동아리 운영을 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
“그게 놀라운 부분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남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동아리 활동이 가능한 것은 수련관과 복지센터 등 청소년시설과 지역 NGO 및 연구소가 재능기부를 해줬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다. 내가 한 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을 연결해준 것뿐이다.”

-올해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동아리 활동을 좀 더 체계화하고 싶다. 지금은 방과후 영어 동아리를 준비 중이다. ‘일진’이었던 아이들 중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있는데 마침 인터넷으로 영어 강의를 하는 업체에서 돕겠다고 나섰다. 지역의 대안학교에선 강의실을 빌려주기로 했다. 동아리 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화하고 뜻있는 분들의 재능 기부를 더욱 확대하고 싶다.”

배 경사의 별명은 남자 이름인 ‘태식이’다. 학교전담 경찰관이 되기 전 폭력팀에서 근무할 때 선배들로부터 얻은 별명이다. 밝고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동기인 남자 경찰들보다도 선배들은 배 경사를 더 편히 여긴다. 함께 학교전담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민소영(34) 순경은 “후배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선배”라며 “성품 자체가 워낙 따뜻하고 활달해서 주변에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민 순경은 또 “얼마 전 저소득층 지역에 범죄예방교육을 갔었는데 강의 끝나고 아이들을 모아 과자를 사주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부터 활달한 성격이었나.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을 했다. 경북 안동에서 컸는데 부모님 말씀 들어보면 어릴 때도 정의감, 의협심 그런 게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때 일진 아이들이 한 친구를 왕따시키고 때리기도 했다. 그래서 일진들을 불러 혼내줬다. 체구는 작지만 ‘깡’이 센 편이어서 일진들도 내 말을 잘 들었다. 나중엔 일진 아이들도 왕따 당했던 친구와 함께 잘 어울려 지냈다.”

-경찰이란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대학 4학년 때 외환위기가 터졌다.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도 많지 않았고 주변엔 명예 퇴직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마침 친한 선배 한 명이 경찰이 됐는데 나한테 권하더라. 경찰이 내 성격이랑 딱 맞는다면서. 그게 계기가 됐다.”

-실기 시험 준비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반대다. 고교 때부터 취미로 태권도, 우슈, 복싱 등을 배워서 실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공부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셨다. 1년 가까이 병간호를 하고 다시 시험을 준비해서 경찰이 됐다.”

-학교전담 경찰관이 된 계기는.
“폭력팀에서 형사 생활을 하면서 성폭력과 미성년 범죄를 많이 다뤘다. 피해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많이 느꼈고 그런 아이들을 변화시켜보고 싶었다. 그래서 2012년 2월 학교폭력팀이 생겼을 때 자원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상투적인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가고 싶은 학교가 되는 날까지 열심히 노력하겠다. 또 한 가지 욕심을 부린다면 제가 느끼고 고민한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어른이 노력하면 아이들이 변한다’는 것 말이다. 아동청소년학과 상담심리학을 더 공부해서 체계적인 청소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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