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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기회복 신호 봤다” … ‘아파트 쇼핑’ 주부들로 경매법정 북적

중앙선데이 2014.01.12 00:28 357호 14면 지면보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법정의 아파트 경매 현장. [중앙포토]
지난 8일 오전 9시30분 서울 양천구 신월로에 있는 서울남부지방법원 경매 법정.

연초부터 달아오르는 아파트 경매 시장

시작까지는 30분이나 남았지만 입구는 50여 명의 입찰 신청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제각기 입구에 비치된 경매물건 리스트를 훑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부는 스마트폰으로 경매 전문 사이트에 접속해 등기부등본상 권리관계, 예상 배당액 등 상세 정보까지 확인했다. 김진한(45·화곡동)씨는 “예상 배당액을 알면 낙찰금액이 채권자들에게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며 “낙찰 뒤 추가 비용이 들어갈지 여부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법정 문이 열리자 입찰자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140석이 금세 꽉 찼다. 자리를 잡지 못한 30여 명은 뒤편에 둘러섰다. 집행관이 ▶대리인은 입찰서류에 인감증명서와 위임장을 첨부할 것 ▶동일인이 동시에 두 건 이상을 대리 입찰할 경우 무효라는 내용의 공지 사항을 안내한 뒤 입찰 서류를 배포했다.

서류를 받아 든 입찰자들의 동선은 크게 둘로 갈렸다. 일부는 방청석 좌측 매각물건 명세서가 비치된 테이블로 향했다. 매각물건 명세서는 경매 물건을 설명하는 공식서류다. 취재에 동행한 부동산태인 정대홍 홍보팀장은 “경매 경험이 많은 이들은 자신이 입찰하려는 물건을 설명하는 서류에 사람이 얼마나 몰리는지를 보고 경쟁률을 간접적으로나마 추정한다”며 “이를 근거로 현장에서 경매가를 다소 높이거나 낮춘다”고 귀띔했다. 일부는 반대편에 비치된 입찰 기재대 쪽으로 향했다. 독서실 책상처럼 칸막이가 쳐진 9칸짜리 입찰 기재대에는 서류 작성 요령과 도장 찍는 위치 등을 안내하는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서둘러 서류를 작성한 사람들은 곧바로 집행관석으로 가서 본인 확인을 받은 뒤 입찰함에 서류를 넣었다. 정 팀장은 “경매 법정도 대학 입시처럼 소신파와 눈치파로 나뉜다”며 “물건 명세서 쪽에 몰린 사람은 대부분 경험이 많은 눈치파이고, 곧장 입찰에 응한 소신파들은 베팅을 세게 해서 확실하게 낙찰받기 원하는 초보자”라고 설명했다.

입찰은 오전 11시20분에 마감됐다. 집행관은 먼저 입찰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 물건의 번호를 불렀다. 이 절차가 끝나자 일부 방청객은 자리를 빠져나갔다. 정 팀장은 “자신이 점찍어둔 물건이 유찰된 것만 확인한 뒤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집행관은 사건번호별로 입찰자 전원을 앞으로 불렀다. 응찰자 이름과 입찰금액, 최고가에 낙찰 받은 이의 이름을 발표하자 희비가 엇갈렸다. 감정가 4억9000만원에 나왔다가 한 차례 유찰돼 이날 최저입찰가 3억9200만원에 나온 우장산 롯데캐슬 전용면적 85㎡ 아파트. 근저당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 유동화전문회사의 직원이 감정가와 같은 4억9000만원을 써냈으나 낙찰자는 뜻밖에 4억7200만원을 쓴 박모씨였다. 유동화전문회사 직원이 입찰서류에 대표이사 인감증명을 첨부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2등 입찰자가 엉겁결에 행운을 거머쥔 것이다.

감정가 8700만원에 나왔다가 세 차례 유찰돼 최저입찰가 4454만4000원에 경매에 부쳐진 화곡동 전용면적 37.2㎡ 다세대주택 지하층에도 10명의 입찰자가 몰렸다. 이 물건도 가장 높은 액수인 4850만원을 적어낸 입찰자가 아니라 전남 구례에서 올라온 김모씨가 4600여만원에 낙찰받았다. 최고액 응찰자가 서류봉투에 보증금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매 법정에선 이처럼 웃지 못할 해프닝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리 입찰을 전문으로 하는 경매 컨설팅 업체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한 사람은 의뢰인의 이름으로 1등 가격을,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근소하게 낮은 2등 가격을 적어내는 식이다. 의뢰인이 낙찰을 받아도 2등 입찰가와 차이가 많이 나면 컨설팅 업체의 실력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이날 경매에는 상가·토지부터 자동차까지 57건의 물건이 나왔지만 입찰은 대부분 주택으로 몰렸다. 특히 12건의 아파트는 물건마다 입찰자가 수십 명씩 몰렸다. 정 팀장은 “지난해 말 고양지법에서 열린 경매에서는 142명이 입찰했는데 이 가운데 132명이 아파트·빌라 등 주택에 입찰했다”며 “토지·상가 등 나머지 물건엔 10명만 입찰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매가 인기를 끌면서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 팀장은 “증시에서 주부 등 일반인이 객장에 나타나면 과열 조짐이라는 속설이 있는데 경매법정에서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부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법정에도 아이 손을 잡고 온 30대 가정주부가 네댓 명 눈에 띄었다. 네 살 된 딸과 함께 온 주부는 “남부지법은 양천구를 제외하면 강서·구로·금천 등 아파트 가격이 비교적 싼 지역 관할이어서 특히 관심을 두고 물건을 보고 있다”며 “오늘은 낙찰에 실패했지만 다음 법정에 다시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아파트 경매에 발길이 몰리는 이유를 전세난, 부동산 시장 장기 침체, 정부의 잇단 부동산 활성화 대책 등이 맞물렸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경매정보 제공업체 지지옥션의 하유정 선임연구원은 “일반 매매시장은 매도자 위주의 시장이자만 경매는 매수자 위주의 시장이다. 아파트 가격이 하루아침에 몇천만원씩 오르기 어려운 시대가 됐기 때문에 최초에 얼마나 싸게 사느냐가 중요해졌고 그런 점에서 경매가 관심을 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네 차례 부동산대책도 경매 활성화의 원인이 됐다. 하 연구원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의 취득세를 면제해주는 4·1 대책, 집값이 오른 만큼을 정부와 구입자가 나눠 갖는 대신 1%대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8·28 대책 등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신호를 확실히 느낀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는 올해 경매 열기가 2013년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제 개편 등 호재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제도가 여야 합의에 따라 폐지됐다. 양도세 중과 폐지는 다주택자들의 ‘세금 폭탄’을 덜어줘 기존 주택 보유자들도 부담 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득세 영구 인하도 경매시장에는 호재다.

특히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경매시작가 인하 법안’은 매머드급 호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매시작가 인하 법안’은 경매 시작가를 감정가가 아니라 할인된 1차 유찰 가격으로 부치는 제도다. 예컨대 지금은 감정가 4억원인 아파트를 경매에 부칠 때 한 차례 유찰돼야 다음 경매에서 감정가에서 20%가 내려간 3억6000만원에 매물로 나온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되면 모든 매물이 최초 경매 때부터 1차 유찰 가격으로 나온다. 정 팀장은 “시작가 인하는 싼값에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경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법안이어서 경매시장을 한층 더 달아오르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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