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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염증성 장 질환 매년 600여 명 수술

중앙선데이 2014.01.12 01:04 357호 18면 지면보기
캐리커처=미디어카툰 정태권
어, 어어~ 꽝!

베스트 닥터 ⑭ 서울아산병원 외과 유창식 교수

택시가 가로수를 받고 뒤집어졌다. 마치 슬로 비디오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하더니 이내 의식을 잃었다. 옆자리의 친구가 엉금엉금 기어 나가 119를 부르지 않았다면 불귀(不歸)의 객이 됐을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외과 유창식 교수는 1986년 7월 서울대 의대 본과 4학년 때 부산에 수학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을 뻔했다. 자갈치시장에서 해운대 여관으로 돌아오던 길에 운전기사가 졸아서 생긴 사고였다. 기사는 즉사했고, 옆자리의 친구 방문석 현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등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유 교수는 다음날 오전에 겨우 깨어났다. 거울로 보니 얼굴뼈와 코뼈가 부러져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사고가 아니었으면 유 교수는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의대생 때 “40대까지 열심히 일하고 이후엔 낭만적으로 살겠다”고 마음먹고 의대 스키반, 오케스트라 등에서 ‘낭만의 기초’를 닦았다. 스키반에선 노르딕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전국체전에 참가해 메달을 딸 정도였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달포 동안 병실에서 다른 환자와 함께 부대끼면서 삶의 방향을 바꿨다. 평생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는 “환자가 되니 하루 종일 의사를 기다리는 심정도, 의사와 간호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외과 전공의를 마친 뒤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 지금까지 하루 5시간 이하를 자면서 ‘낭만적 의사’와는 멀고도 먼 길을 걸어왔다. 그는 한 해 대장암 환자와 염증성 장(腸)질환 환자 등 600여 명을 수술한다. 특히 염증성 장질환은 전국의 의사들이 부탁한 환자들이 몰려와 국내 환자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집도한다. 그러면서도 매년 10~15편의 논문을 써왔다. 유 교수는 지난해 염증성 장질환의 일종인 크론병 환자의 치루(항문 종기의 고름이 대부분 사라지고 전깃줄 같은 관이 남아 있는 상태)에 생긴 염증을 줄기세포로 치유하는 방법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줄기세포’에 발표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개인으로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막강 서울아산병원 대장암센터’의 수장으로서 박수를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대장암센터는 지난해 가을 수술 2만 건을 돌파했다. 대장암의 일종인 직장암 환자 완치율이 1기 94.1%, 진행암은 80.6%로 미국 병원 평균인 88.2%, 69.5%보다 높다. 직장암 환자 10명 중 9명은 항문 조임 근육을 보존해 정상적인 배변이 가능하다는 점도 놀라운 성과다. 대장암센터는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발표한 ‘대장암 적정성 평가’에서 2년 연속 1등급을 받았다. 종합점수가 100점 만점이었다. 평균 입원일수는 10.7일로 상급 종합병원 평균 13.4일보다 훨씬 적었고, 수술 사망률은 0.38%로 전체 평균 1.17%보다 현격히 낮았다.

유 교수는 “국내 주요 대학병원의 대장암 수술 완치율은 7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2만 명의 환자 수술 데이터를 차곡차곡 정리해 여러 연구를 하는 데 유리하다”고 소개했다.

미국암협회가 매년 국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지만 서울아산병원은 이 가이드라인으로 설명이 안 되는 환자도 완치시킬 정도가 됐다. 또 선진국의 대형 의료기기 회사에서도 귀를 기울이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세계적 의료기기 회사에서 개발한 자동봉합기의 문제점을 발견해 개선토록 한 것을 비롯해 수술기구·혈전방지제·유착방지제 등의 성능 개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유 교수는 “대장항문 분야 수술에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의사들이 선진국을 추격했지만 지금은 복강경수술· 로봇수술 등 일부 분야에선 이미 세계 최고”라면서도 “그러나 이런 치료가 정말 효과적인지, 비용 대비 효과가 큰지 등에 대한 근원적 연구에선 아직 초보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아산병원 대장암센터가 그동안 축적된 환자 데이터를 잘 분석해 전 세계의 암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법을 찾는 연구에서도 선두가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낭만적 의사’의 길을 뒤로 미루고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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