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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높이·비거리 늘고, 디펜딩 챔피언 여유까지

중앙선데이 2014.01.12 01:09 357호 19면 지면보기
‘피겨 여왕’ 김연아가 5일 경기도 고양 덕양구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열린 제68회 전국 남녀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시니어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전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80.60점을 받았던 김연아는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 점수(TES) 70.05점, 예술점수(PCS) 77.21점 등 147.26점을 기록해 종합 227.86점으로 1위에 올랐다. [고양=뉴스1]
지난 8일(한국시간) 미국 AP통신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주목해야 할 여자선수 5명’을 꼽으며 피겨스케이팅 김연아(24)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활강 금메달리스트이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연인 린지 본(30·미국)이 무릎 부상으로 소치 올림픽에 불참하게 되자 그를 대체할 빅스타들을 거론한 것이다. 김연아를 제외한 4명은 미카엘라 시프린(알파인 스키), 헤더 리처드슨(스피드 스케이팅), 린지 자코벨리스(스노보드), 줄리 추(아이스하키)로 모두 미국 선수다.

김연아 2010 vs 2014

 김연아가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는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어울림누리 얼음마루에서 끝난 피겨 종합선수권에서 합계 227.86점을 기록했다. 그의 연기만큼 주목을 받았던 건 세리머니였다. 금메달을 받기 위해 시상대에 오르기 전 더블 악셀을 뛴 것이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한 부분을 성공적으로 뛰며 팬서비스를 했다. 완벽을 추구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실수를 시상식 세리머니로 승화할 정도의 여유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신혜숙 코치는 “현재 김연아의 컨디션은 90% 정도다. 소치 올림픽 때에는 베스트 컨디션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2009~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 참가한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
“김연아는 끝까지 아사다를 가로막는 벽”
2009년 3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시상대에 오른 그의 눈이 갑자기 붉어지기 시작했다. “월드챔피언, 김연아”라는 소개가 나오자 반사적으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이미 김연아는 세계 최고의 피겨선수였다.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시니어 무대 그랑프리 우승도 여러 차례 해냈다. 그러나 김연아는 “월드챔피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고 회고했다. 국내 팬들의 엄청난 관심과 성원,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일본)와의 라이벌 구도가 김연아에겐 큰 압박이었다.

 2010년 2월 26일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올림픽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마치자마자 김연아는 또 눈물을 흘렸다. 채점 결과를 볼 필요도 없이 우승(합계 228.56점)을 확신했던 그는 참아 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주니어 시절부터 목표였던 올림픽 우승, 언젠가부터 전 국민이 원하는 금메달을 딴 것에 대한 환희였고, 거기까지 오는 동안 뒤따랐던 고통과 외로움이 범벅 된 감정이었다. 2010년까지 김연아에게 피겨는 생존이 달린 전쟁이었다.

 4년이 지났고 김연아는 은반을 떠나지 않았다. 여자 피겨 사상 올림픽에서 연속 금메달을 딴 선수는 소냐 헤니(1928, 1932, 1936년·노르웨이)와 카타리나 비트(1984, 1988년·옛 동독)밖에 없다. 김연아는 피겨 전설들의 뒤를 따라 금메달에 다시 도전한다.

 발걸음은 훨씬 가볍다. 김연아는 “난 이미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그래서 꼭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물론 잘하고 싶지만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올림픽을 즐기고 오겠다”고 말했다.

 지난가을 김연아는 오른 발등 부상으로 6주 동안 훈련을 중단했다. 이 여파로 그랑프리 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지난달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B급 대회’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복귀했다. 중심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김연아는 늘 ‘장외 챔피언’이었다. 자그레브 대회에서 204.49점을 받아 여유 있게 우승했다. 국내외 5개 대회 연속 200점 이상을 득점하고 있는 김연아는 소치 올림픽 금메달 최유력 후보다.

 김연아의 유일한 대항마인 아사다는 올림픽이 가까워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두 차례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200점을 돌파하며 우승한 그는 지난달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199.50에 그쳤다. 일본에서도 3위로 내려앉았다. 장기인 트리플 악셀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등 연기의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김연아가 자그레브 대회를 통해 건재를 알리자 아사다는 심리적인 면에서 이미 밀리고 있다. 일본의 스포츠 전문지인 스포츠호치는 “김연아는 끝까지 아사다를 가로막는 벽”이라 했고, 스포니치도 “아사다의 금메달을 여왕(김연아)이 막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두 번 실수해도 무너지지 않는 게 강점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에서 세계기록을 세우며 최정점에 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8일 “2010년 김연아는 높은 점프와 매력적인 존재감, 천상의 우아함으로 우승했다. 김연아를 단순한 기술 마스터로 봐야 할지 위대한 예술가로 봐야 할지 논란이 있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여자 피겨선수의 전성기는 20대 초반이다. 카타리나 비트 이후 20년 넘게 올림픽 연속 우승자가 나오지 못한 이유다. 그러나 김연아는 4년 전 기량을 잘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오히려 더 좋아졌다. 방상아 SBS 피겨 해설위원은 “김연아의 기술은 상당히 안정돼 있다. 점프 한두 번 실수한다고 해도 크게 무너지지 않는 게 김연아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 선보인 쇼트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와 프리스케이팅 ‘아디오스 노니노’ 프로그램을 보면 김연아의 점프 비거리와 높이가 모두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충분한 거리와 높이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낮아진 것이다. 피겨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의 점프가 더욱 경쾌하면서 편안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공중회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비롯한 김연아의 점프는 경쟁 상대가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깝다.

 김연아는 모든 여자 피겨선수들이 교과서로 삼는 점프에 스핀과 스텝까지 보강했다. 종합선수권 프리스케이팅에서 플라잉체인지풋 콤비네이션 스핀과 스텝 시퀀스에서 레벨4를 받았다. 또 레이백 스핀을 레벨3로, 맨 마지막에 시도한 체인지풋 콤비네이션 스핀을 레벨4로 마무리했다. 부상 후 체력이 떨어져 스핀과 스텝이 흔들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짧은 시간에 보강한 것이다. 김연아의 기술과 매력은 고스란히 예술점수(PCS)에 반영된다. 자그레브 대회(쇼트 35.55, 프리 71.52)와 종합선수권(쇼트 38.37, 프리 77.21) 모두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예술점수는 여간해서 낮아지지 않는다.

 2014년의 김연아는 2010년의 김연아보다 훨씬 여유롭다. “올림픽을 즐긴다”고 말한다 해서 김연아가 금메달 욕심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압박감과 절박함을 모두 이겨 낸 챔피언이 승부를 즐긴다면 그것보다 무서운 건 없다. 김연아는 기술적·예술적으로 완성된 상태에서 마음 편하게 은반 위에 설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필생의 연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경쟁자는 그 자신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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