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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공생의 장

중앙선데이 2014.01.12 02:04 357호 27면 지면보기
지난 수요일, 음력 12월 8일엔 절집에 ‘성도재일’이라는 큰 행사가 있었다. 붓다가 깨달은 날을 기념해 전날 밤부터 동틀 녘까지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수행이 전국 사찰에서 행해졌다. 말하자면 1년 중 가장 순수하고 고요한 수행정진의 밤이었던 셈이다. 이날 사람들은 단 하루의 짧은 수행을 통해서라도 깨달음에 대한 인연의 씨앗을 심고자 마음을 활짝 열고 정진에 몰두했다.

생각해보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개인적인 열망에서부터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기까지 참 다양한 것 같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처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된다. 살아오면서 부딪혔던 수많은 갈등과 그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해탈을 준비하는 꽃처럼 피어나 그렇게 어두운 밤을 하얗게 밝힌 게 아닐까 싶다.

고타마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열반에 들기까지 무려 45년간 사람들에게 법을 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불교설화에 나오는 확고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보편적인 이유는 이 세상은 홀로 살다 홀로 떠나는 곳이 아니라 더불어 살다가 아름답게 떠나는 공생의 장이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그토록 두 발이 부르트도록 인간의 삶 속으로 되돌아 걸어들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출가자는 철저하게 혼자 사는 존재인 줄 알았다. 가족에 대한 애정, 사랑, 벗과의 우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사적인 욕망까지. 적어도 한 번쯤은 모두 놓아버리고 세속적 삶의 가치를 온전히 무(無)로 돌려놓던 때가 있었기에 그런 생각도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절밥을 고집스럽게 먹어가다 보니 그건 먹물 옷의 겉멋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출가자는 철저히 혼자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히 함께여야 한다는 삶의 원리가 내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늘 살아있는 존재들과 함께여야 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여야 했다. 대칭적인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고 공감하며 감동할 줄 아는 섬세한 감성을 지녀야 옳았다. 그런데 난 그러지 못했다. 난처할 때마다 출가를 핑계로 단발적인 비명만 내지르기에 급급했고, 자신의 존재와 역할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듯 살 때도 있었다. 우리도 따뜻한 인간이란 사실을 그동안 속으로만 말하고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럼 보통사람들은 어떠한가. 이상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혼자인 것 같다. 출가한 사람보다 더 혼자처럼 산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그렇고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있어도 혼자인 듯 생활하는 데 익숙하다. 너나없이 외롭다고 하면서 정작 함께할 줄은 모른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 ‘공감과 배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우리가 지구의 생명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분노와 응징 능력 때문이 아니라 공감과 배려 덕분이었다”는 진화학자 장대익의 글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말 그대로 이 세상은 공감하고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공생(共生)의 장이다.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상생하며 사는 공간이다.

붓다는 우리가 왜 자비심을 가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세상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중생은 서로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긴긴 밤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밝힌 것은 분명 나 혼자만 잘 살기 위함은 아닐 터. 출가자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들임을 되새기며 한 해를 시작해야겠다.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 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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