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복의 비결은 근면·불간섭”이라는 풍자소설

중앙선데이 2014.01.12 02:12 357호 28면 지면보기
니콜라 드 라르질리에르(1656~1746)가 그린 볼테르의 초상화(1728년께).
주의(主義·이즘·ism)는 싸움을 낳는다. 한 가정을 붕괴시키며 민족과 민족을 다투게 한다. 보수주의·진보주의·제국주의·민족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전체주의·이슬람주의·신자유주의···. 20세기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 21세기에도 주의가 원인이 된 상흔이 크고도 깊다. 어떻게 상처를 아물게 할 것인가.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24> 볼테르의 『캉디드』

수백, 수천의 이즘이 만개(滿開)하기 시작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다. 어쩌면 ‘계몽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대문호 볼테르(1694~1778)에게서 치유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볼테르는 18세기를 대표하는 문필가다. 전기작가요, 시인·극작가·소설가·수필가·사학자였다. 과학에도 조예가 깊어 유럽에 뉴턴 물리학을 소개했다. 세계 최초의 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사상가로도 기억된다.

‘이 세상이 최고의 세상’이라는 데 회의
볼테르는 모든 정형화된 믿음이나 가치의 체계에 반대했다. ‘틀릴 수 없는 진리’를 내세우는 모든 종류의 주의에 반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의혹을 품는다는 것이 기분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확신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볼테르는 심지어 낙관주의에도 반대했다. 당시 철학적 낙관주의의 대표는 독일 철학자·수학자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1716)였다. 라이프니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최선의 가능한 세상(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이라고 주장했다. 세상에는 악(惡)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신(神)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신이 세상을 다르게 만들었다면 그 세상에는 악이 더 많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캉디드』의 우리말(왼쪽), 프랑스어판(1759) 표지.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볼테르는 대표작인 『캉디드―혹은 낙천주의(Candide―ou, l’optimisme)』(1759)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캉디드는 ‘순진하다, 순박하다’는 뜻이다. 『캉디드』는 순진무구한 청년 캉디드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보며 성숙하게 돼가는 성장소설이요 풍자소설이다.

많은 이가 인생을 여정에 비유한다. 인생이 어떤 종교적인 여행이라면 사람은 순례자다. 『캉디드』는 영국 작가 존 버니언(1628~1688)의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s Progress)을 연상시킨다.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처럼 캉디드도 온갖 고생을 한다.

오늘의 한국 드라마처럼 믿을 수 없는 우연이 켜켜이 겹치고 또 겹치는 가운데, 『캉디드』에 나오는 인물들은 전쟁·강간·도난·지진·난파·종교재판을 겪고 노예상인, 식인종을 만난다. 여러 번 죽을 뻔한다. 특히 3만 명이 사망한 리스본 대지진(1755)을 목격한다.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이 최고의 세상이라면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캉디드의 스승인 팡글로스 박사는 “이 세상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고의 세상이기 때문에 모든 게 결국에는 만사형통(萬事亨通)이다”라고 주장한다. 팡글로스 박사는 끝까지 자신의 낙관주의 믿음을 한 치도 버리지 않는다. “즐거운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뭔가 새로운 것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그의 사고방식이다. 캉디드는 차츰 스승의 주장에 회의를 품는다.

소크라테스나 니체와 마찬가지로 볼테르의 특기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볼테르는 어떤 솔루션을 사람들의 입에 떠먹여주지 않는다. 『캉디드』의 결론은 좀 허탈하다. “노동은 우리를 권태·악습·곤궁이라는 3대 악(惡)으로부터 구원한다”는 어떤 행복한 노인의 권고에 따라 캉디드는 자그마한 농장을 사들인다. 노인이 말하는 행복의 비결은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고 간섭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캉디드』는 캉디드가 동고동락한 친구들과 지금은 젊었을 때 어여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뚱뚱한 아내와 농장에 정착한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캉디드』의 마지막에서 캉디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농장을 경작해야 한다(Il faut cultiver notre jardin).” 『캉디드』는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익살맞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고급 웃음’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잘 맞는 책이다.

당대 최고의 문필가인 볼테르지만 오늘날 일반 독자들이 읽는 것은 『캉디드』 단 하나다. 『캉디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볼테르의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사상가는 뭔가에 반대하고 뭔가를 주창한다. 볼테르는 부조리에 반대했고 사랑에 찬성했다.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건, 소름 끼치는 그것들을 박살내라(ecrasez l’infame).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라.”

볼테르는 관용(tolerance·톨레랑스)이 가장 중요한 문명의 가치라고 봤다.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그가 한 말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어쨌든 볼테르의 생각을 가장 잘 요약하는 말이다.

맹신에 반대, 관용에 찬성
볼테르는 당시 기독교의 맹신과 미신에도 반대했다. 그는 철학에서 희망을 봤다.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미신은 온 세상을 불타게 만든다. 철학은 그 불을 끈다.” 볼테르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그가 무신론자였다는 것이다. 사실 가톨릭 교회를 포함해 모든 형태의 기독교에 반대했다. 하지만 볼테르는 기독교(Christianity)보다는 기독교주의(Christianism)에 반대했다. 기독교보다는 오히려 무신론에 더 맹렬히 반대했다. 한번은 쥐라 산맥에 올라가 “믿나이다. 믿나이다. 전능하신 당신을 믿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을 했다. “만약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 볼테르는 가톨릭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이런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죽기 전 고해신부가 “악마와 관계를 끊으라”고 하자 볼테르는 “지금은 새로이 척질 때가 아니다”라고 대꾸했다.)

볼테르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문학 천재였던 볼테르는 사람들, 특히 귀족들이 그를 싫어하게 만드는 데도 천재였다. 그는 미련퉁이 같은 귀족들을 깔봤으나 귀족들은 자기방어에는 매우 유능했다. 볼테르는 바스티유 감옥에 두 번 갇혔고, 1726년 영국 망명을 포함해 수차례 망명해야 했다.

아버지는 공증인이었는데, 볼테르는 자신이 어머니와 어느 귀족 음악가 사이의 혼외정사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변변찮은 아버지보다 똑똑한 생부와 관계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어머니를 칭찬한 황당한 사람이었다. 자식을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한 볼테르는 말년에 양녀를 들였다.

볼테르는 유명인사(celebrity)의 원조였다. 자기홍보(self-promotion)에 능했다. 왕들에게 아부도 잘했다. 1만5284편의 편지를 남겼는데,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1712~1786),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1729~1796) 등 최고 권력자들에게 ‘알랑방귀’가 진동하는 서신을 보냈다. “대중이 이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말한 볼테르는 사실 민주주의보다는 계몽절대주의(enlightened absolutism)를 옹호했다. 돈놀이를 이유로 유대인들을 공격했는데 그 자신은 돈놀이에 능했다. “복권은 ‘수학치(數學癡)’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볼테르는 잘못 설계된 복권의 허점을 이용해 50대에는 유럽 최고의 대부(大富) 축에 끼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