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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제22화 등산 vs 등산

온라인 중앙일보 2014.01.12 00:00
산, 오르십니까? 에베레스트를 개척했던 등산가 조지 리 말로리는 “왜 산을 오르는가”란 질문에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답했다지요. 요즘 같은 엄동설한엔 산에 가시는 분들, 아마도 적지 싶습니다. 물론 설산을 사랑하시는 분들은 여전히 지금 이 시간에도 산등성이 어디에선가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요. 거창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번엔 부부가 각각 등산을 따로 좋아하다, 파국까지 맞게 된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해보려 합니다. 만약 이 부부가 등산을 함께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산을 사랑했던 이유

#아내의 이야기




테이블 위로 그가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500만 원짜리 수표 2장. “이게 뭐냐”고 다그쳤지만, 그는 “받아두라”며 도망치듯 자리를 비웠다. 덩그러니 놓인 1000만원. 이게 지난 2년간 우리의 관계였던 것인가.



2년 전 그와 나는 우연히 산에서 만났다. 울퉁불퉁 커다란 바위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손을 내민 것도, 헉헉대던 내게 시원한 물을 건네준 것도 모두 그 사람이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이렇게 빠져들지 않았겠지.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내기까지, 엄마로만 살았던 내게. 그 남잔 여자란 본모습을 되찾게 해줬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던 어느 날. 그는 어느 날 이별을 통보했었다. 산자락을 내려가면, 둘 다 지켜야할 가정이 있었던 터였다. 2년이란 시간을 꾹꾹 참았다. 하지만 그를 잊기가 어려웠다. 어렵게 연락을 해 그를 다시 만났고, 그는 내게 돈을 건넸다.



집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 그 사람에게 나는 그저 웃음을 파는 여자 같았던 건가.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날 밤을 고민하다, 수표를 들고 남자를 찾아갔다. 내게 모욕을 준 그 남자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남자의 직장에서 분탕질을 했다. 이성을 잃은 것은 잘못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산을 사랑해야만 했던 이유

#남편의 이야기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서라고 했다. 놀란 마음에 뛰쳐 가니, 아내가 펑펑 울고 있다. 경찰의 말은 놀라웠다. 아내가 바람을 폈고, 바람이 났던 남자네 직장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거였다. 고소까지 당한 아내. 합의를 보지 않으면 아내는 재판을 받을 거라고 했다. 배신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콩밥을 먹든, 고소를 당하든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결국 우리는 각서를 쓰고, 용서를 구했다.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겠다. 그리고 연락하지도 않겠다’고.



10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도 많았다. 욱하는 성격이었던 아내. 하지만 아이들은 살뜰히 키워내지 않았던가. 머리가 복잡해질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회사 일이 없는 주말. 혼자 산에 오르는 거였다. 산을 오르다 보면, 복닥거렸던 마음이 한결 고요해졌다. 아내의 불륜까지도, 잊을 수 있을 만큼.



아내의 외도를 잊기 위해 올랐던 산. 그 산은 또 다른 세계였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 사연들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 여자도 그랬다. 우연히 산정상에서 만난 그녀는 나와 비슷한 이유로 남편과 헤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산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혼자 사는 그녀를 위해, 컴퓨터를 들여주고 인터넷도 내 이름으로 개통해 깔아줬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법원 “남편의 이혼 청구, 받아들여야”



남편은 아내와 이혼을 위해 소송을 냈다. 아내는 “이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람 핀 남편이 이혼을 청구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버텼다. 현행법상 외도와 같은 잘못이 있는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하지만 부산가정법원은 이 부부의 문제를 달리 봤다. 먼저 아내의 외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편이 발 벗고 나섰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쓴 남편처럼, 아내 역시 가족 해체를 막기 위해 변화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형편이 어려워진 친구에게 돈 10만원을 빌려주자 폭언을 했고, 친구 부인에게 전화해 “돈을 언제, 어떻게 갚을 거냐”며 윽박지르기도 했던 전력이 있었다. 폭언의 습벽을 고치질 않았다. 격무에 시달리던 남편이 얼굴을 찡그리고 귀가한다며 욕설을 한 적도 있었다. 법원은 “아내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별거라는 위기 상황에서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계속할 생각도 없으면서, 오기나 보복의 감정으로 이혼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책배우자인 남편의 이혼 청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편의 위자료 청구에 대해선 “남편의 외도가 결혼생활의 파탄 원인이 됐고, 책임이 있는 남편은 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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