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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 국정교과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중앙일보 2014.01.11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고교 한국사 교과서인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비상식에 있다. 학교가 학생에게 가르칠 교과서를 마음대로 선정하지 못하고 전교조나 시민단체의 눈치나 살펴야 하는 게 비상식이 촉발한 갈등의 사례다. 국가가 교과서 제작에 직접 개입해 검정체제를 흔들려 하는 것도 또 하나의 극단적 사례다.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 외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른 대책을 발표한 뒤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체제 부활은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소모적 논쟁에 휘말리게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1992년 국정교과서 발행체제와 관련해 “위헌은 아니나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며, 국가가 교과서를 독점하면 주입식 교육이 행해지기 쉽다”고 지적한 부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정교과서는 별 소득 없는 위험한 발상이며,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상식의 범위 안에서 다양한 사고를 보장하려는 민주사회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는 한국사 교과서에도 적용된다. 교과서에 적용돼야 할 상식이란 우리 역사의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성과를 균형 있게 다루지 않은 채 부끄러운 현대사만 부각하는 자학(自虐)사관과 이를 근거로 쓰인 교과서는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상식의 선을 넘어선 것이다. 북한 주민을 노예화하는 데 쓰인 주체사상을 두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서술한 교과서도 비상식의 극을 달리는 사례다.



 정부가 집필·검정 기준을 정하면 민간 출판사가 참여해 그 기준에 맞춰 자유롭게 교과서를 내는 게 검정체제다. 교육부가 고민해야 할 대책은 상식의 선을 지키면서 다양한 시각과 사고를 담은 교과서가 나오도록 검정체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편향 교과서, 부실 교과서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한국사 교과서처럼 검정심사 기간이 4개월에 불과해서는 곤란하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대로 심사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간을 보장하고, 전문인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육부 안에서 교과서 편수를 담당하는 인력 5명이 2000여 종이 넘는 교과서를 감수하는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언급한 교육부 내 편수 조직의 부활은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검정체제가 보장하려는 다양성을 훼손하는 정도까지 국가가 개입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역사 교과서 파동으로 상식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다양한 시각을 부정하려는 극단과 비상식이 판을 치면서 우리 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럴수록 정부는 발행체제를 크게 흔들지 않고 교과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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