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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법, 87년 체제 벗어나는 첫걸음 … 폐지 불가”

중앙선데이 2014.01.04 23:31 356호 5면 지면보기
새누리당 남경필,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선진화법 폐지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새누리당이 선진화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검토하는 데 대해서다. 남 의원은 “국회 공전은 여야의 정치력 부재 때문인데 선진화법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원 의원도 “선진화법은 여야가 충분한 논의와 법률적 검토를 거쳐 합의한 사항으로 위헌 논란이나 폐지 주장은 우스꽝스러운 소리”라고 말했다.

국회선진화법 주도한 새누리당 남경필, 민주당 원혜영 의원

실제 19대 국회 첫 회기부터 지난해 말까지 처리된 법안은 총 2424건으로 같은 기간 18대(2698건)·17대(1579건)·16대(854건)·15대(679건)와 비슷하거나 훨씬 많다. ‘식물국회’라는 일각의 비판과는 다른 결과다.

다만 남 의원은 “정부조직법처럼 타협이 그리 어렵지 않은 법안에 대해서도 민주당이 선진화법을 악용하면서 여당 내에 회의론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원 의원은 “야당이 선명한 반대를 넘어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건 우리(민주당)가 부족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다음은 두 의원의 인터뷰를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

-몸싸움은 확실히 근절된 것 같다.
▶원혜영=국회 역사는 선진화법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힘 있는 다수는 밀어붙이기 유혹을 받고 야권은 이를 결사 저지하니까 갈등이 필연적이었다. 18대 국회 때 ‘MB악법’ 80개를 밀어붙이면서 야당이 최장기 본회의장 점거농성을 했다. 당시 내가 원내대표였는데 ‘언제까지 야당이 끝없는 몸싸움으로 대응할 건가’라고 하면서 선진화법을 당론으로 정했다. 법안을 강행 처리했던 18대보다 합의 처리한 지금이 법안처리율이 더 높다. 몸싸움·날치기 없이도 예산안, 국정원 개혁, 외국인투자촉진법 같은 논란 법안이 합의된 거다. 다만 박근혜 정권이 집권 1년차인데도 ‘꼭 해야겠다’고 적극적으로 내놓는 법안이 없다. 그런 법안이 있어야 야당이 세게 붙잡고 지렛대 삼아 ‘이것도 하자’고 주장을 펴는데, 뭐가 없으니 야당도 갑갑하다.

▶남경필=선진화법은 5년 단임제·양당제 시스템인 87년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김대중·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1~3%포인트 차이로 당선됐지만 당선 후엔 여당이 권력을 100% 갖는다. 이 괴리 때문에 선거 불복이 생기고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상대 후보 때리기에 골몰하면서 국회가 엉망이 된다. 이 구조에서 가장 혐오의 대상이 국회 폭력이었다. 여야 간에 합의가 안 되는 5~10건 정도를 몸싸움으로 해결하는 건 여야가 암묵적으로 동의해 왔던 것이다. 거기에 공천권을 가진 사람의 뜻을 몸으로라도 실현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의 한계가 더해져서 몸싸움이 생겼던 건데 이제는 그 구조를 변화시킬 때가 됐다.

-여당이 헌법 소원을 검토 중이다.
▶남=이미 끝난 얘기다. 황찬현 감사원장 인준안이 통과됐을 때 당내에서 “선진화법 덕분에 됐다”는 여론이 생기면서 선진화법 논란이 사그라졌다. 선진화법 폐지를 얘기하는 건 입에 붙은 레토릭(수사)이지 그걸 의원들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법안 처리율도 높다. 식물 국회도 동물 국회도 아닌 ‘광합성 국회’라고 할까. 다수결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는데 표결은 모두 과반수 표결이다. 상임위에서 본회의로 넘어가는 등 법안 처리가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때 3/5동의 규정이 있는 것이다.

▶원=선진화법은 여야 합의로 처리됐다. 공청회도 하고 입법조사처의 검토도 거쳤다. 선진화법 통과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임시국회를 별도로 소집해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되고 집권당이 됐다고 해서 주장을 바꾸는 것은 원칙과 소신을 저버리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헌법소원 검토가 100% 박 대통령의 의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청와대가 말이 없는 게 의아하다.

-야당 권한이 커지면서 국회 공전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남=야당이 선진화법을 발목잡기 수단으로 쓰고 있다. 선진화법은 탄핵, 한·미FTA, 4대 강 예산처럼 정말 합의가 안 되는 법안 다섯 건 정도는 오랫동안 숙성시키되 이견이 없는 법안은 빨리 처리하자는 거다. 그런데 민주당이 정부조직법 같이 조정이 가능한 법을 마치 합의가 안 되는 다섯 건에 속하는 것처럼 하면서 선진화법을 악용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징계안도 상정하기로 해놓고 갈등 법안으로 묶어버렸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회 공전의 책임이 야당에 있다는 의견이 더 높다. 과거에는 여당이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야당에 동정론이 갔지만 야당이 발목 잡을 권한을 갖게 되면서 이젠 ‘무책임한 야당’이라는 여론이 생겼다. 물론 우리도 대선 패배로 허탈감에 빠져 있는 야당의 요구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점이 부족했던 부분도 있다.

▶원=(야당 책임이 크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강행 처리하는 여당의 면모가 없어지니까 야당의 역할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여당의 잘못된 정책에 야당이 반대하는 건 당연한데 반대에 그치지 않고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거기까지 갈 때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야당 입장에선 예산안을 (야당의 주장을 관철할) 중요한 지렛대로 삼았다. 그렇다 보니 그동안 예산이 합의 처리된 적이 거의 없었다. 선진화법을 만들면서 예산안과 법안 처리를 분리한 건 야당이 가장 큰 무기를 포기한 것이다. 여야 모두 편하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포기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문화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 예산안이 자동 상정된다.
▶원=다른 목적을 위해 불필요하게 시간을 끄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획기적인 개선이다. 다만 그 전 과정이 충실하게 진행돼야 한다. 정부가 예산안을 9월 초까지 가져오고 국회와 정부도 11월 말까진 예산 심의 과정을 완료해야 한다. 예산안 심의가 졸속으로 이뤄지지 않게 하려면 국회 예결위를 전임 상임위로 하고 상설화해야 한다.

▶남=야당 입장에서는 합의를 봐 준 거고 굉장한 변화다. 국회 선진화법이 정착되어 가고 있는 거다. 올해는 거기에 권력구조 변화까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매번 반복되는 대선 불복, 임기 말 레임덕, 권력 스캔들을 뛰어넘고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용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임기가 중반으로 접어드는 올해가 87년 체제를 벗어날 개헌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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