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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에게 월 300만원 지급' 법안 제출 … 스위스의 복지 실험

중앙일보 2014.01.04 00:35 종합 19면 지면보기
스위스 사회민주당이 스위스 최대은행 UBS 건물에 쏘아 올린 ‘1:12 ja(yes)!’라는 문구. 한 회사 내의 연봉 차이가 12배를 넘을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인 D가 스위스 취리히 지사로 발령받아 이사를 온 건 3개월 전입니다. 짐을 풀자마자 두 자녀의 학교를 알아보고 보험에 가입하는 등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겨우 한숨을 돌릴 때쯤, 집으로 자동차 과속 벌금 통지서가 날아들었습니다. 시속 30㎞로 제한된 집 근처 도로에서 45㎞로 과속을 한 그가 내야 할 벌금은 250스위스프랑(약 29만원).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20만원짜리, 40만원짜리 고지서가 계속 날아들었습니다. D가 3개월 동안의 속도 위반으로 낸 총 벌금은 4000스위스프랑(460만원)이 넘었습니다.


[김진경의 취리히 통신]

 무슨 과속 벌금이 그렇게 높으냐고요? 스위스의 벌금 체계는 좀 복잡합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이 매겨지기 때문이죠. ‘일수(日數)벌금제’라 불리는 이 제도는 피고인의 소득을 고려해 산정한 1일당 벌금 액수를 재판에서 선고된 일수에 곱하는 방식으로 스위스·핀란드·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입니다. 중위권 소득자인 D의 벌금도 이렇게 정해졌고요. 2010년엔 스위스에서 시속 140㎞로 달린 페라리 운전자에게 3억여원의 벌금이 부과된 일도 있었지요.



 지난해 10월 24일 스위스 전역에서 실시된 국민투표의 내용은 ‘한 회사에서 돈을 가장 많이 받는 직원과 가장 적게 받는 직원의 연봉 차이를 12배까지만 허용한다’는, 일명 ‘1대 12 이니셔티브’ 법안이었습니다. 예컨대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의 연봉이 3000만원이라면 그 회사 CEO의 연봉은 3억6000만원을 넘길 수 없다는 거죠. 스위스에선 국민 10만 명의 서명을 받은 법안 내용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고, 투표자의 50% 이상이 찬성할 경우 이는 자동적으로 법적 효력을 지니게 됩니다. 비록 투표 결과 찬성 34%, 반대 66%로 부결이 되긴 했으나, 현지 언론들은 ‘천문학적 단위의 상여금을 받는 일부 기업인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선을 넘었다’며 경고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역시 지난해 10월 ‘스위스의 모든 성인 국민에게 한 달에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의회에 제출돼 이 역시 2015년쯤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입니다. 직업 유무나 재산에 관계없이 최저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국민 모두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자는 주장이죠. 미국의 일부 주와 남미 몇몇 나라들이 시도는 했으나 어디에서도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제도가 유럽 선진국에서 시행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의 소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에서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는 부유한 가문에 태어나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작은 마을의 소방관 노릇을 자청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고 살아가죠. 가족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요. 엘리엇의 치료를 맡은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사마리안실조증’이란 진단을 내리는데, 이 병은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성숙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돕고 싶어하는 극소수 사람만을 골라 공격하는 강력한 질병’이라고 정의됩니다.



 세계에서 금융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 스위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스위스는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미친’ 걸까요, 아니면 ‘생물학적(경제적)으로 대단히 성숙’한 걸까요?



김진경 jeenky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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