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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마오쩌둥과 우공이산(愚公移山)

중앙일보 2014.01.02 15:04
2014년 정초다. 금년도 중국의 화두는 개혁과 함께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주석이 될 것 같다. 밖으로는 일본의 거침없는 우경화에 맞서야 하고 안으로는 빈부격차로 분열되고 있는 중화민족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항일과 평등의 상징인 마오쩌둥 만 한 인물이 없다.



지난 12월 26일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그의 생가인 후난성 사오산(韶山)에 1000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개혁 개방에 성공하였다고 해서 마오쩌둥 혁명시대의 30년(1949-1979)을 부정할 수 없다고 언급하고 그의 탄생일에는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함께 마오 기념당을 찾아 마오의 시신을 참배하였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고전을 항상 옆에 두고 읽었다. 그 중 춘추시대 사상가 열어구(列禦寇)가 지은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故事)를 좋아하였다. 우공이산의 고사는 중국인의 인내와 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옛날 북산(北山)에 90세 된 우공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우공은 근처의 태형(太形)산과 왕옥(王屋)산이 가로 막고 있어 다니려면 산을 둘러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우공은 혼자 이 산을 깎아 길을 내려고 작정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어리석인 노인이라고 비웃지만 노인은 괘의 하지 않는다. 자신이 못하고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못하면 손자가 하는 식으로 자자손손(子子孫孫) 산을 깎아 간다면 언젠가 산이 평평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하늘(天帝)이 감동하여 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우공이 사는 곳을 평지로 만들어 주었다는 은(殷)나라 시대의 이야기다.



마오쩌둥은 항일전이 한창이던 1945년 6월 옌안(延安)에서 개최된 제7차 공산당대회에서 이 고사를 인용하였다. 그는 중국인민을 짓누르고 있는 태형산과 왕옥산은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이며 중국 공산당이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이 산들을 깎아 나간다면 하늘 즉 중국인민이 감동하여 두 개의 산이 옮겨 질것으로 믿는다고 하였다.



마오쩌둥의 이러한 연설이 있은 후 수 개월 지나 “제국주의”라는 산은 일본열도로 패퇴하였고 다시 수년 후 “봉건주의”라는 산은 타이완(臺灣)으로 쫓겨 갔다. 중국 대륙에는 다시 평화가 왔다. 우공의 지성에 감천(感天)한 것처럼 마오쩌둥의 혁명정신이 하늘의 도움으로 (帝感基誠) 제국주의 와 봉건주의를 물리 쳤는지 모른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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