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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에 빠진 젊은 세대 보듬을 복지정책 늘리자

중앙일보 2014.01.02 01:01 종합 5면 지면보기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나온 김민제(가명·30)씨는 졸업 후 2년여 만인 지난해 한 민간 연구소에 어렵사리 자리를 잡았다. 120만원가량인 월급에서 이것저것 떼고 나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남짓이다. 여기서 학자금 대출을 갚는 데 30만원 정도를 쓰고 취업준비생인 동생 용돈을 챙겨 주고 나면 생활비도 빠듯하다. 김씨는 “저축도 전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 같은 미래를 설계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부모님보다 더 잘살 수 있을 거란 희망도 버린 지 오래”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갑오년 어젠다 - 젊은이에게 길은 있다
절망에서 일으켜 세우려면

 박희정(가명·34)씨는 결혼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출산을 미루고 있다. 다니는 중소기업에선 출산이 곧 실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전세 대출금도 아직 못 갚았는데 아이까지 생기면 서민층으로 전락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가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10명 중 7명은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본지와 모바일 설문조사업체 오픈서베이가 25~39세 기혼자와 미혼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청년들의 좌절감은 골이 깊었다. 응답자의 42%가 “부모 세대보다 직장에서 승진 같은 기회가 덜 주어진다”고 생각했고, 2명 중 1명(48.6%)이 “근로소득으로 계층 이동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개인의 능력보다 집안의 재산이나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10명 중 6명(60.6%)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이 청년들을 굴복시켰다”고 진단한다. 1980년대 두 자릿수였던 경제성장률은 최근 3%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득과 소비 수준 같은 삶의 안정성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기회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진학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높아지면서 청년 대부분이 ‘대기업 취업’이라는 같은 꿈을 가지게 됐다는 점도 경쟁의 강도를 높이는 요소다.



 환경이 달라졌는데도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은 부모 세대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절망의 원인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재 2030세대의 부모는 20대에 결혼을 하고 30대에 출산을 마무리 짓고 40대에 내 집 마련을 했다”며 “반면 2030세대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더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도 젊은 세대는 가진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은퇴시점까지 본인이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결혼이나 출산, 대출을 얻어 주택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의사결정을 할 때 망설임이 없었다. 반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해도 정년까지 일한다는 보장이 없다. “오늘보다 내일이 낫다”고 낙관하기 어려우니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결혼과 출산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들 세대를 절망감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교육에서 군복무·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사회 진출 초기 단계에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복지혜택을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처럼 군복무 기간을 기술 교육에 활용하거나 교육비 등을 충당할 수 있는 군복무 연계 장학금, 봉급 현실화 등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구직 단계에서의 수당 지급, 결혼을 전후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임대주택 확대 등의 정책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전영수 교수는 “현재 복지는 노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주택 문제같이 젊은 세대를 위한 복지정책을 늘리는 게 결혼과 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은 “이전 세대처럼 부동산을 통해 플러스 알파(추가 수익률)를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해졌다”며 “금융자산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를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경제환경에 맞는 삶의 기준과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영훈·윤창희.손해용·정선언·김영민 기자, 뉴욕=이상렬 특파원, 파리=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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