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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빔 쏴대고, 폭죽 던지고 … 알제리 축구는 전쟁이다

중앙일보 2014.01.02 00:57 종합 26면 지면보기
지난해 12월 28일 알제리 세티프에서 열린 알제리 프로축구 리그 경기. 리그 1위팀 USM 알제를 맞아 0-1로 끌려가자 세티프의 홈 팬들이 홍염에 불을 붙여 경기장에 투척했다. 알제리 축구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티프(알제리)=박린 기자]


6개월 후 브라질 월드컵에서 H조에 속한 한국은 러시아·알제리·벨기에와 차례로 격돌한다. 중앙일보는 3개국을 찾아가 상대국의 전력뿐만 아니라 축구 문화와 분위기까지 점검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첫 방문국은 예선 2차전 상대인 북아프리카의 복병 알제리다.

브라질 월드컵 상대국을 가다 (상) 광기와 열망 … 축구장은 해방구





취재 차량이 부서졌다. 뒤쪽 유리창이 산산조각났다. 주먹보다 크고, 머리보다는 작은 돌멩이가 뒷좌석에 처박혀 있다.



 이곳은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300㎞ 떨어진 도시 세티프의 ‘스타드 8 마이 1945’라는 난해한 이름의 축구장 주차장. 알제리 축구는 기자를 이렇게 환영해줬다.



 경찰은 “계속 이기다가 막판 동점을 허용해 성난 원정팬들이 한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하며 “축구장에서 이런 일은 흔히 있다. 경찰서에 가도 별 대책은 없다”고 말해줬다. 주차장에 남아있는 차량 5~6대 중 ‘동양에서 온 기자가 몰고온 차’만 파손된 것을 보면, 축구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외지인에 대한 적개심이 표출된 것인지도 모른다.



알제리 프로리그 경기 취재를 마치고 나오자 취재 차량의 뒤 창문이 박살 나 있었다. [박린 기자]
 ◆카뮈의 고향, 지단의 고국=모로코·튀니지와 함께 아프리카 북부 마그레브(Maghreb·아랍어로 일몰의 땅) 3국의 하나인 알제리.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고향이다. 프랑스의 천재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 이민자의 후예다.



 1962년 독립 전까지 132년간 알제리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한국 늦가을처럼 서늘한 날씨다. 기온은 영상 8도. 흑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마중 나온 가이드 유영준(30)씨는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이 99%고, 이슬람교도가 99%”라고 전했다.



 차창 밖 풍경은 중동의 이란과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거리 곳곳에 AK소총과 폭탄 탐지기를 든 군인, 파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다. 유씨는 “지난해 1월 이슬람 무장세력의 인질극으로 외국인 37명이 희생당한 뒤 경비가 강화됐다. 총에는 실탄이 들어 있다. 카메라로 군인과 경찰을 찍으면 잡혀간다”고 주의를 줬다.



 지중해를 낀 항구도시 알제. 거리 곳곳에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27·아르헨티나)를 모델로 내세운 통신회사 광고판이 서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포르투갈) 헤어스타일에 맨유와 바르셀로나 등 유럽 축구팀 재킷을 입은 청년들. 그리고 공터에서 삼삼오오 공을 차는 아이들….



 오세정 알제리 대사관 서기관은 “축구는 알제리의 국기(國技)다. 한반도보다 10배나 크고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10위권인 에너지 부국이지만 빈부격차가 심하다. 실업률은 30%에 달한다. 축구가 유일한 낙이고 스트레스를 풀 해방구”라며 “지난해 11월 부르키나파소를 1-0으로 꺾고 브라질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은 뒤 여러 건의 사고가 터져 12명이 숨지고 240명이 다쳤다. 그야말로 축생축사(蹴生蹴死)”라고 전했다.



 ◆레이저빔과 홍염이 난무하는 경기장= 알제리 둘째 날 3시간을 차로 달려 세티프로 이동했다. 알제리 프로축구 1위 USM 알제와 ES 세티프전을 관전했다. 경기 후 차가 파손된 바로 그곳이다.



 경기장은 세티프 홈팬들로 인산인해였다. 하루 전 기자는 USM 알제 구단에 취재 요청을 했지만 차갑게 거절당했다. 구단 관계자는 “바히드 할리호지치 대표팀 감독이 월드컵을 앞두고 전력 노출을 막아달라고 했다”며 거절 이유를 밝혔다.



 킥오프 2시간 전부터 2만5000명이 꽉 들어찬 경기장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경기장 곳곳에 배치된 경찰은 1000여 명에 달했다. 관중 25명에 경찰 1명꼴이다. 관중은 90분 내내 레이저 포인터로 선수와 심판에게 녹색 레이저빔을 쏴댔다. 최악의 경우 실명을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TV 엘샤루크의 사미르 메하르베시 기자는 “부르키나파소와 월드컵 예선 최종전 때도 레이저빔이 난무했다”고 말했다.



 원정팀 USM 알제가 후반 21분 선제 골을 넣자 알제 팬들이 경기장 트랙으로 폭죽 끝에 불을 붙인 홍염을 던졌다. ES 세티프 홈팬들은 후반 막판까지 0-1로 끌려가자 10여 개의 홍염을 켜 그라운드 안으로 투척했다. 축구장이 아니라 전쟁터 같았다. 경찰은 홍염을 던진 사람을 잡기는커녕 청소부처럼 홍염을 치우느라 바빴다. 잠시 중단됐던 경기가 자연스럽게 재개됐다.



 알제리 축구 선수는 매주 이런 전쟁 같은 경기를 치르며 단련된다. 세티프는 후반 추가시간 동점 골을 넣어 1-1로 비겼다. 라바 샤덴(68) 세티프 감독은 한국 기자를 보고는 “알제리 대표팀은 국민과 함께 뛴다. 월드컵에서도 오늘 세티프처럼 팬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제리 대표 출신인 세티프의 아미르 카라위(27)는 “알제리 국민의 열광적인 응원은 부담보다 큰 힘이다. 달리는 말에 가하는 채찍질 같다”고 말했다.



 김종훈 주알제리 대사는 “2011년 알제리 선수들이 이집트 팬들이 던진 돌에 맞아 피가 흐르는 사진이 보도된 적이 있다. 성난 알제리 팬들은 자국 내 이집트 기업을 공격했다. 하지만 알제리 축구팬들은 훌리건처럼 싸우는 게 아니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려 차를 몰고 거리를 질주하다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집트처럼 불미스러운 원인을 제공하지 않으면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제로 돌아오는 길, 부서진 유리창 대신 임시로 붙인 비닐이 쉬지 않고 소음을 만들어낸다. 월드컵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 10여 명이 죽을 정도로 열광하는 나라. 그런 열망을 안고 뛰는 선수들. 한국이 승리의 제물로 생각하는 알제리는 무시무시한 투지를 품고 한국을 맞을 것이다.



알제·세티프(알제리)=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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