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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SPC(특수목적회사)가 뭔가요

중앙일보 2014.01.02 00:54 경제 6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Q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들을 일괄 매각하기 위해 SPC를 설립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SPC는 탈세 등 나쁜 목적으로 해외 조세피난처(세금이 없거나 낮은 국가)에 설립된 유령 회사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그렇다면 SPC는 무엇인가요?

부동산·자원 개발, 선박 구입, 자산 매각 등
특정사업에 투자하려 만든 서류상 회사예요



A SPC(Special Purpose Company)는 우리말로 특수목적회사, 특수목적법인 등으로 번역됩니다. 말 그대로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라는 얘기죠. SPC는 여러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부실채권 매각, 해외 자원 개발, 영화 제작, 선박 운영 등 특정 사업에만 투자하기 때문에 SPC를 설립한 모기업의 재무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SPC가 돈을 빌릴 경우에도 이 자금은 모기업의 빚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설립 목적이 달성되면 언제든지 쉽게 청산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부동산 개발을 시도 중인 A사가 많은 비용을 혼자 조달할 수 없어 투자자를 유치하려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마침 이 사업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투자자는 걱정이 있습니다. A사의 재무구조가 나쁜 것도 마음에 걸리고 이 때문에 투자 자금을 A사가 엉뚱한 곳에 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그래서 A사에 직접 투자하는 대신 부동산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SPC를 설립하게 한 후 이 SPC를 통해 투자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면산터널이나 천안∼논산고속도로 등 SPC 방식으로 건설된 시설이 많습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대형 영화 제작에 SPC가 활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투자 유치에 유리, 목적 끝나면 쉽게 청산



 현대그룹의 사례처럼 자산을 매각할 경우에도 SPC가 많이 사용됩니다. 기업은 때때로 돈이 부족해 자산을 매각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아무리 좋은 알짜 회사라도 금방 팔리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현대그룹의 경우 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 3개 회사를 한꺼번에 매각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한 개 회사를 파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겠죠? 이럴 경우 SPC를 이용하면 일이 빨리 진행됩니다. SPC는 매각 대상인 자산을 일단 인수하고 이 자산을 근거로 채권(유동화채권)을 발행해 신속하게 현금을 마련합니다. 이 때문에 SPC를 자산유동화회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세피난처 SPC = 탈세창구’ 단정은 잘못



 해운회사들은 선박을 구입할 때 금융회사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 SPC를 설립합니다. 금융회사는 보통 선박 소유권을 해운회사와 분리돼 있는 SPC에 두도록 요구합니다. 그렇게 해야 해운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선박이 이 해운회사의 자산으로 묶여 다른 채권자에게 처분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거죠.



해외 법인이나 부동산을 인수할 때도 SPC가 활용됩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이나 기업 인수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런 규제를 피해 제3국에 설립된 SPC를 통해 중국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 최근의 투자관행입니다. 연기금이나 한국투자공사 등 기관들도 해외에 SPC를 설립해 해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일부 사회단체에서 조세피난처에 SPC를 설립한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탈세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탈세를 하기 위해 해외 SPC를 운용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설립한 SPC를 통해 거액의 세금을 포탈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죠.



 하지만 재계에서는 해외 SPC를 무조건 탈세 창구로 보는 시각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SPC가 세금이 낮거나 없는 홍콩·싱가포르·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피난처 지역에 많이 설립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의 SPC들이 모두 탈세 창구인 것은 아닙니다.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하는 건 불법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의 다국적기업과 투자자들이 세금이 없거나 세금 부담이 적은 이들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인 애플과 구글도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해 세금 부담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재현 회장의 경우에도 재판 과정에서 “탈세를 하기 위해 해외 SPC를 만든 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비용 줄이려 사무실 없이 운영 많이 해



 실제 국제 거래에서 조세피난처의 낮은 세율을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과도 연관됩니다. 해운 관련 SPC는 파나마나 마셜아일랜드, 버진아일랜드 등에 많이 설립돼 있습니다. 국제해운업계가 세금과 규제가 적은 이들 지역에 선박을 등록해 운영하는데, 우리나라 해운회사만 세율이 높고 규제가 더 많은 지역에 선박을 등록한다면 경쟁력을 잃게 되겠죠. 실제 국내 30대 그룹 중 16개 그룹이 조세피난처에 280여 개 법인을 운영 중인데 이 중 85% 정도가 대형 해운회사의 선박금융과 관련된 SPC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SPC의 상당수가 페이퍼컴퍼니인 것도 사실입니다. 페이퍼컴퍼니란 사무실이나 직원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말합니다. 하지만 페이퍼컴퍼니가 모두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인 것은 아닙니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위해 서류상의 회사로만 설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펀드를 운영하는 회사는 회사 재산과 펀드를 분리하기 위해 독립된 SPC를 설립하는데, 이런 SPC는 직원을 두거나 사무실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직원과 사무실이 있으면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투자자금이 엉뚱한 곳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깁니다. 해운회사들의 SPC들도 대부분 페이퍼컴퍼니입니다. 이들은 선박 1척을 마련할 때마다 SPC를 설립하는데 그때마다 사무실을 얻고 직원을 고용하면 비용 부담만 늘게 되겠죠.



 그래서 재계에서는 SPC 설립 자체를 비판하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SPC가 정상적인 것인지, 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재산 은닉을 위해 설립된 것인지 여부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국세청에서도 정상적으로 해외투자 신고를 하고 지속적으로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할 경우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SPC를 악용하는 세력들은 나쁘지만 그렇다고 해외 SPC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올바른 시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해외 SPC들을 불법의 소지 없이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잘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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