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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눈으로 듣는 말발굽 소리

중앙일보 2014.01.02 00:36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기창, 군마도, 19 69, 비단에 수묵채색, 176×340㎝, 서울미술관 소장.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여섯 마리 말이 날아갈 듯 내달린다. 앞모습, 뒷모습,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말과 함께 보는 이의 시선도 움직인다. 흩뿌린 묵점으로 말발굽이 흙먼지를 일으키는 것처럼 표현했다.

 말띠해를 맞아 연하장 그림을 띄운다. 운보(雲甫) 김기창(1913∼2001)의 ‘군마도(群馬圖)’다. ‘그림 속 얼굴’이 보여 드리는 마지막 그림이기도 하다. 그의 제자인 심경자 세종대 명예교수는 “운보의 ‘군마도’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말이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고 했는데, 많은 독자들이 그의 감상에 공감할 듯하다.

 운보는 말 그림을 즐겨 그렸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말은 복 받은 동물이다. 사주 12지 운세에 ‘복(福)’자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말띠, 실로 나에게 화면이나 주제를 떠나서 뭔가의 배움을 알게 한다. 뿐만 아니라 힘차게 달리는 그 모습은 생명의 감동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말 그림을 쉬지 않고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이다.”(1980년 11월, ‘여성동아’)

 7살 때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은 운보는 그림으로 자기를 세웠고, 한국화의 혁신을 이뤘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한국화가이기도 했으니, 93년 예술의전당 전시엔 하루 1만 명이 입장한 진기록도 세웠다.

 들리지 않는 그의 그림들은 운동감이 유난하다. ‘군작도(群雀圖, 1959)’는 참새 떼가 새카맣게 몰려 있는 네 폭 병풍이다. ‘군해도(群蟹圖, 1966)’는 게 떼를 그렸다. 둘 다 다닥다닥 모인 미물들이 내는 소음이 들릴 듯 ‘시끄러운’ 그림이다. ‘세 악사’(1970년대)에서 악공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있으면 음악이 들리는 것 같다. 움직임이, 속도가, 거기서 나오는 진동이 그에겐 소리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본다고 다 보는 게 아니고, 들린다고 더 잘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터다. 화가의 소리에 대한 갈망이 읽히는 이 그림은 역으로, 보고 듣는 게 반드시 눈과 귀로만 이뤄지지는 않음을 보여 준다. 감각은 곧 관심이고 갈망이다.

 ‘군마도’는 지금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운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련한 전시 ‘예수와 귀먹은 양’에서다. 6·25 때 그린 ‘예수의 생애’부터, ‘군해도’ ‘세 악사’ ‘바보산수’ ‘청록산수’ 등 운보의 세계가 펼쳐진다. 또한 전시장 말미엔 운보의 유품도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빨간 양말과 아리랑표 흰 고무신도 있는데, 양말엔 구멍이 뽕 뚫려 있다. 듣지 못했던 화가가 그림으로 들려주는 소리가 전시장에 울린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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