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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한국이든 영국이든 희망은 공동체에서 나온다

중앙일보 2014.01.02 00:33 종합 28면 지면보기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지금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고향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3주 전 서울을 떠난 뒤로 한국에선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기자로서(정확히 말하면 전직 기자) 이를 놓치게 된 게 아쉽지만 이번 사건으로 나는 한국이 영국과 더욱 비슷하게 되고 있다고 여기게 됐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놀란 것 중 하나가 한국인들이 적극적이며 냉소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거기엔 이미 근대화 과정을 졸업하고 더욱 세분화된 사회로 진화했으며, 이미 할 건 다 해봤다는 의식이 자리 잡은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상당히 신선해 보였다. 나는 그동안 모든 종류의 권위에 의문을 품었으며 유명 인사나 정치인, 부유한 사업가가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 “그게 내게 무슨 도움이 되나요”라고 물어왔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틀린 것 같다. 한국은 이미 이런 문제가 해결된 곳이며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신경 써주는 사회로 보였다. 하지만 2014년 현재 젊은 층은 정치와 경제활동, 그리고 거대 조직 전반에 대한 철저한 냉소를 배우고 있다.



 사회의 근대화 및 그 이후의 발전이 깊숙하게 진행될수록 성장률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냉소주의는 부상한다. 이제 자본은 생산성이 더 높은 곳이라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아주 효율적이다. 하지만 잘사는 나라의 근로자들은 이 효율을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만일 전문적이고 비반복적이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오랫동안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영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 공통으로 ‘진보’ 정권과 ‘보수’ 정권 모두에서 고용불안과 불평등 경향이 마찬가지로 계속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16%만이 정치인을 존경하며 겨우 2%만이 정치인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거의 절반이 정치인에 대해 ‘분노’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대다수의 영국 젊은이는 선거에 관심이 없다. 지난해 영국 최대의 정치적 논쟁은 코미디언 러셀 브랜드의 발언에서 비롯한 것으로 투표하는 게 귀찮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20대 젊은이들은 투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급진화되지도, 좌경화하지도 않았다. 사실 영국의 20대들은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보수 이념을 신봉하지도 않는다. 동성 결혼과 마약 합법화를 지지한다.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전통과 기존 제도에 반감을 보인다. 그들은 냉소주의의 결과 자유주의자가 된 것이다. 그들은 정부가 뭘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복지에 지출하든 전쟁에 쓰든 정부가 예산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는가? 내겐 좌파든 우파든 정치는 죽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도 이런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정치가 계속 변화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는 두 가지 경제적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첫째는 말하자면 고용불안의 현실을 받아들여 스스로 기업인으로 변신하거나 전통적인 ‘직업’의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별한 기술을 갖고 여러 가지 수입원을 확보하면서 자신이 ‘브랜드’나 1인 사업체가 되는 일이다.



 둘째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사업이나 정치 집단 같은 공동체가 아닌, 사람들이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울타리가 돼줌으로써 불안정한 세계에서 공동 번영하는 협동조합을 말한다. 나는 이 두 가지 선택에 맞춰 나의 경제생활을 계획할 것이다.



 우리는 냉소주의와 자기중심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는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명백한 현실이다. 나는 페이스북에 로그인해 끝없이 이어지는 부정적인 뉴스를 보거나 ‘이거 내가 산 새 샤넬 가방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사진을 대할 때마다 이런 사실을 떠올린다. 희망은 결국 오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정치에서 오는 게 아니다. 하의상달식, 즉 공동체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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