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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 안 통해 … 과거 기준으로 성장 밀어붙이지 말라"

중앙일보 2014.01.02 00:33 경제 3면 지면보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26일 집무실에서 올해 경제 전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환율에 대해 “거시 경제 상황에 따라 환율이 결정돼야 하지만 충격이 있을 때는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부 개입은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사진 대한상의]


지난해는 기업에 곤혹스러운 한 해였다. 경제민주화 바람은 거셌고, 원성은 자자했다. 기업도 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알아주는 곳은 별로 없다. 박용만(59)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 점이 야속하다. 그는 “변화 요구에 기업이 저항하고 있지 않다”며 “변신할 생각이 없는 집단, 의도가 나쁜 집단으로 몰아가는 건 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감도 보였다. 그는 “기업은 다른 어떤 부문보다 빨리 변할 것이다”며 “몇 년 후면 ‘기업은 저렇게 선진화되는데 다른 데는 뭐 하느냐’는 소리 분명히 나온다”고 장담했다. 박 회장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26일 상의 회장 집무실에서 있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소득 2만달러 국가 3% 성장 당연
올해 출구는 내수밖에 없어
기업은 어떤 부문보다 빠르게 변화
몇년 후 다른 데는 뭐하냐 말 나올 것



 -기업에 대한 반감이 크다.



 “그동안 기업은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 더 잘살기 위해 국가 전체가 여기에 우선순위를 뒀다. 내적 성숙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이걸 이해해 달라는 것이지,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은 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 기업은 변하고 있다.”(기업 총수 판결에 대해 그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경영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고만 답했다.)



 -동반성장도 화두였다.



 “중소기업 보호는 일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게 능사, 만사가 되면 경쟁력이 약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보호를 할 때는 몇 년 후에는 보호장치를 없앤다고 못 박고, 그 기간 동안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 보호만 연장하는 건 기업을 돕는 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 의한 것이다.”



 -철도파업으로 어수선했다. 사회적 갈등에 대한 생각은.



 “타협과 양보의 전제 조건은 열 개(사안 전체)를 다 들여다보고 논의하는 것이다. 지금은 여섯 개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각각 양쪽 끝 두 개씩만 가지고 논거로 삼고, 세력을 키운다. 또 내가 질 수밖에 없는 경우에 진 결과를 가지고 양보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양보가 아니다.”



 인터뷰 시점은 철도노조 파업 중이어서 갈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과한 표현”이라고 토를 달았지만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경제 전망은.



 “양적완화 축소는 걱정 안 한다. 우리가 수출하는 물건은 신흥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가는 중간재가 대부분이다. 선진국 경기 회복으로 수출은 적당한 성장을 할 것이다. 국내 투자는 다소 과잉 상태다. 한국은 규제와 노사 관계 등에서 투자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투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다. 따라서 국내보다 해외 투자가 먼저 늘 것이다. 재정도 여의치 않다. 출구는 내수밖에 없다. 특히 서비스산업이 중요하다.”



 -저성장도 걱정인데.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인 국가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3%대 성장을 하면 당연한 결과다. 성장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업가 정신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내 것을 바꾸고(혁신), 다른 사람 것과 합치고(융합), 안 해본 것을 받아들이는 선진화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생각으로 오늘의 성장을 밀어붙여선 안 된다.”



 -창조경제에 대한 견해는.



 “맞는 방향이다. 제조업 주도에서 혁신 주도 경제로 가야 한다.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은 자꾸 창조경제의 분명한 개념을 요구하는데, 그러면 관이 주도해 달라는 얘기다. 이율배반적이다.”



 -통상임금에 대한 기업의 우려가 크다.



 “솔직히 대법원 판결만 봐선 잘 모르겠다. 개별 판결을 통해 사안이 명확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임금체계를 법으로 명시해 논란을 없애야 한다.”



 100년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으로서 두산, 그리고 기업인 박용만(두산그룹 회장)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그는 16만 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를 가진 ‘대중 기업인’이기도 하다.



 -돈이 많으면 행복한가.



 “편안한 건 사실이다. 이걸 인정 안 하면 내가 나쁜 놈이다. 행복의 잣대는 별개다. 행복은 승진, 합격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온다.”



 -부자도 그런 고민을 하나.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나. 나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만들어주면 지속이 안 된다. 돈 많아도 부부 사이 안 좋거나 자식이 속 썩이면 살기 싫지. 어느 날은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나 싶다가도 만날 욕이나 얻어먹고 다니면…. 남보다 내가 자신을 더 잘 아는데 되겠나. 기업가는 다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 그거 옛말이다. 개처럼 벌면 그냥 개다. 모로 가면 서울을 못 간다. 똑바로 간 사람이 서울 다 차지하고 대문 닫는다.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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