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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정치싸움에 골병 드는 교육예산

중앙일보 2014.01.02 00:32 종합 29면 지면보기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
“정치가 교육을 휘두르는 것 같아 학생들 볼 낯이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교육예산안 처리 과정을 돌아보며 서울시의회 이종필 새누리당 대표가 한 말이다. 4선 의원인 그는 1일 “의정 활동 중 가장 참담하고 부끄러웠던 순간”이라며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민주당이나 이를 저지하지 못한 새누리당, 소통 없이 버티기만 했던 시교육청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참담’했던 그날의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늦은 밤 서울시의회는 올해 서울 교육예산으로 7조4391억원을 책정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즉시 ‘부동의권(不同意權)’을 행사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통과시킨 예산을 시교육청이 거부한 것이다. 예산결산위원회를 통과한 예산안이 본회의에서 폐기되고 민주당이 제출한 수정안이 의결됐기 때문이다. 수정안에선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과 혁신학교 예산 등 470억원이 증액됐다.



 예산안 통과 직후 시교육청은 “수정안의 대부분인 363억원이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예산으로 나쁜 선례만 남겼다”며 “교육청이 동의하지 않은 이 예산에 대해선 불법예산으로 보고 집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은 다음날 성명을 통해 “문 교육감의 ‘부동의’는 지방선거에서 보수 세력의 결집을 목표로 한 것”이라며 “정치만 있고 학생은 없는 매우 나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서로를 ‘나쁘다’고 공격하는 양측의 모양새는 결국 6·4 지방선거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그렇지 않고선 130만 학생의 1년 교육을 책임지는 예산안을 볼모로 이런 싸움을 벌일 수는 없다. 당장 재선이 목표인 시의원들에게 지역구 ‘쪽지예산’은 먼 훗날을 내다보는 백년대계인 교육보다 절박하다. 연임 쪽에 무게가 실리는 문 교육감 역시 선거를 앞두고 곽노현 전 교육감의 ‘혁신학교’ 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 외풍에 흔들리는 이런 교육 현실은 사실 위헌에 가깝다. 헌법 31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6조도 “교육이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설득과 소통 대신 ‘나쁜’ ‘불법’ 등의 표현을 써가며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문 교육감 측이나 엄연히 예결위를 통과한 예산안을 폐기하고 쪽지예산이 주류인 수정안을 본회의에서 직권상정으로 통과시킨 민주당이나 교육은 안중에 없는 것처럼 보이긴 마찬가지다.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채 ‘정치(政治)’를 앞세우는 사람들은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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