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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007' 펀드매니저

중앙일보 2014.01.02 00:31 경제 2면 지면보기
#1 삼성자산운용 한상수 펀드매니저는 기업 탐방을 나가기 전 항상 담배 몇 갑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회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정문 경비실에 들른다. 가져간 담배를 나눠 피우며 평소 회사 분위기와 드나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친분이 쌓이면 통행 일지까지 볼 수 있다.


온종일 엘리베이터 타는 이 사람
임직원만큼 회사 속사정 잘 알아
기업 탐방은 투자의 '최후 관문' … 현장서 가치주 찾는 그들

#2 ‘유난히 사무실 집기가 늘었네, 비서 수도 많아졌고….’ A기업 사무실을 둘러보던 한국투자신탁운용 안세윤 펀드매니저는 속으로 생각한다. 최근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기업이지만 안 매니저의 탐방 노트엔 ‘우려’라는 단어가 적힌다. 그의 눈이 이번엔 회의실 앞 팻말로 향한다. 팻말에는 회의 일정이 공지돼 있다. 어떤 회의인지, 회의는 얼마나 자주 하는지 노트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현장에서 답을 찾는 펀드매니저들이 늘고 있다. 책상을 벗어나 투자할 기업에 직접 가보는 것이다.



 펀드매니저들이 투자할 만한 기업을 가려내기 위해 들여다볼 자료는 많다. 재무제표·사업계획서·기업설명회(IR) 자료처럼 자세하고 방대하다. 그런데도 기업 탐방을 가는 건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펀드매니저는 기업 탐방을 투자의 ‘마지막 관문’으로 삼는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박경륜 본부장은 “기업이 전달하는 정보는 잘 정제되고 좋은 면만 강조하는 측면이 있어 결정적인 ‘무언가’는 늘 기업 탐방에서 찾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 부사장은 가치주를 발굴하기 위해 1년에 1400회 이상 기업 탐방을 다닐 정도다.



 수많은 기업 중 이들이 방문하는 곳은 어디일까. 먼저 관심 업종에 속한 기업들의 최근 사업보고서나 주가 흐름·현금보유량·부채비율과 같은 지표를 분석해 범상치 않은 기업을 골라낸다. KB자산운용 최웅필 펀드매니저는 “주가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회사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무엇인지,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지 체크하기 위해 기업 탐방을 간다”고 말했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신영자산운용 박인희 펀드매니저는 “장기간 주가가 떨어져 시장에서 소외된 기업 가운데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곳이 최우선 탐방 대상”이라고 말했다. GS홈쇼핑이 대표적인 예다. 2012년 초만 해도 경쟁사들과 비교해 이익이 매우 적었다. 하지만 재무제표상 현금보유량이 유난히 많아 ‘이보다 더 나빠지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사를 방문해 보니 때마침 분위기 쇄신을 위한 조직 개편이 한창이었다. 경쟁사의 핵심 인력까지 영입한 상황이었다. 평소 사람을 기업 가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박 매니저는 탐방 후 GS홈쇼핑을 매수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 GS홈쇼핑은 2012년 3·4분기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놓으며 주가가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랐다.



 하루 종일 탐방 기업의 엘리베이터만 타는 매니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펀드매니저 이모(45)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직원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운이 좋으면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불만,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최근 회사 상황을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들을 수 있다. 그는 “직원들이 지나치게 자신감에 차 있을 때는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실적과 주가가 이미 최고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11년 롯데쇼핑에 다녀왔을 때 이야기도 들려줬다. 당시 롯데쇼핑은 중국 마트와의 인수합병(M&A)으로 사세가 커지고, 국내 실적도 대폭 개선되면서 주가가 50만원까지 치솟았다. 현장에서 만난 직원들은 입이 마를 정도로 회사 자랑을 했다. 하지만 이 매니저는 자신감이 너무 지나쳐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봤다. “유통업은 내수 경기가 업황을 좌우하는데 당시 롯데쇼핑은 그에 대한 대비책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가 꺾이면서 이 회사 주가는 2012년 중반 30만원 아래로 내려갔다.



 회사에서 얻는 정보는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 박인희 매니저는 “해당 기업뿐 아니라 경쟁사도 방문하고 업종 전문가들과 만나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들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웅필 매니저는 여러 번의 기업 방문을 통해 회사 IR의 투명성을 확인한다. 실제 기업 탐방에서 확인한 모습과 그 후 회사가 변해 가는 모습을 비교하며 회사에서 말해 준 것들이 사실인지, 아니면 달콤한 포장에 그쳤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최 이사는 “과거 실적이 아무리 좋았더라도 회사에서 하는 말에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면 많은 돈을 투자하긴 어렵다”며 “거짓말하는 애인과 오래 사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기업 탐방을 하는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법칙이 하나 있다. 바로 ‘허름한 건물에서 주주 가치는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건물은 방만 경영의 상징일 수 있다. 안세윤 매니저는 “보여주기에 급급한 회사일수록 실속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박경륜 리서치본부장도 기업 탐방에 나서면 제일 먼저 본사 외관 상태부터 확인한다. 단순히 건물이 깔끔하면 플러스, 낡았으면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건 아니다. 박경륜 본부장은 “외관뿐 아니라 사무실 배치와 인테리어를 살핀다”며 “기업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외부에 보이려 노력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기업 탐방을 수없이 다니는 펀드매니저들도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특히 기업들의 해외법인 실적이 그렇다. 삼성운용 한상수 본부장은 “데이터 확인이 어려운 기업들의 해외공장이나 해외법인들의 실적은 일정 부분 평가절하해서 본다”고 말했다. 박인희 팀장도 “중소기업들의 해외사업 현황은 회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본사와 공장이 떨어져 있으면 설비 현황이나 가동률 같은 부분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 쉽지 않다. 회사의 실제 업황보다 주가의 움직임이 더 빠를 수 있다는 점도 기업 탐방의 한계다. 하이자산운용 박정원 펀드매니저는 “주가만 보면 이미 업황이 바닥을 확인하고 전환기로 접어들었는데 회사 담당자는 그런 상황을 한발 뒤늦게 아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박경륜 본부장은 “기업이 제공하는 성장 비전, 실적의 지속성, 현장에서 풍기는 인상, 투자자 담당 부서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종합적으로 살펴 기업의 진가를 찾아내는 게 펀드매니저의 주 임무”라며 “그런 면에서 기업 탐방은 매니저들이 할 수 있는 최후의 검증”이라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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