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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영혼 없는 SNS 새해 덕담은 No!

중앙일보 2014.01.02 00:28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지난해 12월 31일 밤 인터넷 검색 1위에 ‘새해 인사말 모음’이 올랐다. 무슨 재기 발랄한 말들이 있을까 싶어 클릭을 했다. “희망 차고 뜻깊은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사업도 번창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 웃음과 기쁨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지극히 평범한 말들에 되레 놀랐다. 하지만 댓글들이 이것들의 용도를 대신 말해줬다. “예의상 보내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이 귀찮은 이들이 그대로 따라하겠군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단체로 보내야 할 때 이렇게밖에 못하는 거죠.” 형식도 내용도 속된 말로 ‘영혼 없는’ 인사말이란 얘기였다. 글을 클릭하면 바로 상대에게 전송되는 기능까지 갖췄으니 꽤 설득력도 있었다.



 이를 보며 성의와 진정성을 떠나 트렌드에도 안 맞는 문구겠거니 했다. 연하장은커녕 문자메시지로도 새해 인사가 뜸한 연말연시를 지켜보면서다. 대신 카카오톡·페이스북·밴드로 통했다. 자연스럽게 글만이 아닌 사진이나 영상이 곁들여졌다. 복잡한 글자판 사이에서 찾아낸 단어가 새해 일어날 일들이라 일러주는 게임형, 예쁜 여자들이 봉 잡고 서있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새해 봉 많이 잡으세요’로 마무리하는 패러디형, 이모티콘의 표정과 행동이 메시지를 대신하는 일러스트형 등 ‘덕담의 멀티콘텐트화’라 할 만했다. 손 글씨 쓰는 연하장에 비하면 형식은 한없이 가벼워 보이나 더 새롭고 더 기발해 뻔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미덕이었다.



 그러면서 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덕담의 표현 역시 매체를 따라간다는 것. 주체와 어미가 바뀌었다. 상대에 대한 기원을 뜻하는 ‘~바랍니다’만이 아닌 ‘잘살자’ ‘행복해지자’ ‘복 받자’라는 청유형의 문장들이 덕담을 대신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말도 많이 등장했다. 덕담이란 본래 예를 갖춰 상대의 복을 빌어주자는 풍습인데, 위아래 없이 ‘친구’가 되는 SNS 세계에서 글이라는 게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 어정쩡함이 신선했다. 마치 지난해 막바지에 세상을 달군 말과도 비슷한 뉘앙스라고나 할까. ‘안녕들 하십니까’. 흔히 쓰는 인사말이었는데, 거기에 ‘들’이라는 복수형을 붙이면서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것처럼, 복 받을 사람이 우리 모두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우리의 2014년은 더 멋질 것’이고 ‘복은 받는 게 아니라 서로가 지어주는 것’이라는 말들이 별 뜻이 아닌데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지난해 SNS를 둘러싼 이슈가 유독 시끄러웠다. 독설의 장이 됐고, 국정원 댓글 소동의 진원지로 지목됐으며, 유언비어 확산의 근거지로 취급됐다. 그 엄청난 파급력을 인정받았지만 온기는 그만큼 사라져갔다. 새해를 맞으며 너와 내가 아닌, 우리와 모두를 얘기하는 SNS 새해 덕담이 기분 좋고 희망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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