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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 원숭이가 사는 법

중앙일보 2014.01.02 00:27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지난해는 참 암울했다. 도돌이표가 붙은 듯 끝날까지 암울이 되풀이됐다. 내게도 세상에도 씻김굿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원승. 지금은 피자집 사장이자 연극 배우지만, 더 전엔 개그맨으로 불렸다. 그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새해 희망가에 어울리는 사내다. 그를 불러 푸닥거리 한판으로 지난해를 씻어내고 푸른말띠 해를 희망으로 열어보련다.



 1993년 봄, 그를 만났다. 정확한 날은 잊었다. 장소도 희미하다. 하기야 무슨 상관이랴. 흔한 신파가 그렇듯이 그땐 인연인 줄 몰랐다. 난 연극 담당 기자, 그는 인기 개그맨. 처음엔 어색했다. 잘나가는 개그맨이 웃음이나 팔지 뭐 하러 정통 연극판에 뛰어들어? 삐딱한 눈길로 그를 살폈다. 허름한 청바지, 원숭이 닮은 외모, 어울리지 않는 진중함. 그땐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그 진중함은 그 후 20여 년 한결같았고,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야 말았다. 그래, 너 잘났다.



 지금은 피자집이 된 그의 대학로 3층집에서 우리는 부부끼리 고스톱도 치고, 아이들을 섞어 놀리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 그가 베푸는 쪽이었다. 당시 그는 인기가 많아서 밤무대를 몇 탕씩 뛰었는데 덕분에 대학로의 그 3층 빌딩을 살 수 있었다. 빌딩 지하는 소극장과 연습실, 1·2층은 커피숍, 3층이 사는 집이었는데, 소극장 운영으로 작품과 생활을 꾸려가려던 그의 계획이 문제였다. 공연은 어쩌다 잘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안 됐다. 빚이 늘어서 그랬는지, 애초 인연이 아니었는지 아내와도 헤어졌다.



 98년 서른아홉 그해에 그는 생의 절정을 맞는다. 이혼과 파산, 그리고 재기. 그때 그는 무척 힘들어했다. 연극을 접고 피자집을 차린 지 7개월. 그는 죽음을 결심했다고 한다. “돈을 빌려줬던 절친에게 건 전화 한 통. ‘빚 못 갚고 죽게 됐다. 미안해. 저승 가서 갚을게.’ 친구 왈. ‘장난치지 마, 끊어 임마.’ 그러곤 뚜-뚜-뚜-. 생사가 그렇게 갈렸다. 죽음의 팽팽한 긴장은 뚝 끊어졌다. 갑자기 우스워졌다. ‘자살’은 그렇게 ‘살자’로 뒤집혔다.”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다. 3개를 없앴다. 머리카락, 휴대전화, TV. 정말 죽기 살기, 피자집에만 매달렸다. 나는 그때 그가 왜 그렇게 돈독이 올랐는지 의아해했다. 그가 얼마나 버는지는 잘 모른다. 땅도 사고, 집도 사는 걸 보면 그래도 뭔가 남으려니 짐작할 뿐이다. 살 만해지자 그가 한 일은 근처 불우아동을 불러 한 달에 한 번 피자데이를 가진 것, 다시 일인극을 시작했는데 10년을 할 거라는 것, 운명의 아내 14살 연하 김경신을 만난 것, 두 아이를 더 낳은 것이다. 잃었던 꿈을 되찾아서일까. 많이 활기차고 즐거워 보였다.



 꿈은 확장의 속성이 있다. 운명은 그를 더 큰 꿈으로 잡아당겼다. 3년 전 남이섬에 2호 피자집을 차렸다. 남이섬주(主) 강우현과의 인연이 그를 이끌었다. 흙과 나무만으로 집을 짓고, 4000평 땅도 샀다. 짓고 나니 흙냄새가 너무 좋았다나. 아예 집을 옮겼다. 몸이 가니 모든 게 바뀌었다. 서울의 명문 사립에서 한 학년 12명의 시골 초등학교로 옮긴 아이들은 “매일 외우던 영어 단어 150개가 없다”며 좋아했다.



 치즈를 만들려던 4000평 땅은 두 달 전 연극마을 조성에 쾌척했다. “일본 도야마현 도가처럼 연극 마을을 만들면 어때?” 땅을 둘러본 오태석 선생 한마디가 결정타였다. 오 선생은 두 번째 결혼의 주례이자 스승이다. 가평군청과 중앙대학교, 한국연기예술학회, 정병국 의원이 동참했다. 똘똘 뭉쳐 연극마을을 가평의 명품 콘텐트로 만들겠다며 파이팅이 대단하다. 피자 판 돈으론 부족하니 기업에도 지원을 요청하자, 이런 계획을 진작 밝히고 그는 내게 홍보를 부탁했지만 어디 신문 지면이 맘대로 되나. 이 난을 빌려 그때의 미안함을 대신한다.



 그는 대체로 짠돌이인데 밉지 않다. 그렇게 아낀 돈이 한 판의 연극, 신명의 푸닥거리로 바뀐다는 사실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그의 친구인 게 자랑스럽다. 새해에도 응원하련다. 언제·어디까지 뻗어갈지 모를 그의 힘찬 푸닥거리를.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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