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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새해 아침 안녕들 하십니까?

중앙일보 2014.01.02 00:25 종합 31면 지면보기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서울대 물리학 교수
2014년 청마(靑馬)의 해가 시작되었지만 거리는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커녕 차분하기만 하다. 아마도 사상 최장기 철도파업, 1년 이상 끌고 있는 대선을 둘러싼 여야의 치졸한 정치싸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경제사정 등이 모두 겹쳐져 국민을 지치게 한 것 같다. 경쟁은 치열해지기만 하는데 살림은 점점 쪼들리고, 한 번 뒤처지면 회복할 수 없는 사회의 냉정함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점점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중에서 국민의 행복지수가 거의 최하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사람들은 지금의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미래의 희망이 보이면 기운을 차리곤 하는데, 요즘은 그러한 희망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문제다.



 지난해 말에 큰 화제가 되었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화두는 이러한 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일부 대자보의 부정확한 사실과 이에 근거한 성급한 결론 등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삶에 찌들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데 길들여져 타인의 어려움이나 사회적 이슈에 관심 갖거나 발언하기를 포기하는 현 세태의 문제점은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화두가 특히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이해인 수녀가 말씀한 것처럼 복수형 ‘들’이 들어감으로써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녕과 나라의 안녕도 같이 헤아려야겠다는 마음에 불을 붙여 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을 좀 더 배려하는 사회가 되어야겠다는 것을 이심전심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공동체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환경 탓이 크겠지만, 점점 타인을 이해하고 서로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려는 마음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익집단 간의 사소한 이해관계는 심각한 갈등으로 발전하기 일쑤이고, 사회 전체 공익을 위해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조정자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은 공허한 이념에 사로잡히거나 선거에서 득표의 유불리만 따지면서 갈등 조정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언을 해야 할 전문가집단과 언론까지 진영논리에 휩쓸려 들면서 객관성과 권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독특한 현상은 사회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고 따라서 사회적 분열을 앞장서 막아야 할 지도층이 오히려 분열의 대오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구(西歐)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소득층인 의사와 변호사는 자신들의 영역이 조금이라도 침범당할 듯하면 온갖 수단을 써서 방해한다. 그러니 주변 직종 종사자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대학입시를 통해 우리나라 중등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대학들은, 국가 전체의 공교육 정상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대학이 배치표의 상위권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입시요강을 짜고 있다. 또한 세파에 지친 일반 서민들의 가슴을 포근히 보듬어 줘야 할 종교가 오히려 갈등의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교사나 공무원의 기득권 지키기도 이제는 도(度)를 넘었고, 일부 귀족 노조나 공기업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이처럼 극심한 집단이기주의와 갈등에 시달리는 것은 압축성장의 한 대가일 것이다. 많은 집단이 몸집은 급격히 커졌지만 제도나 의식이 이에 뒤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휴대전화나 컴퓨터의 하드웨어는 그럴듯하게 만들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는 외국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소프트웨어가 많은 정보기술(IT) 제품의 핵심이듯이 의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처럼 문화를 바꾸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과거처럼 ‘빨리 하자’는 정신보다는 ‘제대로 하자’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다행히 희망의 조짐이 보이기는 한다. 극한 대결로 치닫던 철도파업도 큰 불상사 없이 일단락되었고, 새해 예산안은 해를 넘기기는 했지만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법안 통과가 어려워졌을지는 몰라도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구호가 과거처럼 정치적 선동으로 이어지기보다 이번에는 대부분 차분하게 타인에 대한 배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만큼 사회가 성숙돼 가고 있다는 징표일 것이다. 새해에는 이 같은 좋은 불씨들을 소중히 잘 살려 우리나라가 선진사회로 꾸준히 발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서울대 물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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