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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2014년, 말 달리는 지도자

중앙일보 2014.01.01 00:20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2014년 새해가 밝았다. 모든 해가 각별하지만 올해는 특별히 각별하다. 분단 69년 만에 드디어 북한 급변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어쩌면 2014년은 7500만 민족에게 운명의 해가 될지 모른다.



 상황이 터지면 한반도 미래를 주도해야 하는 세력은 한국이다. 미국도, 중국도, 유엔도 아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오늘 아침, 남한 지도자들은 특별한 각오를 새겨야 할 것이다.



 지도자는 여러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세상이 흔들릴 때는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용기가 중요할 것이다. 용기라는 산에 오르면 지략도, 효율도 쉽게 보인다. 반대로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산 밑에서 헤매면 길을 찾기 어렵다.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나. 화려한 학벌인가 두툼한 지식인가. 아니면 건장한 체구인가. 아니다. 가문이나 학벌이 변변치 못해도, 신체가 작아도 용기 있는 지도자는 많다. 그들을 용맹하게 만드는 건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이다.



 현대사에서 자유진영과 공산세력이 최초로 대결한 건 1948년 베를린이었다.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자 미국의 군 지휘관과 정치·외교 참모들은 1차적으로 미군 철수를 건의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마디로 묵살했다. “미국은 피하지 않는다.” 그러곤 11개월 동안 역사적인 공수작전을 전개했다.



 트루먼은 고등학교만 나온 농부 출신이다. 작은 체구에 촌스러운 스타일 때문에 ‘미주리 소인(小人)’으로 불렸다. 그런 소인이 소련의 협박을 꺾었다. 그는 집무실에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친필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항상 옳은 일을 하라.”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지방의 작은 대학을 나왔다. 1946년 9월 그는 할리우드 B급 배우였다.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노조 쟁의가 벌어졌다. 수천 명이 매일 피켓 시위를 벌였다. 통근버스는 이 앞을 지나가야 했다. 회사는 이렇게 주문했다. “돌이나 병이 날아들지 모르니 버스 바닥에 바싹 엎드려라.”



 스타도 엑스트라도 모두 엎드렸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이 곧게 서 있었다. 레이건이었다. 쟁의가 이어지면서 공산당원들은 레이건을 협박했다고 한다. “계속 쟁의를 반대하면 얼굴이 성치 못할 것이다.” 협박은 레이건을 더 강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는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됐고 이듬해 미국연기자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1981년 1월 레이건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런데 반년 만에 중대한 시험에 들었다. 항공관제사 1만3000여 명이 불법파업을 벌인 것이다. 레이건은 선언했다. “48시간 내에 복귀하라. 그러지 않으면 해고될 것이며 해고된 이는 평생 공무원직에 취업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레이건은 1만1300여 명을 파직했다.



 용기에는 비용이 따른다. 항공관제가 정상화되는 데에는 수년이 걸렸다. 비용이 아무리 커도 레이건은 원칙을 내주지 않았다. 그런 뚝심과 용기가 나중에는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렸다. 레이건 덕분에 인류는 훨씬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지도자의 용기가 부족하면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다. 2008년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불법·폭력 시위대가 경찰관을 납치해 옷을 벗기고 벽돌로 때렸다. 신문사 현관을 부수고 버스에 돌을 던졌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제대로 맞서질 못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공격 때도 그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민간인 마을이 불타는데도 단호히 응징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용기를 냈으면 북한 정권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용기란 작은 걱정보다 큰 신념을 택하는 것이다. 일이 터지면 항상 작은 걱정이나 투정이 있게 마련이다. 철도 불법파업도 마찬가지였다. 파업기금이 수십억원이라는데 노조가 쉽게 굴복하겠나, 잡지도 못할 걸 왜 민주노총에 들어가서 시끄럽게 만드나, 수서발 KTX 자회사를 꼭 만들어야 하나···. 트루먼이나 레이건에게 이런 걱정은 고민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불법은 항복했고 기차는 다시 달린다.



 올해는 말의 해다. 말은 기본적으로 달리는 존재다. 어쩌면 지도자도 본질적으로 달리는 존재일 것이다. 작은 걱정일랑 뒤로하고 법과 원칙이라는 큰 길을 달리는 사람···그런 이가 용기 있는 지도자일 것이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이 땅의 선구자들은 만주벌판에서 말을 달렸다. 올해엔 한반도에서 큰 일이 터질지 모른다. 아마 터지면 철도파업 수십 배가 될 것이다. 남한 지도자들은 용기라는 장갑을 끼고 말의 고삐를 움켜쥐어야 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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