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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결자해지하게 외교 압력 가해야 … 정치와 경제·문화는 분리를

중앙선데이 2013.12.29 00:05 355호 10면 지면보기
일본어에서 ‘공기를 읽어라(空氣を讀め)’라는 말은 ‘분위기를 파악하라’는 뜻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읽고 타인에게 폐가 되는 행동은 삼가라는 배려의 뜻을 담은 표현이다. 그 일본이 지금 주변국의 공기를 읽지 못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행을 둘러싼 일본, 나아가 동북아의 공기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한·일 모두에서 ‘일본통’으로 통하는 신각수(58·사진) 전 주일대사에게 물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인터뷰

 지난달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신 대사는 외교부 제1, 2차관을 지낸 후 2011년 6월부터 2년간 주일대사로 일했다.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격 독도 방문으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닫던 시기 주일대사를 지냈다. 그는 27일 “한국 정부도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 물밑에서 다각도로 노력해 왔는데, 이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라며 “외교의 근간인 신뢰를 무너뜨린 처사로 심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지금 참배를 강행했을까.
 “타이밍의 문제다. 지금은 한·일뿐 아니라 중·일관계도 상당히 안 좋은 상황이다. 집권 초기부터 ‘(2006년 총리 시절) 야스쿠니를 공식 참배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던 그로선 지금 (참배를) 해놓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아베 정권에는 경제 회복과 우파 정책 실현이 두 개의 축이다. 취임 1년을 되돌아보면 이 두 축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전략을 썼다. 지금은 우파 정책 쪽으로 기운 상황이고, 그 의도는 내부 보수 세력 결집이다.”

 -대내관계를 신경 쓰다 대외관계를 그르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70%대였던 지지율이 40%대로 추락한 아베 총리로선 우파를 결집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베 총리 개인의 소신도 작용했을 터다. 그러나 개인 소신이건 국내 정치적 고려이건 대외정책적으론 악수(惡手)인 게 분명하다. 일본은 외교에서마저 ‘갈라파고스 현상(세계 시장의 변화 흐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고집해 세계 시장에서 외면받았다는 뜻)’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러·유럽연합(EU)까지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미국이 ‘실망스럽다’고 반응했다.
 “참배 당일 주일 미국대사관을 통한 성명 발표는 (국무부가 직접 한 것보다) 톤다운의 측면은 있으나 미 정부가 ‘당혹스럽다’는 공식 입장을 표한 것이다. 지난 10월 미·일 2+2 회담(외교·국방장관 회담) 때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야스쿠니 대신 지도리가후치(千鳥ヶ淵·무명용사 전몰자 묘역)를 선택한 함의를 읽었어야 했다. 최근 조 바이든 부통령까지 방일했던 미국으로선 이중 펀치를 맞았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당시엔 미국이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엔 중·일관계가 나쁘다고는 해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도 지금 같지 않았다. 지금은 동북아의 세력 전환기다. 판이 바뀌고 있다.”

 -아베 총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과신해 ‘오버’했다는 분석은 어떻게 보나.
 “미국이 여러 전략적 고려 때문에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지지했고, 미·일 간 묵은 현안인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해결 기미가 보이는 등 최근 미·일관계가 상당히 돈독해지긴 했고, 이를 아베 총리가 오산했을 가능성은 있다. 아베 총리가 참배 후 ‘미국과는 오해를 풀어가겠다’고 했지만 그건 아베 총리 개인의 생각이다. 이미 본 손해는 되돌리기 어렵다.”

 -한·일 정상회담 전망은.
 “우리도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정상회담을 하려는 노력을 막후에서 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간 정상회담을 할 수 없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참배를 해버렸다. 신뢰는 무너졌다. 믿을 수 없는 상대와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공은 일본에 넘어갔다. 과거사 관련 신뢰 회복을 위한 적극적이고 성의 있는 조치가 일본 측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경색 국면의 지속은 불가피하다. 꽁꽁 언 한·일관계를 녹일 수 있는 소금이 아니라 얼음을 더 들이부었다.”

 -한국 정부는 뭘 해야 하나.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본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할 수 있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동시에 정경(정치와 경제)의 분리, 정민(정부와 민간)의 분리, 정문(정치와 문화)의 분리를 통해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사안엔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양국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을 비판하되 일본 국민까지 완전히 등돌리지는 않게 하는 복합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도덕적 우위를 확보했다. 감정적으로 과잉 대응하면 우리의 우위를 스스로 까먹는 셈이다. 아베 총리가 무리수를 둔 지금, 우리에겐 차분한 대응이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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