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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으면 어때요, 남들보다 더 많이 걸으면 되죠”

중앙선데이 2013.12.29 00:15 355호 12면 지면보기
송봉근 기자
25일 오후 1시 창원시의 복합쇼핑몰 앞.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작은 키의 여성이 뒤뚱거리듯 걸어왔다. 그러고는 큰 눈으로 올려다 보며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지영입니다.”

『불편하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펴낸 이지영씨


왜소증 장애인인 이지영(29·사진)씨는 최근 『불편하지만 불가능은 아니다』를 펴냈다. ‘키 110㎝ 삼성테크윈 인사팀 이지영이 스펙보다 핸디캡이 큰 그대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좋은 스펙은커녕 장애를 가진 그가 다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궁금증이 생겼다. 스스로를 “한번 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여자”라고 부르는 이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도 대학 대신 기술 배우라고 타일러
사실 그는 이미 유명한 강연자다. 지난해 2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삼성 임직원 강연자로 뽑혀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여러 TV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대학·기업에서 강연했다. 지금이야 꿈과 도전을 말할 수 있지만 불편함을 넘어서는 벽은 항상 그 앞에 커다랗게 놓여 있었다.

뼈와 뼈 사이에 문제가 있는 ‘가성연골무형성증’이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늘 작았다. 척추와 다리가 휘어 뒤뚱거리며 걷는 것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중학교 교복은 조끼와 치마를 붙여 원피스처럼 만들어 입었다. 고3 수험생 땐 직업훈련학교를 알아보라는 조언을 받았고, 대학(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졸업을 앞두고 1년 반 동안 60곳에 이력서를 낼 땐 “그 몸으로 일할 수 있겠어요”라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이 특별했나.
“부모님도 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지 몰랐다. 두 살이 됐는데도 걷지를 못해 병원에 가서야 알았다. ‘왜 나만 이렇게 작으냐’고 물으면 엄마는 ‘밥을 적게 먹어서 그렇다’고 답해줬다.”

-장애를 스스로 느끼지는 못했을 것 같다.
“어려서 부모님과 한 방에서 같이 잤는데 자기 전에 부목을 다리에 대주셨다. 3~4개월 정도 매일 이렇게 했는데, 부모님이 늘 정성스레 해주시니 불편해도 싫다는 생각을 못했다. 어린 마음에 이렇게 하면 휜 다리가 곧아지겠단 기대도 했던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간절히 바랐지만 내 다리는 더 휘어갔다. 하지만 굽은 다리로 천천히, 남들보다 더 많이걸으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천천히 오래 걸어 그는 다른 이들처럼 대학을 가고 어학연수도 가고 취업도 했다. 물론 그를 홀로 타지에 보내야 하는 가족들의 걱정과 반대가 이어졌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지 않겠느냐면서 엄마는 기술을 배워보자고 했다. 진로를 놓고 길고 긴 다툼 끝에 간신히 허락을 얻었다. 그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등록금 접수 마지막 날에야 은행에 가시더니 ‘등록금 다 냈으니 이제는 못 무른다’고 하셨다. 현관에 서서 그 얘기를 하시던 엄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선 장면이 지금도 기억난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과대표를 두 학기 동안 했다. 한 학년에 40~50명 정도였는데, 대표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때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도 받고 힘도 얻었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남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학교 생활이었다. 2005년엔 어학연수도 떠났다.

-외국 생활은 특히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한국에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돼 답답했다.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몸이 불편한 아이가 혼자 해외로 간다 하니 걱정을 많이 하셨다. 반대도 심했다. 내가 짐을 싸면 엄마는 푸는 과정이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결국 엄마가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고, 9개월 정도 호주에 있었다. 기대했던 이상으로 호주에선 사람들이 ‘장애인 이지영’이 아닌 ‘인간 이지영’으로 대해줬다.”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감도 얻고 두려울 것도 없었다. 장애가 있어도 나의 진가를 봐 주는 기업이 있을 줄 알았다. 어느 곳에 취업하든 열심히 일하는 신입사원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서류를 통과해서 막상 면접에 가면 면접관들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거나, 아예 시선을 피해버렸다.

-취업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직무를 가리지 않고 갈 수 있는 회사란 회사는 다 썼다. 2007년엔 장애인 채용에 대해 모두 무지했다. 관련 기관에서도 제대로 된 상담을 받을 수 없었다. 왜소증은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가 심해 기업들이 꺼린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 기관에선 내 이력서는 보지도 않고 ‘왜소증 장애인은 텔레마케터로 많이 일한다’며 권하기도 했다. 그때 우울증이 심해져서 잠도 못 자고 밖에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결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했다.
“면접장에서 모욕을 받을수록 오히려 오기가 생겼고, 장애를 마주할 수 있었다. 3월에 삼성에 원서를 넣고 5월에 면접을 봤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장애는 불가능이 아닌 불편함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불편한 게 많은 건 사실이지만 생각을 자꾸 바꾸니까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다. 이런 점을 좋게 봐 준 것 같다.”

늘 바라고 꿈꾸는 건 평범한 삶이지만 
장애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릴 것들을 힘들게 얻어온 그에겐 또 다른 벽이 있다.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한 청춘들에게 누구나 묻는 질문, 연애와 결혼이다. 직장생활 7년째라는 그 역시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까. 혹시나 좋아하는 이성에게 마음을 표현한 적은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장애인은 여성으로 보지 않고 무성(無性)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마음에 들어도 표현하거나 고백하지 않는다. 다가서기 전에 ‘그 사람이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포기하는 게 익숙해졌다. 26~27살 때는 어른들이 ‘지영이는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어봐주길 바랐다. 이성 친구에 대해 언급 자체를 안 하니 나는 아예 결혼을 못 할 것이라 단정 짓는 것 같아 속상했다. 늘 바라고 꿈꾸는 건 평범한 삶이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그의 책 제목처럼 불편함은 도처에 있다. 사소하게는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진열대가 높은 것도 불편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어쩔 수 없는 신체적 불편함쯤이야 넘기면 그만이다. 그는 “이런 것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취업하기 전에도 ‘장애인은 일을 못할 것이다’란 생각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과 뿌리 박힌 편견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만든다. 이게 가장 큰 불편함이다.”

-불편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장애인을 많이 보고 같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생겨나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장애를 많이 접하게 되면, 서로를 잘 이해해서 이를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특성으로 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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