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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잃은 봉제업에서 꽃핀 명품 핸드백

중앙선데이 2013.12.29 00:48 355호 22면 지면보기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앞으로 토종 브랜드 ‘0914’를 내세워 세계 명품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용철 기자
“경쟁력을 잃은 봉제업에 저희의 기획·개발력과 디자인 능력을 융합시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게 주효했습니다. 특이한 사례다 보니 동국대·건국대·숙명여대 등의 MBA 과정에서 저희 회사를 사례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16개 글로벌 명품업체에 핸드백 공급하는 박은관 ㈜시몬느 회장

박 회장은 “국내에서는 더 이상 명품 핸드백을 증산할 길이 없어 1991년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인도네시아에 순차적으로 진출했다”며 “공정 표준화로 해외에서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생산 물량 전량을 수출하는 이 회사는 87년 미국 명품 시장에 이어 99년 유럽 명품 시장에도 진출했다. 국제적인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가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럭셔리 마켓’의 집계를 토대로 이 회사가 공급하는 물량을 세계 명품 핸드백 시장 점유율로 따져보면 9%에 달한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현재 30%에 육박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럽의 유명 명품 브랜드에도 핸드백을 납품하지만 해당 업체와의 계약 조항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지난해엔 서울 가로수길에 세계 초유의 핸드백 박물관 ‘백스테이지’를 개관했다. 지난 5년간 무려 연간 25~30%씩 성장해온 시몬느의 핸드백 제품은 납품가격의 평균 8배에 달하는 소매 가격으로 팔린다. 이 회사의 올 예상 매출액 6억4000만 달러(약 6753억원)를 판매가격으로 환산해보면 국내 명품 핸드백 시장 규모(1조~1조5000억원)의 약 5배에 달하는 수준이 된다.

ODM 생산이 공급 물량의 60%
시몬느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에 핸드백을 납품하지만 공급 물량의 약 60%를 제조자개발생산(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으로 만든다. ODM이란 제조는 물론 핸드백 소재의 개발, 품질 관리를 담당하고 고객사의 핸드백 디자인 개발에도 참여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40%는 주문받은 사양대로 생산만 하는 OEM 방식이다.

-디자인까지 참여하면 고객사는 뭘 하나.
“고객사는 브랜드의 포지셔닝과 정체성 관리, 스토리·판타지 만들기, 유통, 마케팅 및 광고 등을 맡는다. 고객사와 서로 잘하는 일을 나누어 하는 것이다. 이렇듯 소재 개발에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영역이 결합되다 보니 시몬느는 단순 핸드백 공장이 아니라 풀 서비스 회사로 불리기도 한다.”

-시몬느 경쟁력의 요체는 뭔가.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시장 경쟁력은 뛰어나다’고들 한다. 시몬느와 거래하면 가격은 홍콩 등지의 경쟁사보다는 비싸지만 철저한 납기 준수 등으로 인해 비용이 절감돼 고객사에 상대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소재 개발, 디자인, 품질관리 면에서 우리의 소프트웨어 능력이 이들에게 유용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로라하는 16개 명품 브랜드에서 동시에 시몬느 제품을 쓰는데 베끼기 등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회사 내부에 방화벽이 잘 쳐져 있어 독점성과 보안성에 문제가 없다. 명품 브랜드들이 자기 브랜드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이익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다양한 바이어들이 찾아오는 시몬느 내에 상설 쇼룸을 아예 만들지 않는 데다 고객사와의 상담이 끝나면 관련 자료를 모두 밀봉해 따로 보관하도록 조치한다.”

박 회장은 핸드백 OEM 업체인 ㈜청산의 수출부장으로 있다 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미국 명품 DKNY 제품을 그대로 본떠 만든 핸드백 6개를 들고 미국으로 향했다. 이탈리아산 소재를 사용해 국내 최고의 장인들이 제작한 것이었다. 이탈리아제보다 30% 싸게 납품하겠다고 제의했다. “진짜 한국에서 만들었느냐”며 놀라워하던 바이어는 다음 날 “‘메이드 인 코리아’라서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마케팅 부서에서 제동을 건 탓이었다. 다시 바이어를 찾은 박 회장은 “3대째 핸드백을 만든다는 120년 역사의 이탈리아 업체도 처음엔 나처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5~10년 후면 유럽에서 소요 물량을 충당하기 어려워질 거고 아시아도 10~20년 후면 생산기지가 아니라 명품 시장이 될 테니 이 기회에 나와 손잡고 교두보를 확보하라”고 설득했다. 작게 시작하면 실패해도 피차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설득한 끝에 120개의 주문을 받아온 것이 해외 시장 진출의 시작이 됐다.

유럽 시장에 진출할 땐 거센 내부 반대에 부닥친 명품 업체 사장이 직원들 앞에서 이탈리아제 핸드백과 시몬느 제품을 5개씩 섞어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한국산은 안 된다고 했던 직원들이 이탈리아 명품이라며 고른 5개중 에 시몬느 제품이 3개나 포함됐다고 한다.

-명품의 조건을 든다면.
“고품질, 디자인의 독창성, 높은 브랜드 인지도 외에 역사적·문화적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 그런 만큼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써 광고를 쏟아붓는다고 단기간에 명품이 될 순 없다.”

-명품 브랜드에 도전한 이유는.
“중저가 제품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가 명품 제품을 겨냥하게 됐다.”

-해외 진출 계기는.
“고급 핸드백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지만 서울 근교에서는 공장을 지을 땅도, 인력도 구하기가 만만치 않아 해외 진출을 결심했다. 처음엔 ‘메이드 인 차이나’론 절대 안 된다는 고객사를 어렵사리 설득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했는데 공정을 표준화해 해외 공장서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7개 공장에서 2만8000여 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핸드백만 1조원어치 수출이 목표”
시몬느는 지난해 자체 브랜드 ‘0914’를 출시했다. 84년 9월 14일이라는 날짜에서 유래한 작명이다. 교제를 하다가 미국 유학을 떠났던 부인과 3년 만에 재회한 날을 따서 만든 것이다. 이날의 인연을 계기로 이듬해 5월에 처음 만난 지 11년 만에 결혼에 이르게 됐다. 당신, 이데아, 이상형이라는 뜻의 시몬느라는 상호도 결혼 전부터 그가 부인을 부르던 애칭에서 따온 것이다.

-‘0914’의 브랜드 정체성은.
“한국에 주민등록을 둔 한국적인 핸드백 브랜드다.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지닌 제대로 만든 핸드백으로 승부하고 싶다. 최소 15년은 걸릴 거다. 아마 제 생애 중엔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을 거다.”

-향후 경영 계획은.
“베트남 새 공장을 발판으로 내년 매출액 8억1000만 달러, 2015년 10억 달러 달성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핸드백만 1조원어치를 수출하는 거다. 2015년 9월 14일엔 ‘0914’의 플래그십 매장(해당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을 서울에 개장하고 ‘0914’의 본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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