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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뼈대에 줄기세포 발라 키우면, 새 신장 쑥쑥?

중앙선데이 2013.12.29 01:19 355호 25면 지면보기
1. 3D 프린터는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물체를 입체로 제작하는 기술이다. 2. 신장은 동맥(적), 정맥(청), 배뇨관(황)이 실처럼 엮여 있는 초정밀 장기이다. b>3. 신체의 정교한 혈관. 이처럼 정밀한 혈관을 만드는 게 3D 프린팅 인공장기의 난제다. [사진 위키피디아]
아파트 위층에 사는 아이 엄마 얼굴이 어두워졌다. 세 살 아들과 함께 늘 밝게 인사하던 분이었다. 이유인즉 남편이 형에게 신장을 떼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가족 중 유일한 이식 적합자이고, 아직은 건강한 남편이지만 수술이 잘될지, 남은 하나의 신장으로도 잘 살아갈지도 걱정이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 다시 웃음을 찾았다. 이렇게 식구 중 장기를 떼어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정말 행운이다.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16> 3D 인체 장기 프린팅

국내 신장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2013년 9월 현재 무려 1만3000명에 이르고 그것도 5년 이상 긴 시간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건강 백세시대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늙고 고장 난 장기를 바꾸려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심각한 장기의 부족으로 불법 장기거래, 심지어는 끔찍한 장기적출 살인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적합 장기가 안 나오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구세주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3D 프린터로 프린팅하듯 장기를 입체 제작한다는 소식이다. 신장을 입체 프린터로 만든다? 가능성이 희박한 아이디어 아닌가? 아니면 5년만 참고 기다리면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신장으로 이식 대기자들이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영화 ‘제5원소’의 장기 재생기술과 흡사
1997년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SF영화 ‘제5원소’에서는 2300년의 미래세계에서 상상한 장기 재생기술을 선보였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인체 세포를 대량 배양한 다음, 골격을 만드는 물질과 섞는다. 그리고 얇게 자른 식빵을 하나씩 하나씩 붙여 나가듯이 심장, 간 그리고 뇌까지 만들어 인체의 모양을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섞여 있는 세포를 활성화시키자 드디어 인간이 완성됐다. 사실 이건 완전히 상상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이 장면은 2013년 미 첨단과학학회(AAAS)에 발표된 3D 프린터로 장기를 입체제작하는 최신 기술과 정확히 일치한다. 16년 전 감독의 상상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3D 프린터는 공장에서 모형이나 시제품을 만들려고 시작된 기술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PC프린터는 2D, 즉 2차원 프린터이다. 평면종이에 극히 얇은 두께로 잉크가 쌓이는 것이다. 3D프린터의 원리는 잉크가 뿜어지며 반복적으로 굳어 차곡차곡 쌓이면서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평면의 글자가 아닌 손에 쥘 수 있는 입체적 물건이 생기는 것이다(사진 1).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세계의 신기술로 3D 프린팅 기술을 선정했다. 이제 모형이나 시제품이 아닌 실제 생산용으로도 3D 프린터가 현장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딱딱한 물건과는 달리 인간의 장기는 살아 있는 세포 덩어리다. 3D 인간장기 프린팅,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면, 무엇이 핵심 기술일까? 국내에서 지난 10년간 총 2만6000건의 장기 이식 중 절반 이상인 51%를 차지한 신장을 통해 확인해보자.

신장이 망가지면 대처 방법은 현재 다섯 가지가 있다. ①인공 신장 ②다른 사람의 신장 이식 ③망가진 부분에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치료 ④돼지 신장 이식 ⑤세포가 들어간 신장을 외부에서 제작, 이식하는 방법이다. 각 방법의 현 주소는 이렇다.

신장은 인체 핏속에 있는 노폐물을 걸러내는 장기다(사진 2). 신장이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면 피를 인체 밖으로 빼내 얇은 막을 통해 노폐물을 거르는 소위 ‘신장 투석’을 한다. 이 투석장치가 첫 번째 방법인 ‘기계적인 인공신장’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3번, 한 번에 3시간씩 누워 피가 기계 속을 돌아가는 모습을 봐야 한다. 하지만 인공신장은 그저 기계일 뿐이어서 투석환자의 12~15%가 1년 내에 사망한다. 이런 기기보다 인체 신장 내부는 훨씬 더 복잡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두 번째 방법인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는 것이다. 적합한 장기만 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방법은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윗집 아이 엄마’의 경우처럼 웃음을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식 성공률 90%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려는 사람보다 받으려고 줄을 선 사람이 훨씬 많다. 극심한 수요·공급의 불균형이다. 2012년 한국 영화 ‘공모자들’은 장기밀매 살인이라는 등골이 서늘한,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만큼 실제 이식할 장기가 절박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 방법은 장기를 교체하지 않고 줄기세포로 수리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신장의 고장 난 부분에 새로운 줄기세포를 심었을 때 재생되는 비율이 아직 20%밖에 안 된다. 도시 사람이 귀농을 잘하려면 시골 사람으로 빨리 변해야 옆집과 막걸리도 나누며 제대로 어울려 살 수 있다. 뿌려진 줄기세포도 귀농하려는 도시인처럼 해당 장기세포로 변해야 하는데 아직 변환기술이 부족하다.

네 번째는 인간과 가장 흡사한 장기구조를 가진 돼지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면역거부 유전자를 없앤 미니 돼지를 키워 장기를 원숭이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것을 2012년 6월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이 발표했다. 돼지를 이용한 방법은 비교적 쉽게, 신장을 다량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인간 장기가 아니라 생기는 면역거부 문제,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숨어 있는 돼지 바이러스 등이 아직 어려운 부분이다.

3D 장기 프린팅이 이식 대기자에게 희망을 주는 기술이기를. 일러스트 박정주
3D 장기 프린팅은 다섯 번째 방법, 즉 외부에서 키운 세포로 장기를 만드는 방법의 하나다. 인공 피부는 가장 간단한 3D 기술로 만들어진 입체 장기다. 콜라겐과 피부 세포를 섞어 손톱 두께로 만들면 된다. 인공신장 같은 복잡한 기관을 만드는 것에 비하면 쉽다. 신장이나 간·심장은 단순한 벽돌도 아니고 크기가 큰 입체 장기인 데다 안에는 많은 골격이 있다. 골격이란 건물의 철근·철망 같은 물질이며 철망 사이나 철근에 세포가 붙어 살고 있는 격이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인공신장을 만들려면 골격에 줄기세포를 붙여야 한다. 골격은 분해가 잘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도 있고 콜라겐·젤라틴 같은 생체물질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2013년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병실에만 있던 두 살배기 아기에게 생후 처음 바깥 공기를 쐬게 할 수 있었다. 날 때부터 기관지가 없어 중환자실에만 머물던 아이에게 맞춤형 인공 기관지를 만들고 여기에 줄기세포를 키워 붙여 이식했기 때문이다. 기관지는 원통형 골격의 겉에만 세포가 달라붙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다. 대부분의 장기는 훨씬 더 복잡한 내골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최고의 방법은 골격을 실험실에서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신장을 사체에서 구해 여기에 붙은 세포를 모두 씻어낸다. ‘핵심 골격’만 남은 신장에 적합한 줄기세포를 풀 칠하듯 바르고 이 세포들이 신장 세포가 되도록 키운다. 생체로만 이루어진 이 장기는 완벽하다. 골격은 원래 장기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세포는 자기 줄기세포를 사용하니 면역거부 반응도 없다. 실제로 2013년 저명 학술지 ‘네이처메디신(Nature Medicine)’에는 쥐의 신장에서 세포를 씻어내고 여기에 줄기세포를 붙여 키우자 오줌을 걸러내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효율이 20%밖에 안 됐다. 100% 완전한 신장이 되려면, 구석구석에 세포가 잘 들어가 그곳에 맞는 각각 다른 종류의 세포로 완벽하게 바뀌게 해야 한다.

판도라 상자 여는 일? 신의 영역 침범?
그러면 3D 장기 프린팅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핵심기술은 무엇일까? 혈관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혈관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혈관이 없으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1㎝ 이하 크기의 세포는 모두 죽는다. 현재 가능한 방법은 실처럼 생긴 말랑말랑한 관에 혈관 세포를 섞어 배양하는 것이다. 자라면서 ‘스스로 알아서’ 혈관을 만드는 혈관 세포 고유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실제는 고난도 기술로 이것이 3D 장기에서 해결해야 할 아킬레스건이다(사진 3). 이런 문제가 언제 해결될까? 그래서 장기이식 대기자의 길고 긴 명단에 올리지 않고 필요할 때 병원에서 장기이식을 금방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본기술이 완성되고 실제 병원에서 쓰이려면 10~15년이 소요된다고 예측한다. 긴 시간이지만 최근의 발전 속도는 예측을 뛰어넘는다. 시간이 당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는 없을까?

최근 3D 프린팅 기술로 권총이 만들어졌다. 실제 발사도 된다. 놀란 미국 정부가 권총을 만드는 컴퓨터 설계 자료의 공유를 금지시켰다. 이처럼 과학의 발전은 때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다. 권총 같은 물건보다도 살아 있는 인간의 장기를 찍어낼 수 있다는 것에 실은 두려운 생각이 앞선다. 1997년 SF 영화 ‘아일랜드’에는 복제인간을 만들고 장기를 적출해 소포로 배송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공모자’만큼이나 섬뜩한 내용이다. 사람이 계속 장기를 바꾼다면 이론적으로 오래 살 수 있다. 물론 뇌 기능이 문제이지만 그것도 배양 가능하다는 내용의 논문이 2013년 8월 ‘네이처’지에 발표됐다.

4. 3D 프린터로 만든 플라스틱 인체모형. 장기 프린팅 기술이 판도라의 상자일까?
도대체 인간은 얼마를 더 살고 싶은 것일까? 술을 진탕 퍼먹어 고장 난 간을 하루 만에 바꿀 수 있다면, 또는 마약에 녹은 뇌의 일부를 수리할 수 있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이런 식으로 장기를 교체하면서 영생한다면 종교도 변할까? 우리는 혹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신의 영역에 한 발도 아닌 두 발을 모두 들여놓은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사진 4). 과학은 늘 양날의 칼이다. 3D 장기 프린팅 기술도 줄기세포만큼 파괴력이 있는 기술임에 틀림없다. 3D 장기 기술이 영화 ‘공모자’나 ‘아일랜드’가 아닌 위층 아이 엄마의 웃음을 찾아주는 따뜻한 기술에만 머무른다면 더없이 좋겠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www.bio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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