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갑수 칼럼] 멜랑콜리한 느낌이 속살을 파고드는 듯

중앙선데이 2013.12.29 01:28 355호 27면 지면보기
소련 국영 레이블 멜로디야에서 나온 다닐 샤프란 음반. 샤프란의 LP는 아직도 고가에 거래된다.
2007년 4월, 80세의 로스트로포비치가 세상을 떠났을 때 참 대단했다. 그의 부음은 음악계만이 아닌 전 세계적 뉴스여서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극진한 조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카잘스 시대가 지나고 지난 30년 동안의 첼로 분야는 요요마와 더불어 로스트로포비치의 시대로 양분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특히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인권의 수호자’로서 활동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평가가 갈리지만 지휘자로서도 많은 음반을 남겼다.

[詩人의 음악 읽기]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

1997년 2월, 소련의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이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어디서도 보도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실은 그의 기일을 알기 위해 ‘음악사 대도감’이라는 자료를 뒤졌는데 딱 석 줄뿐이었다. ‘… 그의 첼로는 예풍은 약간 작지만, 성실하고 파고드는 자세가 때로 엄청나게 큰 스케일을 낳게 하기도 한다’라고. ‘예풍이 작다’니 무슨 소리?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뜻일까? 정말 뚱딴지 같은 평가지만 그런 언급과 언급의 양에서 새삼 샤프란이 받아온 평가가 느껴졌다. 쓸쓸하기도, 심지어 무섭기도.

한 사람의 인물평이 통념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추적하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닐 샤프란에 대한 평가는 아주 일찍이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의 ‘음악수첩’ 때문에 굳어져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리히터가 워낙 신망을 받는 사람이기도 한데, 『리흐테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책에서 그는 샤프란에 대해 지독하게 야멸찬 평을 남긴다. 샤프란은 매혹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고음에만 집착한다는 것. 에고가 지나치고 신경질적이라는 것. 그래서 더 이상 그와는 함께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것. 리히터의 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샤프란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되었을까.

1950년대, 출발기는 화려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체코 프라하에서 각각 열린 동구권 최대 음악 콩쿠르에서 샤프란과 로스트로포비치는 번번이 공동 우승자였다. 이후 로스트로포비치는 잘 알려진 대로 서방권을 주무대로 전 세계를 휩쓸었던 반면 다닐 샤프란은 오직 소련의 연주가일 뿐이었다. 이럴 때 생겨나는 것이 환상적 열정인 것. 음악 애호가들에게 샤프란은 비밀병기 같은 존재였다. 정말로 입수하기 힘들었던 그의 음반을 소장하게 되면 으쓱해하며 모여서 들었는데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다. 로스트로포비치 특유의 강인하고 스케일 크고 직선적인 연주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샤프란은 노래하듯이 첼로의 현을 울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차분하고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 ‘첼로의 황태자’ 소리를 듣던 피에르 푸르니에가 연상되곤 했다. 그가 했던 발언이 남겨져 있다. “나는 저속하고 경박한 음악을 혐오합니다.”

다닐 샤프란이 묻혀진 존재가 된 것은 활동 영역이 소련과 동구에 그쳤던 것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에서 기인한 면도 많은 듯하다. 고집불통, 극단적으로 내성적인 성격, 주위 사람들에 대한 권위적 처신, 다른 음악가를 비난하는 태도…. 언제나 느낀다. 왜 예술가, 작가, 연예인이 인간성까지 좋아야 할까. 성격이 나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면 그만큼 자기만의 개성을 창출할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대중은 됨됨이가 나쁘다고 알려지면 그의 작품까지 함께 싫어하는 속성이 있다.

이른바 ‘전설의 음악가’의 프로토타입처럼 되어버렸지만 이제 샤프란의 연주를 찾아 듣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이너 레이블 덕택이다. 엄청 싼 가격에 신보를 출시하는 것으로 낙소스 음반사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면 60~70년대 묻혀져버린 명연을 발굴해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출시하는 네덜란드 레이블이 있다. 도대체 어떤 초등학생이 작명을 했는지. ‘멋진 음반사’ 혹은 ‘훌륭한 음반사’쯤으로 번역되는 ‘브릴리언트 클래식스’가 다닐 샤프란 에디션(작은 사진)을 펴냈다. 그의 LP를 소장하지 못하면 컬렉터 축에 끼지도 못한다고 했던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이며(이상하게 1번 곡이 누락됐다), 샤프란이 가장 사랑했다는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등등 주요 곡이 두루 담긴 7장 선집이다. 재킷 인쇄조차 조악한 염가 전문 마이너 레이블에서 발행했지만, 다닐 샤프란이다. 구름처럼 청중을 몰고다니는 로스트로포비치와는 대조적인 생애를 살다 갔고 그 인물평도 형편없었지만 열렬히 그를 사랑하고 숭배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있다. 아름답고 기품이 있다는 것. 더불어 멜랑콜리한 정서가 속살을 파고드는 연주라는 것.

당연히 내 음반 라이브러리에는 로스트로포비치와 요요마의 연주집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밤 깊은 시간에 찾아 듣게 되는 것은 몇 장 되지도 않는 다닐 샤프란의 음반이다. 대중의 시야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그의 만년은 어땠을까. 쓸쓸하게 우두커니 테라스 밖 풍경을 내다보는 동네 노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