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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내버려 둬라

중앙선데이 2013.12.29 01:50 355호 30면 지면보기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 서부에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전에 이미 사진이나 영상으로 많이 보았지만 직접 가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뜨거운 지하수를 하늘 높이 내뿜는 간헐천, 에메랄드빛·보라색·초록·노랑 등 갖가지 빛깔로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는 온천호수,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산과 계곡, 악마의 목구멍처럼 엄청난 물줄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폭포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어디 그뿐이랴. 곳곳에서 만나는 야생동물도 경이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해 전혀 경계심을 품지 않은 채 차창 가까이 다가오는 사슴을 만났으며, 육중한 몸을 이끌고 차도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바이슨도 보았다. 차가 갑자기 수백 마리의 양떼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한 적도 있었고, 커다란 곰이 나무 열매를 따 먹는 모습을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마치 꿈만 같았다. 지상의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그때 옐로스톤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불에 까맣게 탄 채 죽어 있는 나무들이었다. 본래 모습대로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나무도 있었고, 땅 위에 쓰러진 나무도 있었다. 그 죽은 나무들 사이로 살아 있는 나무들이 초록빛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죽은 나무들은 1988년 옐로스톤을 휩쓴 대화재 때 불에 탄 것이라고 한다. 88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옐로스톤을 휩쓴 대화재로 공원의 절반이 불에 타는 참사를 겪었으며, 이때 수많은 야생동물이 화마에 희생되었다고 한다.

공원에는 88년 대화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표지판이 있었다. 설명을 읽다가 인상적인 문구를 발견했다. ‘타도록 내버려두는 정책(Let it burn policy)’이라는 것이었다. 옐로스톤과 요세미티를 포함한 미국의 25개 국립공원은 웬만한 화재는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그대로 방치하는 정책을 펴왔다고 한다. 번개와 건조한 날씨 등으로 인한 자연발화 역시 수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래서 88년 옐로스톤에 화재가 났을 때도 7월 하순까지는 진화작업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그 후 가뭄과 무더위로 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과학자들과 주정부와 공원당국 사이에서 이 불을 꺼야 하는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내버려두어야 하는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화재의 규모가 몇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엄청났던 탓에 결국 진화를 하기로 했다. 그 후 수많은 소방관과 군인이 동원되어 화재진압 작전을 펼쳤지만 불은 정작 인간의 손길이 아닌 ‘눈’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진화되었다.

공원의 절반을 태운 대화재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재앙으로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은 놀라운 복원력을 보였다. 당시 공원에는 라지폴 파인이라는 나무가 많았는데, 고령화된 이 나무들이 겨울철에 죽거나 병충해를 확산시키는 등 폐해가 심각했다. 그런데 산불이 라지폴 파인을 태워 척박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해로운 벌레를 죽였으며, 수백 년 동안 쌓인 낙엽에 덮여 미처 올라오지 못했던 새싹들을 올라오게 했다.

대화재 후 20년이 훌쩍 넘은 옐로스톤을 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인간이 손을 대지 않아도 기다리기만 하면 자연은 놀라운 생명력으로 스스로를 복원한다. 물론 무작정 자연재해에 손을 놓고 있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간은 어느 정도는 자연에 대항하면서, 어느 정도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다만 자연에 대항할 때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자연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인간이 감히 자연을 통제하고 다스리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짓인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이나 죄책감이 없다. 심지어 회색빛 콘크리트로 때워진 흉물스러운 자연파괴 현장을 감격에 겨워 바라보기까지 한다. 그들 눈에는 그것이 아름다워 보일까. 심각한 미감(美感)의 차이로 치부하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 치명적이다.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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