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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탐사] 비정상의 정상화

중앙선데이 2013.12.29 01:58 355호 31면 지면보기
다음에 열거하는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 교통질서 위반, 장례식장·상조회사의 불공정행위, 고액세금 장기체납, 은행 꺾기, 어린이집 보조금 부정수급, 철도산업 비리, 원전 비리, 수능 이후 형식적 수업관행. 언뜻 봐도 뭔가 잘못되고 비뚤어진 것들이다. 법을 위반하는 것도 있고, 법 위반은 아니지만 상식에 어긋나거나 불합리한 관행도 있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것들이다. 비정상은 그 정의상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왠지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할 것 같다.

급기야 정부는 이런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을 국정운영의 핵심과제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름 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추진계획’을 보고하고, 이를 범정부적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 상태로 돌려놓지 않고는 국정목표의 진정한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부터 부쩍 강조해온 주제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새 정부의 개혁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후 8·15 경축사와 시정연설 등을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했다.

그 계기는 원전 비리와 잇따른 원전 사고였다.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의 납품비리와 방만한 경영행태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원전 가동이 중단되면서 여름철 전력대란의 우려가 고조됐다.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까지 부풀어 올랐고 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박근혜정부로서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비리와 부정의 관행을 털지 않고는 어떤 정책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위기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공공기관 개혁을 필두로 ‘비정상의 정상화’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대대적인 부채 축소와 방만한 경영행태 척결을 앞세운 공공기관 개혁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광의의 정부에 포함되는 공공기관부터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보여야 나머지 사회 전반의 비정상적 관행에 대한 ‘정상화’ 드라이브가 먹힌다는 계산이다. 일종의 ‘자해공갈성’ 개혁의지의 표현이다. 내 몸의 악성 종기부터 도려내는 모범을 보여야 다른 기득권층의 희생과 고통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비리와 부정, 비정상적 관행에는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 강고한 기득권 세력이 있고, 그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요구에는 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다.

이 판에 대표적인 개혁대상인 코레일의 경쟁체제 도입을 두고 철도노조가 파업에 나섰다. 정부가 역대 최장기 철도파업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 것은 이번 사태의 해결이 ‘정상화’ 의지의 시금석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정부로서는 한발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밀리면 내년부터 본격화할 예정인 공공기관 개혁이 초장부터 흔들릴 뿐만 아니라 집권 2년차부터 국정운영의 추진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나 민주노총이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문제를 가지고 현 정부의 개혁의지를 시험해보려 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사안 자체가 파업의 명분으로 삼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한 데다 정부의 대응 강도를 너무 얕잡아본 것 같다. 지금까지 진행된 일련의 ‘정상화’ 드라이브를 감안했다면 섣불리 파업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철도파업은 박근혜정부가 부진한 집권 초반 국정운영의 성과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청와대는 아마 이번 철도파업을 원만하게 수습하는 것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에 비견될 만한 단호한 리더십을 가지게 될 것으로 기대하는지 모른다. 박 대통령은 최근 “정부와 정치권, 사법부는 물론 기업과 노사에 이르기까지 비정상적 기득권이 있다면 내려놓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도파업 이후 전방위적으로 ‘정상화’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사실 박근혜정부의 ‘정상화’ 정책은 이전 정부들이 추진했던 개혁조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불법행위는 물론 각종 비리와 부정이야 언제든지 뿌리 뽑아야 할 것이고, 불합리한 관행도 바로잡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실제로 해내느냐는 것이다. 역대 정권이 그런 비정상을 몰랐던 게 아니다. 다만 정상적으로 할 능력이 없었거나 그럴 의지가 충분치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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