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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승자 없는 싸움

중앙선데이 2013.12.29 01:59 355호 31면 지면보기
철도파업 18일째이던 지난 26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 이곳에서 만난 한 40대 기관사는 “파업이 시작될 때만 해도 떠밀리듯 나온 노조원들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강성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 규정에 따르면 법에 따라 파업에 참가할 수 없는 필수 유지 업무 인력(코레일 인력의 약 60%)을 정부가 지정하면 나머지 비필수 업무 인력은 의무적으로 파업에 참여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파업 초기만 해도 비필수 인력 가운데 상당수는 업무 대신 시위에 참가하면서 괜히 앞에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파업을 시작한 뒤 얼마 안 돼 정부가 이런 사람들까지 몽땅 직위해제를 해버리니 불만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그는 “호미로 막을 걸 포클레인으로 막는 격이 됐다”고 말했다. 코레일 사측과 정부의 강경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는 얘기다.

그는 “4년 전 파업 때처럼 성과 없이 끝내면 전원이 구속될 가능성이 크고, 설혹 운이 좋아 일터로 돌아가게 돼도 언제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다들 뭉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기관사가 언급한 2009년 철도 파업은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핵심 주동자가 체포되면서 노조 스스로가 파업을 철회했다. 당시 정부가 손해배상조로 청구한 97억원을 놓고 1심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고, 당시 징계를 당했던 노조 관계자들은 정부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철도 노조는 2002년 이후 총 8번의 파업을 했다. 매번 조합원의 절반 격인 40~60%가 파업에 참가했다. 참가자와 불참자로 갈려 조직이 동요하는 경험을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한 셈이다. 노조는 빚을 떠안았고 구성원 간 불신도 깊어졌다. 그래선지 25일 서울 구로역에서 만난 대체 인력 기관사들은 노조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다가도 자신의 신원은 드러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역내에 진입하는 열차를 찍는데도 대체 투입된 차장이 달려와 “내 사진 찍은 것 아니냐”며 항의했다.

이렇게 노사 간은 물론 노조 내부에서도 불신이 깊어진 상황에서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놓고 노조와 정부·사측이 “민영화다” “아니다”만 반복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건 당연해 보였다. 노조 내부에서도 서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말을 믿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해결의 키를 쥔 정부가 ‘원칙 없는 타협불가’를 외치며 강(强)으로만 치닫고 있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파업이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줄 알고 참여했다는 한 기관사는 “노루 사냥을 할 때도 퇴로는 열어주고 모는 법”이라며 “지금 철도 노조원들은 돌아가고 싶어도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올겨울을 더욱 춥게 만들고 있는 ‘강 대 강’ 대결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대로 가면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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