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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분모, 욕심 줄여야 행복해진다” 당부 … 갈라져 싸우는 세상 걱정

온라인 중앙일보 2013.12.29 04:00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창간 6주년 기획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 - 연재를 마치며

대한민국이 전대미문의 미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는 실종됐고, 경제는 나락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올 한 해 ‘이광재가 원로에게 묻다’란 타이틀 아래 원로 40명을 만난 배경이다. 연간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못 되던 극동의 최빈국을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자 민주화의 모범국가로 끌어올린 그들의 조언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그분들의 성향이 보수냐 진보냐는 따지지 않았다.

마주 보고 달리는 두 대의 기관차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분열을 딛고 일어서려면 이념을 떠나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그들의 경륜을 흡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유한한 인생을 잘 사는 길은 무엇인지, 성공한 인생을 산 원로들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인생도처에 고수가 있다)’라는 심정으로 지난 10개월간 만난 원로들의 연세를 합하니 3317년이었다. “사람이 만나면 생각이 모이고, 생각이 모이면 사상이 생기고, 사상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원로들을 만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왼쪽부터)고(故) 남덕우 전 총리, 조순 전 경제부총리,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 이광정 원불교 상사, 고(故) 채명신 장군,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이기웅 열화당 대표,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김기형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


(왼쪽부터)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안병주 성균관대 명예교수,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소설가 조정래,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기영 전 광운대 총장, 양재모 성심의료재단 이사, 김장환 목사, 이명재 전 검찰총장, 김성수 대한성공회 대주교.






만나본 원로들은 하나같이 공부벌레였다. 은퇴한 분들이 많기에 대부분 자택을 찾아갔는데 집안이 온통 책더미였다. 서울 봉천동의 2층 단독주택에 사는 조순 전 부총리는 집에 책이 넘쳐나 마당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그 속에 책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요즘도 광화문 교보문고에 매달 두 번씩 책을 사러 간다. “서울에서 좀 산다는 사람이 가진 재산만큼의 책을 사서 모았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면왕’ 전중윤(94)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책장에도 식품과 관련된 내용은 물론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일본 서적이 수천 권 쌓여 있었다. 평생 만져온 책들을 처리하는 게 원로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였다. 원로들의 자택 주변에 그의 이름을 딴 도서실을 세워 주민들이 읽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금 명인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고교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6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야금을 연습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대가가 된다는 건 연습의 연속이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작곡을 할 때는 식음을 전폐하고 몰입한다”고 했다. 소설 2000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 조정래 선생은 “설 연휴 빼고 1년에 362일, 하루 12시간 넘게 원고지 30장씩을 써왔다”고 말했다. 그는 해방 직후 지리산 일대 빨치산의 활동을 조명한 소설 ?태백산맥?부터 포항제철을 세계적 철강기업으로 키운 뒤 노태우정부 시절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몸담았던 박태준 회장의 일대기까지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념을 떠나 시대와 정직하게 만나고, 영혼의 에너지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소진해야 일가를 이룬다는 걸 조 선생은 보여줬다. 조순 전 부총리나 황병기 교수, 조정래 작가 모두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로 인생이 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조순 전 부총리는 “2013년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장을 통한 자정기능은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 만큼 국가가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원로들도 입을 모아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배울 만한 국가모델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다당제와 분권형 리더십으로 분열을 극복하고 발전을 이룩한 독일·영국을 들었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도 여야가 힘을 합쳐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의 분할통치를 10년 만에 극복하고 독립한 오스트리아 모델을 제시했다. 국사학 원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반도 역사 2000년은 대륙과 해양세력의 결절점에 놓인 지정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운명을 걸어온 역사”라며 “남북이 갈라져 있으면 바둑의 한 집일 뿐이지만 서로 교류하면 대륙과 해양을 사통팔달하게 돼 열 집이 된다는 중국인들의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6·25 전쟁 때 잠시 평양을 수복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과 미군 사령부가 함경남북도 지사를 제각기 임명해 혼란이 빚어졌다”며 “북한이 붕괴하면 자동적으로 남한 땅이 될 거란 생각은 환상이다. 여기서 깨어나 실질적으로 북한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바람직한 국정을 위해선 ‘인사가 만사’라는 지적도 원로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제시한 ‘40대 장관론’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100명이 고시에 합격하면 사무관 15년, 과장 10년을 거쳐 30명쯤이 국장을 한다. 이들이 차관보에 오르면 은퇴 준비에 들어간다. 후배들을 위해 용퇴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반면 선진국은 40대에 장관이 많이 나온다. 유능한 인재들이 빨리 고위직에 오른 뒤 롱런하는 구조다. 우리도 관료들을 조기에 경쟁시켜 40대 장관이 많이 나오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원로 40명 전원이 “여야는 공존하고 타협하라. 대통령은 초당파적 내각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의 의식변화에 앞서 승자독식 권력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공통적이었다.



헌법학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패한 자는 역적·도적으로 몰린다. 그러다 보니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라며 “여야가 8대2 또는 7대3으로 권력을 분점하는 구조로 가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당제로 연립정부를 세워야 완충지대가 생기고 나라가 전진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로들은 또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 현상을 우려하고 있었다. 성장동력이 급락하는 추세도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영국을 복지국가 원조로 만든 사회안전망 조치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자인 윈스턴 처칠이 상무장관을 맡았을 때 단행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와 조윤제 서강대 교수도 “독일에서 건강보험, 산업재해보험을 도입한 이는 보수주의자인 비스마르크였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노동자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우려가 커진다고 본 비스마르크가 대응책을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도 보수주의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대 북한의 의료보험제도에 자극받아 건강보험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스웨덴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노동자 복지와 함께 경제 성장의 기반을 강화한 건 진보계열인 사회민주당이었다”며 “독일도 진보계열이던 슈뢰더 총리가 노동개혁을 추진한 결과 정권을 빼앗겼지만 독일 경제가 일어서는 데는 큰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도 살아남으려면 보수가 복지를, 진보가 성장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게 원로들의 일치된 목소리였다.



敎모든 원로가 일치된 목소리를 낸 또 다른 이슈가 ‘교육개혁’이었다. 산업화 시대를 넘어 지식기반 경제 시대로 나아가려면 우리 교육 시스템의 대수술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은 “창의적인 교사 양성이 가장 중요하다. 사범대 출신들에게 장악된 교직 문호를 개방해야 다양한 고품질 교육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은 하버드대를 나온 박사나 서울대 교수조차 초·중·고 교사가 될 수 없다”며 같은 취지의 제언을 했다. 그는 또 “유아원, 유치원 교사들에게 (준)공무원 자격을 부여해 유능한 인재들이 유아, 유치원 교사가 될 유인을 줘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8세까지 자라는 동안에 지능의 80%가 발달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고교에서 문과와 이과 구분을 없애고 체육시간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원로들은 “삼성, 현대가 어려워지면 큰일나는 경제구조도 문제”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김기형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은 “경제를 살리려면 젊고 의욕적인 기업인과 과학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게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등 요즘 미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들은 젊은 창업자들이 단시일에 일으킨 공통점이 있다. 반면 한국 재계는 삼성과 현대가 1, 2위인 순위에 30년째 변화가 없다. 대전과학단지를 실리콘 밸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를 살려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데도 원로들의 생각은 일치했다. 한수산 작가는 “외국에서 좋은 책이 나왔다 하면 즉시 번역서가 출간되는 일본의 일급 출판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예술품 면세구역을 홍콩에 이어 상하이에 확대하며 문화붐을 조성하는 중국의 예를 들면서 “한국만 미술품 거래에 양도세를 부과해 미술계를 위축시키고 있다. 연간 30억원을 벌겠다고 문화를 죽이는 어리석은 조치”라고 비판했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다. 더불어 살아야 행복하다”고 원로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행복을 얻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그들은 봉사와 기부를 들었다. 류시문 노블레스오블리주 시민실천 공동회장은 재산을 자식에게 한 푼도 물려주지 않고 전액 기부할 생각으로 공탁을 걸어뒀다. 그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으면 자본주의의 원칙인 공정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은 “조선시대 청백리들은 본인은 깨끗하게 살았을지 몰라도 돈이 없어 자식교육을 시키지 못했다”며 “깨끗하게 부를 일궈 베풂의 기쁨을 누리는 청부(淸富)가 청빈(淸貧)보다 낫다”고 말했다. “행복하려면 욕심이란 인생의 분모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공통적이었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출사(出仕)와 진퇴 (進退)에 인생의 모든 게 달렸다. 나서야 할 때는 나서고, 물러나야 할 때는 깨끗이 물러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어떤 종교라도 좋다. 사람이 종교를 가지면 마음이 강해지고, 알찬 삶을 살 수 있다”는 김장환 목사의 말도 무게 있게 다가왔다. 그는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생기고 하느님을 만나면 기적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나를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원불교 이광정 원사의 조언도 울림 있게 다가왔다. 그는 “땅 위에 부는 바람은 고기압과 저기압의 차이에서 온다. 마음에 부는 바람도 차이에 대한 비교에서 온다. 서로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면 행복이 온다”고 말했다.





원로들은 공통적으로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인생으로 정의했다. 조순 전 부총리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란 낙천적 믿음을 갖고 사는 게 인생”이라고 했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원로 40명 전원의 일치된 이야기였다. 또 “노년을 잘 보내려면 베풀고 살아야 한다. 베풀고 살면 친구가 많아져 노년이 외롭지 않다”는 강봉균 전 부총리의 말도 기억에 남았다. 건강한 몸과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행복한 인생을 위한 원로들의 공통된 조언이었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공부하라. 외국어 단어 100개를 외운 뒤 95개를 잊어버려도 그런 노력을 통해 뇌가 운동한 효과는 크다”는 양재모 성심의료재단 이사의 말에서 평생 공부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다음은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원로들의 경구들이다. “지금 바로 일어나 앉아라… 죽으면 충분히 잔다.” “마음에 잡초를 심지 말라.” “게으름은 가난을 태풍처럼 몰고 온다.” “모든 인간은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 “꿈이 있어야 산다. 꿈이 있는 인간은 죽지 않는다.” “시련은 인생을 알차게 가꿔주는 자양분이다.” “역사는 가운데를 쥐는 것이다. 좌우에 흔들리지 말라.” “인생은 바통 터치다.” “토끼를 깨우지 않고 달린 거북이는 반칙이다.” “진정한 고수는 큰 뜻을 폄으로써 경쟁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만나본 원로 가운데 남덕우 전 총리와 채명신 장군이 지난 5월과 11월 각각 운명했다. 나와의 인터뷰가 그들의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된 셈이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채 장군 자택에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여러 번 눈시울이 붉어졌던 게 기억에 남는다. 채 장군이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의 오른팔로 불리던 적장 길원팔을 생포한 일화를 들려줄 때였다. 채 장군은 길원팔에게 전향을 권유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자결했다. 그는 “내가 아들처럼 데리고 다니던 고아 소년을 보살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채 장군은 그 고아를 동생으로 삼아 유명 대학 교수로 키워냈다고 한다. “나보다 그 아이의 삶이 훨씬 소중하니 절대 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던 채 장군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채 장군이었기에 “장군 아닌 병사 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도 자연스레 나왔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남덕우 전 총리는 1월 인터뷰를 할 때 사진 찍기를 사양했다. 그래서 1년 전 중앙일보가 찍은 사진을 써서 인터뷰를 내보냈다. 오랜 투병에 지친 얼굴을 국민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는 30년 전 경제통계 수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한국이 처한 경제 현실과 해법도 똑 부러지게 풀어냈다. “내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한·중·일이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개발은행을 세우려고 세계를 누볐을 거다. 하지만 난 이젠 늙었어, 당신들 몫이야”라며 허공을 쳐다보던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광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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