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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도 참배 반대 … "확신범 아베 소원 풀어"

중앙일보 2013.12.27 01:59 종합 3면 지면보기
26일 오전 10시33분 일본 NHK방송에 ‘아베 총리, 오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키로’란 속보가 떴다. 일본 외무성은 물론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의 담당 기자들도 아연실색했다. 속보가 뜨기 직전 연락을 받은 주일대사관 관계자는 “며칠 전부터 25, 26일 혹은 내년 1월 1일에 야스쿠니에 갈 것이란 첩보가 있어 주시했지만 실제 가다니 그저 질릴 뿐”이라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 찾은 일본 총리
본전 참배 공개, 기자회견 이례적
관용차 타고 '내각총리대신' 명시
취임 1년 맞춰 보수층 끌어안기

 아베의 참배 의사가 전해지자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중진 의원들이 ‘막판 뒤집기’를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90CE>) 의원은 아베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가면 안 된다”고 만류했다. 소용이 없었다. 연립여당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스오(山口那津男) 대표도 “난 찬동할 수 없다”고 거칠게 항의했다. 아베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오전 7시 야스쿠니 신사 측에 전화해 “오전 11시30분에 참배한다”고 시간까지 못박아뒀었다. 주일 미국대사관에도 참배 사실을 사전 통보했다.



 야스쿠니 신사 상공에는 언론사의 헬기가 10대 이상 날았다. 내외신 기자들도 200명 넘게 몰렸다. NHK는 총리 관저에서 출발하는 모습부터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이날 아베의 참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먼저 오전 11시10분까지 현장에 도착한 취재진에 야스쿠니 신사 본전(本殿) 참배 모습을 공개했다. 근접촬영도 허용했다. 참배 후 야스쿠니 신사 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담화’까지 발표했다. 1985년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2001~2006년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때도 없던 일이다. 비난을 의식하기는커녕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위대한 총리”라고 국내외에 외치려는 듯했다. 현장의 한 외신기자는 “사상적 확신범인 아베가 소원을 풀었다”고 말했다.



 “개인 자격”이라는 각료들의 설명과는 달리 아베는 관용차를 타고 야스쿠니 신사에 도착했다. 기장에도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 적었다. 본전 앞마당에 들어가 아베의 참배 모습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검은 연미복 차림의 아베는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20m가량 걸어 본전으로 이어지는 배전(拜殿)에 멈췄다.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진령(鎭靈)사 방향으로 걸어갔다. 진령사는 1965년 “본전에 합사되지 못한 영령과 외국인 전몰자를 위해 만든 참배 공간이다. 현직 총리가 진령사에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현장 취재진 사이에선 “국제사회로부터 욕을 먹을 것 같으니 생색내려는 것”이라는 수군거림도 나왔다. 배전으로 돌아온 아베는 본전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참배를 마쳤다. 본전 입구에는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 적힌 화환이 양쪽에 놓여 있었다. 아베는 헌화비로 3만 엔(약 30만원)을 내놓았다고 한다.



 참배를 마친 아베는 신사 내의 한 방에서 총리담당 기자들만 따로 불러 회견을 열었다. 아베의 첫마디는 예상대로였다. “오늘 난 진령사에도 참배했다.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로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담아 부전(不戰)의 맹세를 했다.”



 관심은 왜 총리 취임 1주년에 맞춰 전격적으로 참배한 것인지에 쏠렸다. 아베는 “정권 출범 1년을 맞아 아베 정권의 1년 동안 걸어온 길을 보고했다”고만 했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질문에는 “원래부터 중국 혹은 한국민의 마음에 상처 입히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피해갔다. 아베의 한 측근은 “1차 아베 내각 당시 야스쿠니 신사에 가지 못한 걸 ‘천추의 한’이라 했던 아베로선 참배를 하지 않아도 한국·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초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렇다면 보수지지층이라도 끌어안자’고 결심했고, 시기는 취임 1년을 넘기면 향후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아베는 참배를 마치고 차에 타기 전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참이냐”는 보도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장기를 들고 환호하는 우익 인사들을 향해 왼손을 들어 화답한 뒤 차를 타고 떠났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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