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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병 고친 대처의 원칙, 그 뒤엔 치밀한 2년 전략 있었다

중앙일보 2013.12.27 01:52 종합 6면 지면보기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과 정부의 무관용 원칙 천명, 강(强) 대 강(强)의 대결이다.


박 대통령 롤모델 … 대처의 대응은

 이미 최장기 파업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게 박근혜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유사성이다. 대처 전 총리는 탄광노조의 불법파업에 타협 대신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해결, 정권을 굴복시킬 정도로 무한의 특권을 가졌던 영국의 노조병을 치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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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리 알려졌듯, 대처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2007년 국내외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대처 전 총리를 꼽았다. 그해 1월 “대한민국은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전국에 울리고 있다”며 “영국의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치유해 새로운 도약을 이룩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중병을 고쳐놓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올 초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처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비서진에 대처 리더십을 전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처가 총리일 때 당시 영국에선 어린아이들이 ‘엄마, 우리나라에서도 남자가 총리 될 수 있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대처 전 총리의 집권이 13년이나 된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일을 잘했으니까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라며 “우리도 3년 뒤엔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남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어?’라고 물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로드맵 마련  탄광 통폐합 위해 석탄 비축



 실제 박 대통령과 대처 전 총리 사이엔 공통점이 적지 않다. 특히 집권할 때까지가 그렇다. 둘 다 전통을 중시하는 국가에서 여성으론 최초로 국가지도자가 됐다.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정당의 대표이면서 박 대통령은 전자공학을, 대처 전 총리는 화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이기도 하다. 정치적 이미지도 유사하다. 원칙과 신념을 앞세운 강한 지도자 말이다.



 대처 전 총리는 평소 “돌아가고 싶으면 당신들이나 돌아가라. 난 돌아가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강자를 약하게 만들어선 약자를 강하게 만들 수 없다. 검약을 강요해선 번영을 가져올 수 없다(에이브러햄 링컨)”는 신념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일자리를 앗아간 건 정부 정책의 비정함이 아니라 경쟁력을 상실한 영국의 산업이라고 봤다. 당내 협상파를 “우리 당에는 아직도 합의의 정치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배신자·반역자로 간주한다. 거짓말이 아니다”라며 “이 길밖에 없다(TINA·There is No Alternative)”고 몰아붙이곤 했다. 야당인 노동당을 향해선 “우리가 모은 돈을 양말에 넣어두면 저들은 양말도 국유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적극 여론전  국민 앞에 자주 나타나 호소



 박 대통령도 최근 철도노조 파업을 두고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의 체포를 위해 노동계의 ‘성역’이랄 수 있는 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을 투입하고도 체포 대상자를 단 한 명도 검거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다음날에도 박 대통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 수석들에게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파업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망국(亡國)으로 이어졌던 120년 전의 갑오경장의 실패를 예로 들며 “이번엔 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도 대처 스타일로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처 스타일』을 쓴 박지향 서울대 교수(서양사학)는 한발 더 나아가 “대처 스타일이 맞다. 당연히 대처 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지만 “원칙을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정도 대처 스타일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전하고 행동하는 건 강하면서도 접근 방식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처 리더십의 대표상품 격인 탄광노조와의 싸움이야말로 현실을 감안한, 치밀한 접근법의 승리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처 전 총리가 당초 탄광을 통폐합하려던 건 집권 직후인 1981년이었다. 그러나 일부 계획이 사전 유출되면서 탄광노조가 반발하자 한발 물러섰다. 당시 발전소에 비축해둔 석탄이 충분치 않아 국가적으로 파업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감안했다.



 2년 뒤 대처는 개혁적 인사를 석탄공사 사장으로 보내면서 탄광 통폐합을 본격화했다. 사전에 석탄을 충분히 쌓아뒀음은 물론이다. 석탄공사와 탄광노조가 1년여 충돌하는 사이 정부도 분주했다. 각료위원회를 구성해 발생 가능한 문제를 검토했고 대책을 마련했으며 사안별 입장을 정했다. 대처 전 총리가 적극적으로 국민 앞에 섰다. “압도적 다수의 영국인은 협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위대를 뚫고 일터로 나간 분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호소하는 식이었다. 79년 공공부문의 파업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터라(‘불만의 겨울’) 국민의 노조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나쁜 상태였다. 대처 전 총리는 그러나 방심하지 않았다.



현실적 후퇴  해답 찾으려 양보안 제시도



 때론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영국통신·영국가스·영국석유 등을 민영화할 때 반발이 심해졌고 대처 전 총리가 수돗물까지 민영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처가 이젠 하늘에서 내리는 비까지 팔아먹으려고 한다”는 불만까지 일자 대처 전 총리는 “하나님이 비는 내리시지만 수도관과 기계설비를 함께 보내주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러나 여론이 계속 불리하게 돌아가자 대처 전 총리는 규제와 환경 의무는 공공부문에 맡기는 양보안을 냈다. 박지향 교수는 “대처는 원칙이 정치를 질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며 “정치란 문제에 대한 해답, 그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해답을 찾는 행동이란 게 대처의 소신이었다”고 전했다.



 변화를 이끄는 건 개인이 아닌 세력이란 점도 잊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강원태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대처는 주변의 협력을 받았다”며 “초반엔 상대적으로 ‘무른 사람들(wets)’이 많았으나 개혁 성과에 따라 점차 강한 개혁 성향의 ‘딱딱한 사람들(dries)’로 교체했다. 지지세력과 동조자들을 만들어놓고 같이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 메시지와 국정 메시지가 일치했던 대처와 달리 박 대통령은 선거 때 복지를 강조했던 만큼 보다 신중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선 또 “현 정부가 민영화가 나쁜 것인 양 모는 좌파의 논리에 정부가 ‘민영화 아니다’라고만 할 뿐 제대로 대꾸 못하는 것도 문제”란 지적도 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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