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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카페 잘 활용하면 부대 단결에 보약

중앙일보 2013.12.27 00:33 종합 29면 지면보기
‘개천골 부모 일동’이 선물한 만년필을 들고 있는 윤영상 중령. 그는 “특정 장병의 부모님이 주셨다면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되면서 군대가 학교냐, 보안문제는 어떡할 거냐는 우려도 있었어요. 하지만 GOP 근무를 서며 단 한차례 사고도 없었어요. 오히려 부대 단결에 긍정적 효과를 준 것 같습니다.”


장병·부모들 따스한 일상 이야기
『개천골 이야기』 낸 윤영상 중령
'소통' 힘 감동한 부모들 출간 앞장

 육군 6사단 7연대 3대대 대대장 윤영상(43·학군31기) 중령의 별명은 ‘개천골 이장’이다. 개천골은 이 대대의 별칭 ‘개천대대’의 이름을 땄다. 이장은 이 부대 인터넷 카페에서 쓰는 윤 중령의 별명이다. 스스로 이장을 자처했다. 이제는 장병 부모들도 면회실에서 윤 중령을 만나면 ‘대대장님’ 대신 ‘이장님’이라 부른다. 20일 강원도 철원에서 만난 그는 “부모님들이 대대장님이라는 호칭 때문에 하고 싶은 말씀을 못하시는 게 느껴졌다. 이장님이라며 한결 편하게 대해주셔서 호칭을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카페엔 매일 수십 건의 글이 올라온다. ‘아들아 일주일 넘게 전화가 없어 초조하다. 033 지역번호가 내겐 보약’이란 어머니의 푸념부터 ‘요즘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정말 짜증난다’는 병사의 사소한 하소연까지…. ‘고라니나 멧돼지 등이 지천으로 널린 이곳이 마치 동물원 사파리 같다’는 윤 중령의 글도 카페에 올라온다. 카페에 담긴 이런저런 얘기들을 묶은 책 『개천골 이야기』(씨에프오아카데미)가 최근 출간됐다. 부모들이 윤 중령의 꾸준한 글에 감동해 성화를 해댄 덕이다. 장병 부모가 책 판매와 마케팅을, 휴가 나간 병사가 표지 디자인을 맡았다. 교보문고 등에 뿌려진 지 20여 일 만에 1000권 이상 팔렸다.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덕이다. 추가 인쇄 중이다. 윤 중령이 받는 인세는 한 푼도 없다.



 - 인터넷 카페를 운영할 생각을 어떻게 했나.



 “내가 처음 만든 건 아니다. 원래 부대마다 개설돼 있다. 장병 가족 등과의 소통을 위해서다. 조용했던 카페를 활성화시켰을 뿐이다. 병사들 일상의 서정성을 얘기하려면 좀 더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카페에서 의무관은 ‘보건소장’, 정훈장교는 ‘청년회장’ 별명을 쓴다. 병사들이 부모님, 부대 식구들과 글로 일상을 공유하기를 즐기게 된 점, 부모님들이 속으로 끙끙 앓았을 얘기들을 쏟아놓을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 부모님의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될 수 있지 않나.



 “군대에서도 치맛바람 이는 거 아니냐는 말이 실제로 나왔다. 이런 일도 있었다. GOP 교대 근무에 들어가기 전 부모님들이 아들들 제대로 먹이고 싶다고 위문품으로 고기를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한 부모님이 ‘나는 그럴 형편이 안되는데 우리 아이가 차별받는 거 아니냐’고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 어떻게 해결했나.



 “카페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거룩한 말보다 솔직한 말이 훨씬 의미있다고 생각해 내 고등학교 때 얘기를 썼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에서 차별받았던 경험의 피해자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아내가 카페에 올리는 글이 연애편지보다 솔직한 것 같다 할 정도로 썼다. 보안문제 우려도 있는데, 수시 모니터링으로 문제가 없도록 하고 있다.”



 책에선 윤 중령이 병사 부모들을 위해 제시한 팁도 있다. ‘공개된 자리에서 지나친 애정표현은 아들을 더 나약하게 할 수도 있다’ ‘휴가는 군인에게 최대의 복지다’ 등. 하지만 윤 중령이 정말 강조하는 팁은 바로 이 말이라고 했다. “관심을 보여라. 병사들은 자신이 힘들다는 걸 알아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가장 큰 위안을 얻는다. 단 응원은 조용히, 묵묵히.”



철원=글·사진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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